의혈

울컥한 혼례식

담마다사 이병욱 2020. 8. 9. 09:24

울컥한 혼례식

 

 

부평역 북부광장까지 아침 6시까지 도착해야 했다. 안양에서 부평까지는 전철로 1시간 걸린다. 갈아타고 기다리는 것까지 감안하면 안양역에서 첫차를 타도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

 

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 불과 3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이다. 도착해서 아내는 차를 몰고 귀가했다. 부산에 가는 날이다. 8 8일 토요일 오후 1시 부산시청역 부근 웨딩홀에서 친구 장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부평역에서 출발한 전세버스는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 도착했다. 경기도를 지날 때는 날씨가 맑았으나 천안이후 부터 내리 부산까지 비가 왔다. 기록적인 늦장마의 폭우를 뚫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친구 결혼식에 참석한 바 있다. 30년 전의 일이다. 30년 만에 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30년의 시차에 변화는 많다. 그때의 젊은이는 이제 초로의 사람이 되었다. 세대교체가 된 것일까? 무엇이 변했을까?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변했다고 하지만 사람의 변화처럼 극적인 것이 없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혼례식을 올렸으니 이 보다 더 극적인 변화가 있을까?

 

친구는 딸 둘을 키웠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홀로 키운 것이다. 물론 부모의 도움이 없지 않을 수 없지만 홀로 키운 것은 사실이다. 두 딸 모두 잘 성장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함께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보내야 할 때 보내는 것이다. 바로 오늘이다.

 

 

친구와 각별한 정이 없지 않아 있다. 학교 다닐 때 함께 어울렸기 때문이다. 번호가 가까운 이유가 크다. 공학계열로 입학했는데 같은 성씨로 묶어 놓아서 친해지게 되었다. 이후로도 함께 했다. 그런 세월이 41년 되었다.

 

친구는 착한 사람이다. 착하다고 말하면 요즘 실례인 것 같다. 영악하지 못한 것으로 비추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늘 손해 보는 삶을 산 것 같다. 남들이 승승장구할 때 늘 지켜만 보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성공의 길을 갈 때 바라만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 더이상 비교는 의미 없는 것이 되었다.

 

친구는 착하게 살았지만 이루어 놓은 것은 없다. 특별하게 잘한 것도 없다. 지극히 착하고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가장이다. 두 딸을 잘 키웠다면 이것으로 성공인 것이다.

 

친구는 딸의 손목을 잡고 입장했다. 이제 딸을 보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사람에게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이전에도 그랬던 것 처럼 돌고 도는 것이다.

 

친구는 신부아버지 자격으로 주례석에 섰다. 덕담을 하기 위해서이다. 아니 두 사람의 아버지 자격으로 선 것이다. 친구는 두 사람에게 여러가지 좋은 말로 당부했다. 딸을 보내지만 또 다른 아들이 생겼다는 말을 빼 놓지 않았다. 친구는 마지막으로 즐겁게 살라고 당부했다. 행복하게 살라는 말이다.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석에 절을 했다. 친구는 오래 전에도 홀로이고 지금도 홀로이다. 신부는 눈물을 보였다. 신랑은 무릎을 꿇었다. 보고 있는 사람들은 울컥 했을 것이다.

 

 

누구나 하나 이상 고민이 있다. 그런 고민 중의 하나는 자녀 결혼에 대한 것이다. 적령기의 자녀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름은 깊어지는 것 같다. 이럴 때 스스로 짝을 찾아 결혼하게 되면 그것만큼 효도는 없을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친구 딸은 효녀라고 볼 수 있다.

 

 

혼례의 날은 즐거운 날이다. 일가친척과 친구들이 축복해 주는 날이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축하해 주는 날이다.

 

 

결혼은 일대사이다. 또 큰 인연이다. 빗속을 뚫고 멀리 부산에까지 내려가서 혼례식에 참석하길 잘했다.

 

 

2020-08-0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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