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빠알리챈팅 음성에 충만되어, 마하위하라 2020 까티나축제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1. 9. 13:42

 

빠알리챈팅 음성에 충만되어, 마하위하라 2020 까티나축제

 

 

무엇이든지 처음 경험은 강렬하다. 지금까지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담마끼띠 스님과의 만남도 그렇다. 그때가 아마 10년전인 것 같다. 그때 한국명상원에서 보았다. 한국명상원에서 담마끼띠 스님을 초청하여 빠알리경전읽기에 대한 강연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때 스님은 동국대 대학원 박사과정 학인스님이었다. 그날 교재는 맛지마니까야 2번경 삽바사와숫따(sabbāsava)’였다. 우리말로 모든 번뇌의 경’(M2)이라 한다. 유창한 빠알리어로 낭송했는데 운율이 듣기 좋았다. 더구나 한국말을 잘 해서 듣기에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때 한국말을 참 잘하는 외국스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충남 아산에 소재하고 있는 마하위하라에서 까띠나가사공양 법요식이 열렸다. 테라와다불교 전통에서는 안거가 끝난 다음에 한달 이내에 까띠나행사가 열리게 되어 있다. 이에 118일 아산으로 차를 몰았다. 안양에서 아산 현지까지는 불과 66키로정도의 거리이다.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한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도로가 잘 발달된 이유도 있다.

 

다시 찾은 마하위하라(mahavihara)

 

아산 마하위라라는 작년에 가 보았다. 작년 이맘 때 블로그친구이자 정평불회원이기도 한 이덕권선생과 함께 갔었다. 이에 대하여 빠알리어로 챈팅 해야 하는 이유, 아산 담마위하라 담마끼띠 스님과 함께’(2019-11-06)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긴 바 있다.

 

이덕권 선생은 천안에 살기 때문에 종종 사원에 간다고 한다. 이번 까티나축제가 있기 1주일 전에도 찾아 갔었다고 한다.

 

이덕권선생은 아산 마하위하라가 설립되는 과정을 주욱 지켜보았다고 한다. 주민들이 사원설립을 반대하는 현수막도 보았다고 한다. 일주일전에는 어느 80대 할머니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욕설을 퍼붓는 것도 보았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서 한국 마하위하라는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신정리 116-7번지에 우뚝 서 있다.

 

 

마하위하라는 아산에 설립된지 2년 되었다. 작년 20195월 붓다데이 때 개원했었고, 10월에는 처음으로 카티나축제가 열렸다. 이와 같은 모든 일정과 행사와 관련된 사항은 다음카페 담마프렌즈(http://cafe.daum.net/srilankahaviharaya )에 실려 있다.

 

 

담마끼띠스님과 함께 스리랑카 순례 가고자 했었다. 그러나 불발되었다. 작년 크리스마스날 불교방송에서 주관하는 스리랑카순례단이 떠나는 날이었다. 10일 걸리는 일정이었다. 담마끼띠스님과 함께 하는 순례였다. 그러나 떠나는 당일 장인 어른이 돌아가셔서 무산되었다. 그래서 6개월 후에 다시 떠나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코로나로 인하여 올스톱되었다. 이런 저런 인연과 사연으로 다시 마하위하라를 찾게 되었다.

 

이주민공동체의 카티나축제는

 

까티나행사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테라와다불교에서 주관하는 까티나법요식에는 빠짐없이 참여한다. 또한 테라와다불교권 이주민공동체에서 진행하는 행사에도 참여했다. 2018년에는 의정부에 소재하고 있는 태국 담마까야 까티나축제에 참여했다. 2019년에는 양주에 있는 스리랑카 이주민공동체 마하보디사원의 까티나축제에 참여했다. 참여하고 나면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요즘 코로나시기이다. 가능한 접촉을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전세계적으로 방역에 관한한 한국이 선진국이다. 요즘 거리두기가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무엇보다 방역이다. 방역수칙을 준수하면서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 이날 평소 쓰던 천으로 된 얇은 마스크 대신에 방역효과가 우수한 두툼한 것으로 바꾸었다. 사원 안에서 한번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마스크를 쓰고 했다.

 

한국내 이주민공동체 카티나축제는 특별하다. 그것은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종교행사와 문화행사이기 열리기 때문이다.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 나라에 가지 않고서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아산 마하위하라에서 열린 까티나 축제는 어떤 것일까?

 

절에 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이날 까티나 행사에 알고 지내는 법우님들과 함께 참석했다. 천안에서 온 L선생, 공주에서 온 S선생이 참여했다. 블로그친구이자 정평불회원이다. 담마와나 B법우님은 친구와 함께 참석했다. 가사공양식에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사보시에도 참여했다.

 

 

절에 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말라고 했다. 승가는 재가의 보시에 의존하기 때문에 빈손으로 간다는 것은 큰 실례가 된다. 보시금은 필수에 해당된다. 선원에 집중수행하기 위해 입소할 때나 퇴소할 때도 보시금을 내는 것이 원칙이다. 능력껏 내는 것이다. 그래서 “능력에 따라 보시하고 또한 즐기면 비난받지 않고 하늘나라를 성취하리. (S1.41)라는 게송이 있다. 보시는 능력껏 하는 것이다.

 

별도로 선물을 준비했다. 서울 담마와나선원 카티나행사 때 보면 각자 선물을 쇼핑백에 담아 가져 온다. 이는 2018년 의정부 담마까야 까티나때도 보았다. 태국 이주민들은 각자 정성껏 마련한 물품을 쇼핑백에 담아 왔다. 이런 것을 보았기 때문에 전날 마트에 들러서 면도기와 치약 여러 개를 구입했다. 그런데 당일 가 보니 쇼핑백을 들고 있는 사람은 두 사람 밖에 없었다. 그 대신 순수하게 가사만 올린 것이다. 나라마다 선원마다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등불공양을 하고

 

행사가 열리기 전에 부처님 전에 공양했다. 모든 것이 스리랑카식이기 때문에 스리랑카 전통에 따랐다. 먼저 등불공양을 했다. 작은 유리잔에 작은 양초가 있는 것이다. 스리랑카 화보를 보면 심지가 있는 기름잔에 등불이 타는 것을 보았다. 이와 같은 유리잔등불공양은 한국식 양초공양과도 다른 것이다. 심플하면서도 품위 있어 보였다.

 

스리랑카 불단은 매우 소박하다. 불단에는 꽃과 등불만 보인다. 한국에서는 육법공양이라 하여 불단에 향, , (), (), 과일(), ()을 올린다. 또 불단에 갖가지 물품을 올려 놓는다. 그러나 스리랑카 불단을 보면 꽃과 등 이외는 보이지 않아서 매우 심플해 보인다.

 

 

불단에는 무엇을 올려야 할까?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을 보면 여래의 유체에 대처하고 큰 사거리에 여래의 탑묘를 조성해야 한다. 거기에 화환이나 향이나 안료를 올리고 경의를 표하고 마음을 정화시킨다면, 사람들은 오랜 새월 안녕과 행복을 누릴 것이다.(D16.112)라고 되어 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부처님 전에 올릴 수 있는 공양물은 화환(māla), (gandha), 안료(cuṇṇaka) 이렇게 세 가지 종류임을 알 수 있다.

 

어느 불교전통에서든지 빠지지 않는 것은 화환이다. 특히 테라와다전통이 그렇다. 실제로 한국테라와다불교 담마와나선원에서는 불단에 꽃 이외에 일체 다른 것을 올려 놓지 않는다.

 

목갈라나 존자의 얼굴은 왜 검을까?

 

불상을 보면 어느 나라 것인지 대략 알 수 있다. 그 나라의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 있는 것이 불상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가면 중국사람을 닮은 두툼한 모습의 불상을 볼 수 있다일본불상은 일본사람 모습을 닮았고 한국불상은 한국사람 모습을 닮았다.

 

나라마다 불상의 모습이 다르다. 태국에 가면 태국만의 독특한 불상상이 있다. 스리랑카 역시 스리랑카불상의 타입이 있다. 그래서 한눈에 어느 나라 불상인지 알 수 있다. 이곳 마하위하라 불상은 전형적인 스리랑카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상호를 볼 수 없다.

 

불상 좌우에 마치 협시보살처럼 앉아 있는 인물이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았다. 가섭과 아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국불상에서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용문석굴에서도 좌우에 가섭과 아난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하위하라불상은 부처님의 상수제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이다.

 

불상을 바라보고 왼쪽의 인물은 얼굴이 흰색이고, 오른쪽은 가무잡잡하다. 누가 사리뿟따이고 누가 목갈라나일까? 가르쳐 주었어도 잊어버린다. 다시 확인해 보니 흰색 얼굴이 사리뿟따 존자이고, 가무잡잡한 얼굴이 목갈라나존자이다. 그렇다면 왜 목갈라나 존자의 얼굴을 거뭇하게 표현해 놓았을까?

 

 

목갈라나 피부색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목갈라나의 얼굴이 왜 거뭇한지에 대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테라가타에서 목갈라나의 69개 게송에서도 목갈라의 얼굴색이 가무잡잡한 것에 대한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

 

법구경 11번과 12번 게송 인연담에 따르면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한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친구였다. 부처님에게 출가하기 전에는 우빠띳싸와 꼴리따라고 불리웠다. 그럼에도 한마을에서 함께 자란 친구였음에도 사리뿟따의 피부는 희게 하고, 목갈라나의 피부는 검게 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인종이 다른 것은 아닐까? 사리뿟따는 아리안 계통의 백인이고, 목갈라나는 드라비다 계통은 아닐까? 그러나 설명을 듣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팔목에 끊을 묶는 의식

 

유리잔에 등불 공양을 올리고 난 다음 팔목에 끊을 묶는 의식을 가졌다. 스리랑카 불교의식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법회에서는 사람과 사람을 끈으로 묶기도 한다. 이렇게 팔목에 끊을 묶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스리랑카 전통혼례식 때도 신랑과 신부의 손가락을 서로 끈으로 묶어 준다는 것이다.

 

 

스리랑카 법회에 참석하면 끈 묶는 의식이 있다. 아마도 우리는 하나다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또 보호로서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명을 들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참석자 면면을 보니

 

오전 10시 까티나 행사가 시작되었다. 담마끼띠 스님이 스리랑카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가며 설명했기 때문에 듣는데 지장이 없었다. 먼저 스님은 까티나축제의 의의에 대하여 설명했다. 안거를 마친 스님들에게 가사를 공양하는 테라와다불교 최대 축제중의 하나라고 했다. 특히 한국에 살고 있는 3만명가량 되는 스리랑카 이주민을 위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마하위하라는 이주민들에게 일종의 쉼터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시기임에도 스리랑카 주민들이 백명 가까이 온 것 같다. 모두 젊은 사람들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30대가 많은 것 같다그런데 모두 신체가 건장하다는 것이다. 한국사람들 보다는 키가 더 크다. 여성 신도들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스리랑카 대사도 참석했다. 한국사람들은 20명가량 참석했다. 불교TV(BTN)에서 전과정을 촬영을 했다.

 

법당에서는 모두 14명의 스님이 착석했다. 그 중에 3명은 한국스님들이다. 그 중에 한명은 테라와다 가사를 입은 비구니스님이다. 능인선원 순례 갔었을 때 보았기 때문에 낯이 익다. 담마끼띠 스님에 따르면 이날 모두 21명의 스님이 참석했다고 한다.

 

 

 

한국 스님 중에 특이하게 수염을 기른 스님이 있었다. 더구나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모두 한사람도 예외없이 마스크를 쓰고, 마스크를 쓰고 대화했다. 그럼에도 노스님은 시종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아서 눈길을 끌었다.

 

빠알리챈팅에 음성충만되어

 

의식은 스리랑카식으로 거행되었다. 빠알리어로 예경문, 삼귀의, 오계, 삼보예찬 순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들어 볼 수 없는 목소리이다. 운율이 있고 낭랑한 목소리를 말한다. 이런 운율과 목소리는 미얀마 스님의 독송과는 또 다른 맛이다. 한국에서 염불 잘하는 스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듯이, 낭랑한 빠알리 낭송을 들으니 충만되는 것 같다.

 

작년 담마끼띠 스님을 만났을 때 들은 것이 있다. 챈팅은 빠알리원문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원문으로 해야 힘을 받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이는 감응 받을 수 있음을 말한다.

 

부처님도 빠알리어로 말했고 이후 제자들도 모두 빠알리어 독송을 했다. 이천년이상 빠알리어로 챈팅해 왔다. 그래서 빠알리어로 챈팅하면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스리랑카 스님의 빠알리어 낭송을 들으면 충만되는 것 같은데 나만 그런 것일까?

 

스리랑카 스님이 빠릿따 빠리깜마를 낭송할 때 그 음성에 충만했다. 만일 그 음성에 충만된 상태로 죽는다면 천상에 태어날지 모른다. 이는 청정도론에서 ‘개구리 만두까(maṇḍūka) 이야기’(Vism.7.51)에서도 알 수 있다.

 

부처님이 각가라 연못 부근에서 법문 했을 때 개구리 만두까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만 부처님 음성에 충만했다. 역시 충만한 상태로 법문을 듣던 목동의 막대기에 의해서 짓이겨 죽었을 때 천상에 태어났다. 마지막 죽는 순간 충만된 마음을 대상으로 하여 재생연결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스님이 보호경 서문(Parittāparikamma)을 운율에 맞추어 낭송할 때 스리랑카 불자들은 나직이 따라했다. 아마 다 외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불자들은 법요집을 보며 따라하거나 경청했다. 그런데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했다는 것이다. 이를 음성충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빠릿따 빠리깜마(parittaparikamma) 챈팅

 

빠알리 챈팅 음성에 충만했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특히 보호경 챈팅을 할 때 그랬다. 이는 빠릿따 빠리깜마(parittaparikamma)’를 말한다. 담마위하라 법요집에 실려 있는 일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사만따- 짝까왈--,

Sammantā cakkavāesu,

아뜨라-갓찬뚜 데-와따-,

Atrāgacchantu devatā,

삿담망 무니라-잣사,

Saddhamma Munirājassa,

수난뚜 삭가 목카당.

Suantu sagga-mokkha-da

바릿따 담맛사와나 깔-- 아양 밧단따-!

paritta Dhammassavana-kālo aya bhaddantā!

 

온 세상의 천신과 범천들이여

보호경을 설하는 이 자리에 오시어

천상의 축복과 닙바나로 이끄는

부처님의 수승한 보호 법에 귀 기울이시오.

천신들이여

지금은 (부처님의경)을 들을 때입니다.”

 

 

 

빠릿따 빠리깜마에 대하여 천신초대또는 수호경서라고 번역한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발간된 예경지송에 따르면 천신초대에 대하여 편집한 자가 누구인지 출처가 어디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고 했다.

 

여러 가지 수호경이 있다. 숫따니빠따와 쿳따까빠타에 실려 있는 보배경, 자애경, 축복경도 대표적인 수호경이다. 예경지송에는 16개의 수호경이 소개 되어 있다. 그런데 수호경을 독송하기 전에 반드시 빠릿따 빠리깜마(천신초대)를 먼저 독송한다는 것이다. 경전상 출처불멸의 남방전통예불문이라고 한다.

 

탁발과 가사공양

 

1부 행사가 법요식 행사가 끝나고 탁발시간이 되었다. 미얀마와 다르게 발우에는 음식만 집어넣게 되어 있다. 담마위하라 뒷마당에서 한 것이다. 아직 공사가 덜 끝난 상태에서 한 것이다. 스님들이 발우를 들고 경행코스를 지나가면 신도들이 밥과 반찬 등을 발우에 넣는 것이다. 어느 한국불자는 김밥을 준비해 와서 한 개씩 넣었다.

 

 

 

탁발이 끝나고 가사공양시간이 되었다. 신도들은 준비된 가사를 스님들 께 공양올렸다. 가사공양 보시금을 낸 사람들은 가사를 들고 밖에 나와 의자에 앉아 있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렸다. 가사공양시간이기 때문에 가사 이외 다른 것은 일체 공양하지 않는 것이 다른 곳에서 보는 것과 달랐다.

 

 

 

 

 

역병을 물리치고자

 

코로나19로 인하여 널리 알리지 못하고 행사가 진행된 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언제 어느 때 다시 유행할지 모른다. 그래서 참여자들은 모두 빠짐없이 마스크를 쓰고 방역수칙을 준수하고자 노력했다.

 

코로나시기에 거행된 까티나가사공양 법요식이다. 그래서일까 행사 마무리는 보배경 독송으로 끝났다. 보배경(Ratanasutta, Sn2.1)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베쌀리의 역병을 물리치게 한 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어느 테라와다불교 선원에서는 매일 보배경을 독송하고 있다. 보배경의 서두를 보면 다음과 같다.

 

 

Yānīdha bhūtāni samāgatāni

야니-다 부--니 사마-가따-
Bhumm
āni vā yāni va antalikkhe,

붐마-니 와- -니 와 안딸릭케
Sabbeva bh
ūtā sumanā bhavantu

삽베와 부-- 수마나- 바완뚜
Athopi sakkacca su
antu bhāsita.

아토삐 삭깟짜 수난뚜 바-시땅

 

여기 모여든 모든 존재들은

지상에 있는 것이건 공중에 있는 것이건,

그 모든 존재들은 행복하여지이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이제 말씀을 들으십시오.”(Stn.222)

 

 

Tasmā hi bhūtā nisāmetha sabbe

따스마- 히 부-- 니사-메타 삽베
Metta
karotha mānusiyā pajāya,

멧땅 까로타 마-누시야- 빠자-
Div
ā ca ratto ca haranti ye bali

디와- 짜 랏또 짜 하란띠 예 발링

Tasmā hi ne rakkhatha appamattā.

따스마- 히 네 락카타 압빠맛따-

 

모든 존재들은 귀를 기울이시고,

밤낮으로 제물을 바치는 인간의 자손들에게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방일하지 말고 그들을 수호하도록 하여지이다.”(Stn.223)

 

 

 

 

하루 속히 코로나팬데믹 종식을

 

스리랑카스님이 특유의 운율로 보배경 빠알리 챈팅을 했다. 보배경은 숫따니빠따에도 실려 있고 쿳다까빠타에도 실려 있는 예불문이자 동시에 수호경이다. 보배경 독송으로 공식적인 행사는 모두 끝났다. 다음은 식사시간이다.

 

코로나19시기에 사원에서 식사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대신 사원에서는 도시락을 준비했다. 야외에서 거리를 두고 식사하는 것이다. 다음 일정 때문에 사원에서 식사하지 않았다. 하루 속히 코로나팬데믹이 종식되어서 붓다데와 까티나가사공양이 그야말로 축제의 날이 되길 희망에 본다.

 

 

 

2020-11-0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