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 몸은 타자(他者)들의 이주민공동체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2. 1. 11:14

 

이 몸은 타자(他者)들의 이주민공동체

 

 

온라인비대면이 일상화가 되었다. 에어로빅강습도 줌(Zoom)으로 한다고 말한다.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됨에 따라 집에서 보고 따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뛰는 것은 가능할까? 아파트에서 뛰면 민원이 들어올지 모른다. 코로나대유행시기에 제일 큰 타격을 받는 업종은 대면업종이라 볼 수 있다.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사람이 있다. 집안에 병약자가 있는 사람이다.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다. 설령 나왔다고 하더라도 식사도 하지 않는다. 재수없게 걸리면 민폐 끼칠 수 있다. 원천차단 하기 위해서는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부작용이 발생했다. 한번 나오지 않기 시작하자 아예 연락을 끊어져 버린 것이다. 실시간 비대면접촉의 대명사 에스엔에스(SNS)에서조차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 때 회자된 말이 있다. “가만 있어라.”라는 말이다. 학생들은 가만 있다가 대부분 죽었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통제에 따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 가만 있으면 다 죽는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지금은 코로나대유행시기이다. 정부에서는 가만 있으라고 말한다. 대부분 국민들은 정부의 통제에 따른다. 가게 문을 닫으라면 닫고 열라면 연다. 그러나 보상은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정규직은 코로나무풍지대이지만 소상공인들은 죽어 나고 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재난지원금을 주겠다고 말한다. 3차 지원금을 내년 설 전에는 줄 것이라고 한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순 없다. 무언가 근본적 대책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방역지침을 따르는 것 외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서일까 전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은 방역선진국이 되었다. 정부에서 가만 있으라고 했다. 이번에는 가만 있으면 다 죽는다.”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것 같다. 소상공인들을 제외하고 아직까지는 대부분 살아있다.

 

고미숙선생의 동의보감에서

 

코로나19를 극복하자고 말한다. 이곳저곳에서 코로나극복에 관한 캠페인을 하고 있다. 과연 코로나는 극복할 수 있을까? 동의보감 책을 읽어 보면 코로나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영원히 극복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든다.

 

 

요즘 고미숙선생이 지은 동의보감을 읽고 있다. 다 읽을 수 없어서 관심 있는 것만 읽는다. 그 중에 ()’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 몸 안에 있는 모든 타자의 생명체를 충이라 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코로나바이러스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인류는 코로나와 전쟁을 하고 있다. 과연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고미숙선생은 이 게임에서 인간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지구의 주인은 벌레들이기 때문이다.”(216)라고 했기 때문이다.

 

고미숙선생의 유튜브강연을 즐겨 듣고 있다. 유튜브에 유통되고 있는 수십편의 동영상을 모두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담프로도 보았다. 대담프로를 보니 진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수백명 청중을 모아 놓고 강연하는 것보다 잡담 하듯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물론 동의보감과 관련된 강연도 빼 놓지 않고 들었다. 특히 충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내 몸안은 벌레()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벌레들이 살까? 이에 대하여 고미숙선생은 성인 몸에는 포유류 세포보다 세균세포가 열 배나 많다.”(213)라고 했다. 이 말은 샤론 모알렘아파야 산다라는 책에서 인용한 글이다.

 

몸안에는 세포보다 많은 생명체가 산다고 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몸안에 세포는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다고 하는데 그 만큼의 생명체가 몸을 숙주로 하여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몸 안에는 박테리아, 벌레, (바이러스) 등 셀 수도 없는 수천, 수만종의 생명체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미숙선생은 우리 몸에 대하여 이주민들의 천국이다.”라고 했다.

 

세상은 우리 인간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다. 지구에는 인간 말고도 수천, 수만 종의 생명체가 살고 있다. 이를 우주로 확장하면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 몸도 똑같다는 것이다. 나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 벌레 등 타자와 함께 살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몸을 타자의 생명공동체라고 말한다.

 

우리 몸이 타자생명공동체인 것은 눈으로도 확인된다. 초등학교 시절 대변검사를 했다. 기생충이 있는지 검사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고미숙선생의 자신의 동생 예를 들어 설명했다. 책에서는 괄호를 이용하여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대변검사 봉투를 내는 게 큰 숙제였고, 실제로 내 동생은 회충이 하도 많아 입으로 한 무더기를 토하기도 했었다. !”(211)라고 써 놓았다. 고미숙선생의 독특한 문체이다. 마치 말하듯이 쓰는 것이다.

 

우리 몸과 마음을 조종하는 바이러스

 

동의보감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우리 몸과 마음을 조종하기도 한다.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어떻게 조종할까? 동의보감 내경편에 따르면 상충이라 하여 뇌속에 벌레가 있다고 한다. 상충에 대하여 도에 나아가는 것을 싫어하고 뜻을 버리는 것을 좋아 한다.”(213)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고미숙선생은 상충에 대하여 윤회를 주관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욕망으로 살아간다. 본래부터 욕망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의보감에서는 뇌속에 도를 싫어 하는 벌레가 있어서 욕망을 충동질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성욕을 느끼는 것도 뇌속에 있는 벌레가 화학물질을 만들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조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과연 뇌속에 벌레가 있어서 인간을 화학물질로서 조종하고 있을까?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보기도 한다. 왜 그런가? 인간의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것은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욕망의 대상을 보았을 때 호르몬이 분비하는 것에 대하여 뇌속에 있는 벌레들의 작용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미숙선생은 게임중독, 쇼핑중독도 보기에 따라선 벌레들의 숙주 조종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215)라고 했다.

 

욕망 중에서 식욕과 성욕은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이는 생존과 생식에 대한 것이다.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고, 번식하기 위해서 섹스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욕망은 타고난 것이다. 그럼에도 머리속에 상충이라는 벌레가 있어서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성욕은 인간을 윤회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김진태선생의 책 반야심경의 바른 이해가 있다. 정업에서 성욕과 관련하여

성욕은 생명을 계속 이어가게 하려는 자연의 음모로서 무의식에까지 뿌리를 둔 욕탐이며, 윤회를 거듭되게 하는 원인으로서 해탈에 아주 큰 장애이다.”(반야심경의 바른 이해, 54)라고 했다. 성욕에 대하여 자연의 음모라고 했다.

 

성욕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아기 때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잠재되어 있다. 아이가 자라서 2차 성징기 때가 되면 발현되는 것이다. 이후 인간은 성욕으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성적 상상을 한다. 늙어 죽을 때까지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동의보감에 따르면 머리 속에는 성충동을 일으키는 벌레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현대의학적으로 해석하면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하여 김진태선생은 자연의 음모로 보았다.

 

어떻게 해야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는 동의보감식으로 말하면 어떻게 해야 뇌 안에 있는 상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동의보감에서는 해법을 제시한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이 병에 걸렸을 때는 산에 들어가거나 고요한 방에 거처하며 마음을 맑게 하고 고요히 정좌하며, 이를 맞부딪치고 분향을 하며, 음식을 절제하고 욕심을 끊으며, 의식을 집중하여 보양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거의 나을 수 있을 것이다.”(동의보감 내경편 충, 고미숙의 동의보감 217)

 

 

뇌속에 기생하는 상충은 박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멸할 수 없어서 공존해야 한다. 이는 욕망과 공존해야 함을 말한다. 욕망은 타고 난 것이기 때문에 욕망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불가능함을 말한다. 특히 성욕이 그렇다.

 

욕망은 도를 이루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욕망은 수행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용한 곳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마음을 집중하면 상충이라는 욕망의 벌레를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 욕망의 제어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욕망을 제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은 먼저 멈추라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앉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적한 숲이나 나무아래나 산이나 계곡이나 동굴이나 묘지나 숲속이나 노지나 짚더미가 있는 곳에 처소를 벗으로 삼습니다.”(D2.64)라고 했다. 이 말은 동의보감에서 고요한 방에 거처를 정하며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부처님은 음식절제를 강조했다. 이는 부처님이 니까야 도처에서 그리고 음식의 분량을 아는 사람이 되어라.”(Stn.338)라고 말씀하신 것과 일치한다. 음식은 욕망과 관계 있기 때문이다. 음식절제를 통해서 욕망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동의보감에서도 음식을 절제하고라고 했다. 음식절제가 욕망의 제어에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수행을 강조했다. 욕망을 제어하는 것에 있어서 수행 만한 것이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의식에 집중하라고 했다. 이는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것을 말한다. 더구나 방법까지 말했다. 이는 이를 맞부딪치고라는 말로 알 수 있다. 비장한 각오로 임해야 함을 말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를 맞부딪치고라는 말을 했다. 이런 말은 니까야에서도 보인다. 맛지마니까야 100번 경에 있는 쌍가라바의 경에 따르면, “내가 치아를 치아에 붙이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항복시키고 제압해서 없애버리는 것이 어떨까?”(M100.23)라는 대목을 말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수행을 통하여 욕망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다.

 

동의보감에 대하여 삼교회통(三敎會通) 서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유가, 도교, 불교가 어우러진 것을 말한다. 그래서 동의보감은 치료보다는 예방에 우선한다. 병이 걸려서 치유하는 것 보다는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에 비중을 두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질병은 모두 섭생을 잘 조절하지 못한 데서 생기는 것이니 수양이 최선이고 약물은 그 다음이다.”(42)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병을 다스리거나 예방하는 데 있어서 수양, 즉 수행하는 것이 최선임을 말한다. 욕망과 관련하여 불교적 수행방법이 제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몸 안에 있는 벌레를 박멸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름 아닌 공생(共生)이다. 벌레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만약 바이러스를 박멸하여 무균질의 몸이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면역체계가 무너져서 몸이 지탱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바이러스가 있어서 면역체계가 작동되어서 몸이 유지됨을 말한다. 그래서 고미숙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다. 각종 우주의 미생물들이 거처하는 서식지라면 차라리 이 이주민들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서로를 견재하느라 일방적인 독재가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218)

 

 

한국은 이제 이주민들의 공동체가 되었다. 외국 이주민들이 없다면 나라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안에는 해로운 바이러스도 있지만 유익한 것도 많다. 유익한 것이든 해로운 것이든 함께 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 몸안에 있는 벌레들은 우리 몸의 세포보다 더 많다고 한다. 이런 몸을 과연 내 몸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래서 이 몸은 내 몸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이 사는 공동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해롭다고 하여 박멸한다면 이는 자신의 몸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바이블에 창세기 명령이 있다. 생육과 번식과 관련된 것을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구약 1)라고 되어 있다. 인간이 생육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정복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극에 달한 현시점에서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 인간의 무한 탐욕으로 인하여 자원을 마구 써 버리고 환경을 훼손한다면 재앙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에는 인간만 살지 않는다. 온갖 생명체가 그들 나름대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우리 몸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나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님에 틀림없다. 몸 안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어서 그들 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런 몸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통제 밖에 있기 때문이다. 정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마음이라고 말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아닌 것에 틀림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미 이천오백년전에 우리 몸과 마음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S22.59)라고 선언했다.

 

나의 몸이라 하여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만약 이 몸이 나의 것이라면 병도 걸리지 말고 늙지도 말고 죽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몸에 바이러스에 걸리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의 몸에 대하여 통제권이 없음에도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몸은 타자(他者)들의 이주민공동체


세상이 바뀌고 있다. 불과 1년 전 까지만 해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세상이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불과 20년 전 까지만 해도 스마트폰세상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앞으로 10년 후 또는 20년 후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진리의 세계이다.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미 이루어 놓은 정신문명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이미 이천오백년전에 완성된 부처님 가르침을 말한다. 그 중에 하나가 아마도 우리 몸에 대하여 타자생명체의 공동체임을 선언하는 문구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오온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벌레들에게 있어서 이 몸은 삶의 터전이자 우주와 같은 것이다. 이로운 것도 있고 해로운 것도 있다. 해롭다고 하여 박멸하고자 한다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다. 백신을 아무리 잘 만들어 내도 진화하는 바이러스에는 당해낼 수 없다. 이럴 때는 겸허한 마음으로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코로나를 극복하자고 말한다. 이는 바이스러스와 전쟁하자는 말과도 같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어쩌면 내 몸안에 있는 벌레들이 주인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이러스와의 공존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코로나는 극복대상이 아니라 상생의 대상이다. 벌레들을 진정시키려면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이 몸은 타자들의 이주민동체이다.

 

 

2020-12-0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