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혈

“고맙다, 친구야”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2. 7. 08:45

고맙다, 친구야


친구와 약속을 지켰다. 오늘 오전 안양사에서 열린 막재에 참석했다. 지난주 일요일 육재 때는 시간을 잘못 파악하여 참석하지 못했다. 다 끝난 다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대신 망자의 부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종무소에서 스님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에게 부탁을 받은 것은 3주전이다. 12 6일 동생의 사십구재 막재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장례식만 참석하고 스페인으로 갔기 때문에 일종의 대리참석을 부탁한 것이다.

어려운 부탁이었을 것이다.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믿는 바가 있기 때문에 부탁한 것이라 보여진다. 이런 부탁에 장고하면 안된다. 즉시 수락해야 한다. 일기일회(一機一會)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오지 않는 기회이고 오로지 한번 밖에 없는 일이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친구의 부탁을 받고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혹시나 막재 때 참석 못할 일이 생길까봐 육재 때 가 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대를 몰라서 참석하지 못했다. 막재 때는 꼭 참석하고자 했다. 약속은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 10명 모였다. 망자의 아내와 형, 그리고 사촌이 왔다. 망자와 인연 있는 친구 들도 왔다. 장소는 지장전이다. 종무소 바로 옆에 있다. 대웅전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사십구재의식이나 천도재의식이나 거의 비슷하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는 불단을 향하여 예불의식으로 진행된다. 2부는 망자를 향하여 제사의식으로 진행된다. 모두 1시간 30분가량 걸린다. 극락정토왕생을 발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죽음에 대해 잘 모른다. 죽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접적으로는 알고 있다. 장기가 파괴되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눈꺼풀 움직일 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죽음의 의식은 있을 것이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마지막 죽음의식이 다음생을 결정한다. ,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을 대상으로 재생연결식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마음은 대상이 있어야 일어난다. 중한 업을 대상으로 다음 생을 결정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마음을 대상으로 명색이 생겨난다. 십이연기가 회전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죽음의식에서 재생연결식이 일어나는 것은 순간이라는 것이다. 찰나지간에 다른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다. 마치 마음이 순간적으로 바뀌는 것과 같다.

삶과 죽음에 대하여 이 나무가지에서 저 나무가지로 이동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또 한쪽문을 열면 또 다른 방이 나오는 것과 같다고도 말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삶과 죽음 사이에 간격이 없음을 말한다. 마치 영화에서 장면이 바뀌는 듯하고, 꿈에서 깨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무간연(無間緣)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삶과 죽음이 무간이라면 중유가 있을 수 없다.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곧바로 태에 들어갈 것이다. 화생한다면 즉각 출현할 것이다. 천상과 관련된 인연담을 보면 마치 장면이 바뀌듯이 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불교전통에서는 중유, 즉 중간적 존재를 인정함으로 인하여 사십구재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세의 삶도 중요하다. 이에 못지 않게 죽음 이후의 삶도 알려 주어야 한다. 초기경전을 보면 도처에서 천상과 지옥에 대해 알려 주고 있다. 선인선과와 악인악과를 말한다. 보시하면 공덕이 된다고 말하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천상에 태어난다고 말해 주는 것이다. 사후에 극락정토를 발원하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살아 있을 때 더 많은 공덕을 짓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악행을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해 주는 것이다.


악행을 하면, 두 곳에서 괴로워하니
이 세상에서도 괴로워하고 저 세상에서도 괴로워한다.
내가 악을 지었다고 후회하고
나쁜 곳에 떨어져 한층 더 고통스러워 한다.” (Dhp.17)

선행을 하면, 두 곳에서 즐거워하니
이 세상에서도 즐거워하고 저 세상에서도 즐거워한다.
내가 선을 지었다고 환호하고
좋은 곳으로 가서 한층 더 환희한다.” (Dhp.18)


누구나 운명적 파탄을 맞이한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음 생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평범한 일상보다는 무거운 업이 마지막 죽음의 의식에 떠 오를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것이다. 만약 그가 열반을 체험했다면 매우 강렬한 것이기 때문에 의식을 지배할 것이다. 그래서 흐름에 든 성자는 절대로 악처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설령 성자의 흐름에 들지 못했어도 공덕을 많이 지었다면 그 공덕의 힘으로 선처에 태어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사십구재 막재가 끝나고 친구에게 사진을 보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먼 나라이지만 실시간으로 소통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친구는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마음의 짐을 덜게 되었다.”라고 했다.

오늘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인연이다. 어디서 또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 인연이 선연이 되게 해야 한다. 오늘 참석한 사람들 모두에게 준비한 음악씨디를 나누어 주었다. 이미우이(Imee Ooi) 음악씨디를 말한다. 명상음악도 되고 힐링음악도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중에 카톡을 보니 친구에게 또 메세지가 왔다. “재삼 고맙다, 친구야라고.

 

 

2020-12-0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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