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이 특별법에 갇히다니
오늘 아침 유튜브를 보다가 시선이 멈추었다. 5.18과 관련된 것이다. 최진석 선생이 쓴 것을 보았다. 최진석 선생의 유튜브채널 ‘최진석의 새말새몸짓’의 커뮤니티에 쓰여 있는 것이다. 2020년 12월 11일에 쓴 것이다. 국회에서 5.18특별법이 통과되자 마자 쓴 것이라 볼 수 있다. 제목은 ‘나는 5.18을 왜곡한다.’라는 자극적인 내용이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5.18을 왜곡한다)
최진석
지금 나는 5.18을 저주하고, 5.18을 모욕한다. 1980년 5월 18일에 다시 태어난 적 있는 나는 지금 5.18을 그때 5.18의 슬픈 눈으로 왜곡하고 폄훼한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죽기를 원하면서 그들에게 포획된 5.18을 나는 저주한다. 그 잘난 5.18들은 5.18이 아니었다. 나는 속았다.
금남로, 전일빌딩, 전남도청, 카톨릭쎈타, 너릿재의 5.18은 죽었다. 자유의 5.18은 끝났다. 민주의 5.18은 길을 잃었다. 5.18이 전두환을 닮아갈 줄 꿈에도 몰랐다. 나는 속았다.
3.1, 4.19. 6.10, 부마항쟁의 자유로운 님들께 동학교도들의 겸손한 님들께 천안함 형제들의 원한에 미안하다.
자유를 위해 싸우다 자유를 가둔 5.18을 저주한다. 그들만의 5.18을 폄훼한다. 갇힌 5.18을 왜곡한다.
5.18이 법에 갇히다니. 자유의 5.18이 민주의 5.18이 감옥에 갇히다니 그들만의 5.18을 저주한다. 이제 나는 5.18을 떠난다. 5.18이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죽어라, 그러면 산다. 나는 5.18을 지키러 5.18을 폄훼한다. 그날처럼 피울음 삼키며 나는 죽는다.
5.18아 배불리 먹고 최소 20년은 권세를 누리거라 부귀영화에 빠지거라 기념탑도 세계 최고 높이로 더 크게 세우고 유공자도 더 많이 만들어라 민주고 자유고 다 헛소리가 되었다. 5.18 너만 홀로 더욱 빛나거라. 나는 떠난다. 내 5.18 속에서 나 혼자 살련다. 나는 운다.
5.18역사왜곡처벌법에 21살의 내 5.18은 뺏기기 싫어.
(나는 5.18을 왜곡한다, 최진석)
본래 시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단락만 유지했다. 5.18특별법이 통과된 것을 환영하기 보다는 아쉬워 하는 마음이 역력하다. 이는 “5.18이 법에 갇히다니.”라는 구절로 알 수 있다.
최진석 선생은 왜 아쉬워했을까? 이는 5.18에 대하여 비방하고 비난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법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뉴스에 따르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최대 징역 5년형에 처하도록 한 5.18 특별법 개정안도 가결됐습니다.”(KBS, 2020.12.09. 19:56)라고 소개되어 있다.
5.18과 관련한 왜곡이 있었다. 지만원이 유명하다. 그는 ‘광수’라 하여 북한군특수군이 광주로 침투하여 배후에서 폭동을 조종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일베에서는 홍어택배 사진을 올려서 국민적 분노를 샀다. 지만원의 경우 역사왜곡으로 인하여 결국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진석선생의 5.18특별법 관련 시를 보고서 권위주의 정권시절 법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5.18특별법이라 하여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최대 5년 징역이라고 했다. 개정안 제8조를 보면 (5.18민주화운동 부인-비방-왜곡-날조 및 허위사실 유포 등의 금지) 1)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5.18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다.
예외 없는 법은 없다. 제1항을 보면, 신문, 잡지, 방송, 그 밖의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의 이용에 대하여 “제1항의 행위가 예술-학문-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과정에 관한 보도, 기타 이외 유사한 목적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쉽다. 굳이 특별법까지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에 대한 것이다. 아직까지 3.1, 4.19, 6.10에 대한 특별법은 보이지 않는다. 5.16에 대한 것도 없다. 그럼에도 유독 5.18에 대해서만 특별법을 만든 것은 특별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망국적인 지역감정에 기반한 악의적 왜곡, 날조로 일관했을 때 5.18정신이 크게 훼손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종종 5.18관련 특별법 소식을 들었다. 5.18관련 단체 사람들이 국회앞에서 천막을 치고 여러 달 농성을 하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목숨걸고 투쟁하는 것은 고귀한 가치를 지켜 내기 위한 것이라 본다. 그럼에도 뜻 있는 사람의 눈에는 과도한 것으로 보인 것 같다.
최진석 선생은 고향이 전남 함평이다. 그러고 보니 동향이다. 그리고 학번도 같다. 최진석 선생은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직을 정년이 6년 남았음에도 버리고 고향에 ‘호접몽’이라는 집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그런 최진석 선생은 5.18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고 본다.
최진석 선생은 유튜브에서 노자와 장자를 강연했다. 이제까지 수십편의 동영상 강연을 모두 다 들었다. 어떤 것은 두 번, 세 번 들은 것도 있다. 최근에는 독서와 관련된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최진석 선생을 분노하게 했을까? 그것은 굳이 만들지 않아도 역사의 자정능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임에도 특별한 법을 만든 것에 있다고 본다. 이는 어쩌면 5.18을 고립시킬지 모른다.
5.18당시 광주는 고립되어 있었다. 지금은 모두 밝혀 졌지만 폭도로 몰리기도 했다. 만일 51.8때 도청사수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이후 전개된 6.10항쟁도 없었을 것이다.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도청에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빼앗아 온 것이다.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면 빼앗긴 것을 되찾아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민주진보진영에서는 항상 5.18정신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지난 9년동안 보수세력이 집권했을 때 5.18은 능멸당했다. 이는 5.18뿐만 아니라 6.10도 함께 빛이 바래다시피 했다. 보수기득권세력에게 정권을 내 주었을 때 이는 5.18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이 크게 빛바랬다. 이후 민주화운동 역시 폄하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시 찾아왔다. 2016년 광화문 촛불로 5.18도 찾아오고, 6.10도 찾아 온 것이다. 그 때 당시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되찾아 온 것이다. 만일 아무런 희생이 없었다면, 모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면 찾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세월이 많이 지났다. 5.18이 일어난지 40년이 되었다. 대학 2학년때 일어난 것이다.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참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늘 함께 했다. 이번 봄에는 김동수열사 추모제가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열렸는데 처음으로 가 보았다.
5.18에 대한 역사평가는 이미 이루어졌다.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름 지어졌고 망월동은 국립묘역이 되었다. 극우 성향의 극소수만이 이를 부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엄한 처벌법을 연상케 하는 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한다. 최진석 선생 말 대로 5.18은 특별법에 갇히게 된 것은 아닐까? 1980년 5월 광주가 고립되었듯이, 5.18특별법은 5.18을 고립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2020-12-1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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