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기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믿고 보는 작가 박완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2. 18. 07:39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믿고 보는 작가 박완서


믿고 보는 산드라 블록”, 이 말은 케이블 영화채널 자막으로 볼 수 있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선택임을 말한다. 실제로 산드라 블록이 출연한 영화는 모두 다 재미있다. 그래서 그녀가 나오는 영화는 어느 것이든지 믿고 본다. 믿고 보는 배우가 있다면, 믿고 보는 소설가가 없지 않을 수 없다. 박완서 작가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오늘 택배를 하나 받았다. 그제 인터넷주문한 박완서 작가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이다. 꽤 긴 길이의 소설 제목이다. 구입하게 된 동기가 있다. 페친(페이스북친구)이 소개했기 때문이다.

 

 

페친에 따르면, 이 소설은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의 후속 작품이라고 했다. 정말로 놀라웠다. 이런 소설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믿고 보는 소설이다. 주저없이 즉시 구매했다. 스마트폰에 인터넷서점 앱이 깔려 있어서 몇 번 터치하는 것으로 손쉽게 구매했다.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본 것은 칠팔년 된다. 아니 본 것이 아니라 들었다. 오디오북으로 들은 것이다. 마치 라디오 드라마처럼 나레이션과 대화로 이루어져 있어서 읽는 것과 또다른 맛이 있었다.

 


처음 작가의 소설을 접하고 매료되었다. 간결하면서도 섬세했다. 특히 심리묘사에 뛰어났다. 무엇보다 한국전쟁에 대한 것이다. 서울에서 주인이 두 번 바뀐 것에 대한 상황이 잘 설명되어 있다. 밤사이에 세상이 바뀌고, 또다시 바뀐 세상에서 혼란한 삶이 잘 묘사되어 있다.

해방후 한국전쟁 전까지 대부분 지식인들은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었다.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이 인민군 세상이 되었을 때 작가도 협조한 것이다. 그러나 서울이 수복되었을 때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이에 대하여 작가는 벌레의 시간이라고 했다. 또 다시 바뀐 세상에서 벌레취급 당한 것이다.

다음해 1 4일 또다시 세상이 바뀌었다. 도강해야 했으나 오빠가 총상을 입어서 피난 갈 수 없었다. 이렇게 세상이 또 한번 뒤집혔을 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작가는 텅 빈 도시에 남게 되었을 때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라며 말미에 써 놓았다.

작가는 전쟁에서 겪은 것을 언젠가 글로 세상에 알려야 겠다고 다짐했다. 마침내 작가는 40이 된 늦은 나이에 등단하여 소설로서 증언했다. 그 중의 하나가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이다. 그런데 소설을 보면 갑자기 단절이 된 듯하다. 결말 없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1.4후퇴 시기에서 딱 멈추어 버린 것이다.

 

이번에 페친의 포스팅을 보고서 후속작품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후의 이야기를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보니 후속작품임이 분명하다.

믿는다라는 말보다 믿고 본다라는 말이 더 강렬하다. 어쩌면 묻지마 믿음일 수 있다. 믿고 보는 산드라 블록, 믿고 보는 박완서 같은 것이다. 내 글도 믿고 볼 수 있을까? 어느 페친은 믿고 보는 선생님의 글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믿고 보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리이타(自利利他)적 글쓰기이어야 한다. 글을 씀으로 인하여 자신에게도 이익 되고 타인에게도 이익 되는 글을 말한다. 그런데 이번에 유튜브에서 본 고미숙선생의 글쓰기 강연을 보니 색다른 얘기를 했다. 그것은 자기자신과 세계에 대한 질문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것이에요.”라고 말 했다.

글쓰기는 상업적 목적을 위한 것이거나 스펙 관리여서는 안된다. 진정한 글쓰기는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해야 한다. 뻔한 결론이나 뻔한 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의문을 가졌을 때 그래서 어쩌라구요?”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다.

오늘 기쁜 마음으로 택배를 받았다.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설레였다. 그것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믿고 보는 것이다. 오늘 앞부분을 약간 읽었다. 형광메모리펜과 붉은 볼펜을 준비하여 밑줄 치며 읽었다. 읽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독후기를 쓸 목적으로 읽은 것이다. 벌써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쏟아져 나온다. 1.4후퇴 당시 텅 빈 서울을 묘사한 장면이 있다.


우리가 지금 이고 있는 하늘이 대한민국의 하늘인지 인민공화국의 하늘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다시 겨끔내기로 내쫓겼다.”(14)

신문도 방송도, 떠도는 말도 접할 수 없었으므로 우리는 오늘 우리가 안죽었다는 것밖에는 앞으로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었다.”(22)

앞날을 걱정하는 건 태평성대에나 할 짓이다. 전시에는 그날 안죽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걸 모르면 그걸 아는 자의 짐이 되기 쉽상이다.”(24)

이데올로기 제까짓 게 뭔데 양심도 없지. 오빠 같은 죽음이 양심의 짐이 안되는 이데올로기 따위가 왜 있어야 하느냔 말이다.”(26)

 


모두 피난 가버린 텅 빈 유령의 도시에서 내뱉은 말이다. 이미 한차례씩 세상이 바뀐 것을 경험했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 경험을 앞두고 있다. 이럴 경우 살아 남아야 승리자가 된다. 앞날을 걱정하는 것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는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각오가 엿보인다. 과연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연속극 보는 것처럼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작가는 서문에서 망각을 얘기했다. 태평성대에 언제 그런 일이 있기나 한 것인지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린 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겪은 사람은 생생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우.”라고 말한다.

작가는 알리고자 했을 것이다. 자식을 많이 낳아서 다 키워 놓고 늦은 나이에 등단하여 엎치락뒤치락 바뀐 세상을 소설로서 증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왔을 때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던 것 같다. 그래서 정말로 그런 모진 세월이 있었을까?”라며 서문에서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꿈만 같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편할 때는 그런 세월이 있기나 한 것일까?”라며 애써 잊으려 할지 모른다. 분명히 기억하기도 싫은 끔찍한 시절이 있었음에도 생각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망각이다. 저 산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파트 재개발 단지로 지정되어 산이 절반 정도 날라 갔다면, 후에 입주한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그래서 작가는 모진 경험을 재개발되기 전의 산으로 비유하여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라며 소설제목으로 한 것이다.

흔히 저 산은 알고 있을 것이라 한다. 다 변해도 저 산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도시가 건설되면 작은 산 하나 통째로 사라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실제로 판교신도시 건설현장에서 목격했다. 자본이 집중되면 산 하나 날려 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개발지역에서 타워형 고층아파트를 보면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음에 따라 기억도 차츰 망각된다. 작가는 엎치락뒤치락 세상을 소설로서 증언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작품을 대하니 못다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믿고 보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이다.

 

 

2020-12-1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