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기

소설 ‘광주 아리랑’을 eBook으로 구매했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1. 2. 23. 15:27

소설 ‘광주 아리랑’을 eBook으로 구매했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책이 오지 않는다. “오늘은 올까?”라며 기다려 보지만 오지 않는다. 책을 인터넷 구매 한지 13일 지났다. 대체 어쩐 일인지 궁금해서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여전히 배달중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책 재고가 없어서 다른 곳에서 가져다 보내기 때문에 오래 걸리는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eBook’이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책을 eBook으로 구매했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스마트폰에서 아무 생각없이 누른 것이 eBook을 구매한 것이다. 잠시 당황했다. 물릴 수도 없다. 구매 버튼 누른지 1주일 이내이면 환불이 가능하다. 그대로 보는 수밖에 없다.

 

작업용 PCeBook 프로그램을 깔았다. 그리고 구매한 책 두 권을 다운 받았다. eBook광주 아리랑이다. 작가 정찬주 선생의 소설이다. 페이스북에서 책 소개가 있어서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구매한 것이다.

 

정찬주 선생의 책을 읽어 보았다. 두 달 전에 다산의 사랑을 읽어 본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스타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무엇보다 작가는 불교소설가라는 것이다. 불교관련 소설을 많이 써서 불교소설가라는 칭호를 붙여 주는 것 같다.

 

 

박효선 열사에 대한 이야기

 

광주 아리랑은 어떤 책일까? 서문을 읽어 보았다.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소설이다. 여기서 광주민중항쟁이라고 한 것은 의미가 있다. 공식명칭인 광주민주화운동보다 광주정신에 더 가까운 말이다.

 

작년 한홍구선생의 5.18관련 유튜브를 본 적이 있다. 한선생에 따르면 1980년 광주와 관련하여 광주민중항쟁이라는 말이 가장 적확하다고 했다. 왜 그런가? 광주에서 10일간은 운동이 아니라 항쟁이었기 때문이다. 총을 들고 끝까지 도청에서 결사항전한 이유가 있다. 더구나 광주시민전체가 저항했기 때문에 민중항쟁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서문을 읽어 보니 작가의 죽마고우 박효선 열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박효선 열사가 광주에서 겪었던 10일간의 이야기를 듣고서 소설화한 것이다. 그것도 40년 만이다.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을 맞이하여 2020년 봄에 출간되었다.

 

열사는 45세에 간암으로 죽었다. 이에 대하여 작가는 도피생활의 고통, 연극에 대한 열정과 혹사, 산 자로서의 부끄러움 등등이 그의 생명을 재촉해왔던 것이다.”라고 썼다.

 

박효선 열사는 어떤 분일까? 책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열사를 죽음으로 이끈 것 중의 하나가 산 자로서의 부끄러움이 있다고 했다. 이는 다름 아닌 부채의식이다.

 

산 자들의 부끄러움과 부채의식

 

광주민중항쟁과 관련하여 산 자들은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가져 갈 것이다. 평생 못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부채의식이 있어서 광주가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한홍구 선생은 도청에서 결사항전의 의미를 강조했다.

 

도청에서 결사항전이 있었다. 모두 죽음을 각오한 항전이었을 것이다. 모든 면에서 공수부대와 비교가 되지 않았음에도 도청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한홍구 선생은 되찾아 오기 위해서라고 했다.

 

만일 그때 도청에서 결사항전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광주에서 10일간은 폭동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총을 든 사람들은 폭도가 되었을 것이다. 역사에서는 광주사태 또는 광주폭동이라고 기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날 도청에서 결사항전이 있었기 때문에 광주정신도 있었다고 말한다.

 

도청에 들어간 사람들은 죽으려고 들어갔다.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죽으려고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싸워보지도 않고 도청을 내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는 찾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결사항전 했기 때문에 나중에 도청을 되찾아 온 것이다.

 

도청에 들어 가지 않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들어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엄청난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산 자의 부끄러움이이기도 하고 부채의식이기도 하다.

 

부채의식은 도청에 죽으로 들어가지 않은 사람만 가진 것은 아니다. 광주시민 전체가 부채의식이 있었고, 광주 바깥에 사는 동시대 사람들도 역시 부채의식이 있었다.

 

부채의식은 나중에 민주화운동의 동력이 되었다. 멀리는 19876.10민중항쟁을 이끌어 냈고, 가까이는 2016년 광화문 촛불로 타올랐다. 이에 대하여 한홍구선생은 장엄한 패배 거룩한 부활이라고 말했다.

 

시민군은 결사항전했지만 결국 도청을 빼았겼다. 역설적으로 빼았겼기 때문에 되찾아 왔던 것이다. 만일 계엄군에게 도청을 순순히 내 주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되찾아 오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후 6.10항쟁도 없었고 광화문촛불도 없었을지 모른다.

 

김동수열사 추모제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지 올해로 41주년이 되는 해이다. 올해도 특별한 일 없으면 대불련에서 제공하는 전세버스에 몸을 실을 생각이다. 2019년부터 해마다 김동수열사 추모제가 광주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김동수열사는 조선대 전자공학과 3학년 때 도청에서 죽었다. 도청에서 결사항전하다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특히 김동수열사는 대불련 전남지부장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책임감으로 인하여 도청에 스스로 죽으로 갔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8년전에 김동수열사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일을 도와줄 사람을 찾았는데 소개받은 사람이 김동수열사 친구였던 K선생이었다. K선생은 78학번으로서 한학번이 빠르고 나이도 많지만 이후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K선생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1980년 광주와 김동수 열사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K선생은 그때 당시 구호대로 활동했다고 한다. 총상자를 병원에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때 이야기를 듣고 블로그에 김동수열사 이야기와 피를 토하는 듯한 김용옥의 ‘역사는 말한다’’(2013-12-18)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그런데 K선생은 김동수 열사의 죽음과 관련하여 약간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여러 증언에 따르면 김동수 열사는 도총에서 결사항전하다 죽었는데 K선생은 저격당해서 죽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시 물어 보니 자신의 기억이 잘못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불교계에서도 도청 결사항전 희생자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런 인연으로 2019년 김동수열사 추모제에 참석했다. 서울에서 대불련동문 전세버스가 출발했기 때문에 함께 탑승한 것이다.

 

대불련 출신은 아니다. 그럼에도 재가불교단체에서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이런 이유로 전세버스를 탑승했는데, 대불련 동문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대불련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말한 것은 부채의식이다. 주로 80학번 이전 사람들이다.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채의식은 부채의식으로 끝나지 않았다. 산 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마치 부채의식을 갚기라도 하는 것처럼 민주화 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부채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민주화의 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도청에서 결사항전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이런 이유로 광주민주화운동이라기 보다는 광주민중항쟁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소설 광주 아리랑서문에 해당되는 작가의 말을 읽었다. 어느 정도 방향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작가는 죽마고우 박효선 열사와 삶과 죽음과 관련하여 운명이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것 같다.”라고 했다. 이 말은 오늘 의무적 글쓰기에서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것이다.”라고 쓴 것과 우연히 일치한다. 이것도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본래 우연은 있을 수 없다. 없던 것이 홀연히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접촉의 결과로 생겨난다. 접촉이 없으면 발생되지 않는다. 그런데 접촉은 원인과 조건과 결과에 따른다는 사실이다.

 

어느 것도 접촉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 오늘 쓴 글에서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것이다.”이라고 했는데, 소설 서문에서도 운명이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것 같다.”라고 했다. 이를 우연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접촉했기 때문에 발생된 것이다. 이것도 어쩌면 책과의 인연일 것이다.

 

19805월 당시 광주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났을 때 대학교 2학년이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항쟁에 참여하지 못했다. 지금도 이러 생각을 해본다. “내가 그때 거기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라고.

 

그때 당시 같은 또래 청년들이 항쟁을 주도했다. 학생도 있었지만 학생이 아닌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이땅에서 천대받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주로 총을 들었다. 이는 다큐영화 김군을 보면 알 수 있다. 지식인들은 이런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살고자 했는지 모른다.

 

소설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될 것 같다. 그렇다고 소설 읽듯이 빨리 읽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독후기를 남기기 위해서 음미해 가며 읽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100자 이내는 복사해서 붙이기가 가능하다. 큰 모니터를 이용하여 시간 날 때 마다 메모하며 보려고 한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2021-02-2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