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기

독후기는 자리이타행, 히말라바위취를 읽기 시작하면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1. 2. 24. 17:01

독후기는 자리이타행, 히말라바위취를 읽기 시작하면서


어제 주문했던 책이 오늘 택배로 도착했다. 작가 강명희 선생의 소설히말라야바위취이다. 이 소설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페이스북에서 책 소개를 해서 샀을 뿐이다.

 


요즘 에스엔에스(SNS)시대이다. 서로 대면하지 않고서도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과 정보통신발달에 따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이른바 페친, 페이스북친구를 말한다. 강명희 선생도 페이스북친구이다.

페이스북은 실시간 소통이 특징이다. 올린 글에 공감을 하면 0.5초도 되지 않아 반응을 하는 것 같다. 사실상 대면이나 다름없다. 그러다 보니 자주 보게 된다. 매일 보게 된다. 한달, 두 달, 일년, 이년을 보게 되면 40년지기 친구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

강명희 선생은 소설가이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는 유명소설가는 아니다. 나이 들어 등단한 늦깍이 소설가로서 이제 세 권을 썼다.

책 소개는 어떻게 하는 것일 것일까? 주로 지인들에게 소개한다고 말한다. 친구에게도 소개한다. 페이스북친구도 친구이기 때문에 페이스북에 책 소개한 것이다.

책을 열어 보았다. 먼저 서문에 해당되는작가의 말을 보았다. 작가는삶이 힘들 때마다 글을 썼다.”라고 했다. 이 말에 공감한다. 비록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역시 힘들 때마다 썼다. 매일 썼다. 요즘에는의무적 글쓰기라고 말한다.

매일매일 의무적으로 쓰다 보니 엄청나게 많이 썼다. 그러나 작가처럼 소설을 쓴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쓴 것이다. 수필을 썼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담마에 대해서 썼다.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서 썼다. 이런 글쓰기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수행의 방편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글을 왜 쓰는 것일까? 밥벌이로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럴 경우 전문작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글로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늘 배고프다고 말한다.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갖는다면 배고픈 삶이 될 것 같다. 유명작가가 아니라면 글을 써서 벌어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배가 고파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배 부른 상태에서는 글이 써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오욕락을 추구한다. 눈과 귀 등 다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즐기는 삶을 말한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즐기는데 열중이다. 부자는 부자의 즐거움이 있고,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의 즐거움이 있다. 각자 처지에 맞게 즐길거리를 찾는 것이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즐거움은 안락과 동의어이다. 애써 힘든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글쓰기는 힘만 들어가는 일일뿐 아무런 이득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돈도 되지 않는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갖는다면 어떨까? 아마 글쓰기가 노동이 될 것 같다. 그런데 글이라는 것은 노동하듯이 쓰면 써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은 억지로 써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공장에서 물건 찍어 내듯이 쓸 수 없다. 만약 글쓰기를 밥벌이로 수단으로 쓴다면 노동중에서 상노동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좀 더 여유 있는 사람들이 쓰는지 모른다.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일은 많다.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아마도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돈은 아무리 벌어도 남는 것이 없지만 글은 한번 써 놓으면 남는다. 소설로 써 놓으면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소설이 고전이 된다면 생명력을 가질 것이다. 미래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글이라고 해서 같은 글은 아닐 것이다. 한번 보고 마는 글도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남는 글도 있다. 소설이야말로 오래 남는 글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심혈을 기울인다. 다듬고 또 다듬에서 세상에 내 놓았을 때 뿌듯해할 것이다. 그래서 강명희 선생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사랑과 아픔이 글자로 토해져 나와 이렇게 한권의 소설집이 되었다. 하나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나는 자식을 낳는 것 같은 고통과 환희를 맛보았다. 지금 그 자식들을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내 소설을 세상에 내보낸다.”

여자에게는 출산의 고통이 있다. 남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출산은 고통도 있지만 환희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환희이다. 자신이 만든 것에 대한 기쁨이다. 작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소설을 출간하는 것에 대해서자식을 낳는 것 같은 고통과 환희를 맛보았다.”라고 했다.

소설 히말라야바위취를 읽어 보았다. 초반에 해당되는 노을편만 읽어 보았다. 나머지는 시간나는 대로 읽을 작정이다. 천천히 밑줄치며 읽으려고 한다. 그러나 소설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알 수 없다.

소설속의 주인공은 유명인에 대한 것도 아니고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것도 아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을편에서 그런 모습을 보았다.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다. 요즘과 같은 바쁜 시대에 섬세한 묘사가 시간낭비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한단어 한구절을 표현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한다. 하루밤에 다 읽고 마는 소설이 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소설이 다 그렇듯이 강명희 작가의 소설도 장면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다. 나이가 들어 쓴 소설이어서인지 깊이가 있다. 젊은 작가들은 표현할 수 없는 것도 많다. 특히 과감하게 표현한 장면도 눈에 띈다.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라고 본다.

소설에서 솔직하게 표현된 것이 흥미를 끌어당긴다. 무엇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다. 그리고 현실에서 부조리에 대한 고발이 그렇다. 점점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무엇이든지 쓰는 사람이다. 강연을 들으면 노트한 것을 바탕으로 쓴다. 법문을 들으면 역시 노트한 것을 쓴다. 소설을 읽으면 당연히 독후기를 작성한다.

블로그에독후기카테고리를 만들어 놓았다. 확인해 보니 22편이 올려져 있다. 나중에 모이면 이를 책으로 내고자 한다. 그러나 출판사에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18권에 달하는 책을 냈다. 문구점에 인쇄와 제본을 의뢰하여 딱 두 권만 만든다. 독후기가 모이면 이렇게 할 것이다.

작가는 소설을 출산에 비유했다.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소설을 쓰기 위한 노고를 생각하면 출산보다 더 힘든 작업인지 모른다. 누군가 읽어 주어서 공감해 준다면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글은 일단 써 놓으면 누군가는 본다. 정말 소설 읽듯이 하루 밤 만에 다 보고 깨끗이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오래도록 기억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깊이 공감하는 독자 한사람만 있어도 작가의 사명은 완수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생업에 바쁘다. 이런저런 모임에도 참가해야 한다. 경전을 근거로 한 글쓰기도 해야 한다. 하루가 바쁘게 돌아간다. 여유 있게 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읽어 보아야할 책은 읽어야 한다.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반드시 독후기를 남긴다. 그래야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 이는 작가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나도 좋고 작가도 좋은 것이다. 나에게도 이익되고 남에게도 이익 된다면 최상이다. 독후기 작성이야말로 자리이타행이다.


2021-02-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