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기

인생은 결말을 알기 힘든 연극, 광주 아리랑 5.14-5.17

담마다사 이병욱 2021. 3. 5. 15:28

인생은 결말을 알기 힘든 연극, 광주 아리랑 5.14-5.17

 

 

소설 광주 아리랑을 읽고 있다. 매일 조금씩 읽고 있다. 밑줄 치며 심지어 지도를 참조하여 읽고 있다. 읽다 보니 517일까지 읽었다. 514일부터 517일까지 4일간의 기록에 대한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모두 실명이다. 윤상원, 박관현, 김한봉 같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인물도 있지만 박효순, 서명원, 김상윤 등 처음 듣는 이름도 많다. 무엇보다 일반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에는 경비원도 있고, 노동자도 있고, 구두닦이도 있다. 모두 실명이다. 학생도 실명으로 등장한다. 이로 보아 소설을 쓰기 위해서 자료가 잘 수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속에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에서 작가에 대한 것도 있다. 작가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그렇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박효선의 말을 빌어서 그래서 동국대 국문과에 다니는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하고 친하게 지냈제.”(1127)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작가가 작가를 언급한 것을 보면 흥미롭다. 죽마고우 박효선의 말을 빌어서 서울에서 내려오면 소설 이야기하고 임철우하고 같이 쌍봉사 다리 밑으로 가서 바나로 밥해 묵고 희희낙락하고 그랬어.”라고 했다.

 

작가의 정치적 성향은 어땠을까? 박효선의 말에 빌어서 근디 그 친구는 사회과학에는 관심이 벨로 읎더라고. 불교에 빠져서인지 리버럴하고 애늙은이멩키로 초월적이여.”라고 했다. 이어서 세상 모든 것이 결국엔 허망한 것이라고 말허면서 말여.”라고 했다.

 

박효선 입을 빌어 작가가 작가자신을 표현한 것을 보았다. 작가는 그때 당시 서울 모여고 국어교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회나 정치쪽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 대신 불교에 심취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동국대가 조계종 종립대학교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동국대와 인연

 

동국대와 인연이 있다. 다녔던 중학교가 동국학원소속이었기 때문이다. 동대부중을 말한다. 1973년에 동대부중을 이른바 뺑뺑이로 들어 갔다.

 

동대부중은 불교학교였기 때문에 불교시간이 있었다. 불교선생님도 있었다. 교법사라고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불교선생님은 조용길선생님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를 했었다. 또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당시 불광사 창립에 관여하기도 했다.

 

학교는 종로5가 근처 연지동에 있었다. 지금도 기억 나는 것은 부처님오신날에 동국체전을 한 것이다. 동국대 대운동장에서 한 것이다. 카드섹션 연습하기 위해서 2주가량 매일 동국대로 갔었다. 오전에 수업하고 도보로 이동하여 오후에는 대운동장에서 카드섹션 연습을 단체로 한 것이다.

 

국어선생님 중에 동국대 국문과 출신도 있었다. 김경남 선생님이다. 여선생님이다. 아마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 온지 1-2년 밖에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추정해 보면 아마 68학번 정도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렇게 동국대와 인연이 있다.

 

김동수를 발견하고

 

소설에서 김동수라는 이름도 발견했다. 반가웠다. 여러 차례 글에서 언급한 김동수 열사를 말한다. 조선대 전자공학과 3학년 당시 대불련 전남지부장을 했고 조선대 불교학생회장을 했던 인물이다.

 

김동수는 마지막날 도청에서 결사항전을 하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이에 대불련 후배들은 해마다 5월이 되면 추모제를 개최하고 있다.

 

소설에서 김동수에 대한 것을 보면 피신한 것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517일 밤에 7공수 35대대가 조선대에 진입했을 때 피한 것이다. 또한 소설에서는 김동수와 같은 학번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에 대하여 실제로 1학년 때 김동수와 함께 불교학생회에 들어온 학번이 같은 동기는 군대를 가고 없었다.”(1164)라고 표현되어 있다.

 

김동수는 1학년 때 영장이 나왔는데 연기를 했기 때문에 군대를 가지 못했다. 그런데 같은 학번 사람은 영장이 나왔을 때 군대에 갔다는 것이다. 이것이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 놓았다.

 

김동수의 선배가 있다.  이충길’을 말한. 작년 김동수열사 추모제때 전세버스를 함께 탔기 때문에 알고 있다. 이에 대하여 김동수열사의 승의적 초월의 ’(2020-05-25)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글에서 이충길에 대하여 김동수열사 보다 한해 선배인 77학번 이충길 샘이 있다. 조선대 불교학생회 선배인데 초대 김동수열사추모 사무국장을 했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이충길은 버스 속에서 자기소개를 했다. 조선대 불교학생회 선배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77학번이라고 했다. 5.18이 나기 1년 전인 1979년에 군대를 갔었기 때문에 5.18을 피해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충길은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30대 초반인 1992년 김동수 열사 추모비 설립을 주도했다. 현대산업개발에 있을 때 조선대 교정에다 추모비를 건립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동문과 선배, 후배를 찾아 다니며 한푼, 두 푼 모은 결과 2,700만원이 되었다고 한다.

 

김동수 열사 추모비는 1992년 건립되었다. 최고로 좋은 재질의 바위를 깍아 만든 것이라고 했다.

 

2019년에 대불련을 따라 처음으로 추모비가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추모비에는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같소?”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에 대하여 지선스님은 추모사에서 이 말을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으로 설명했다.

 

횃불시위에서 데자뷰를

 

소설속에서는 수많은 실명이 등장한다. 교수나 교사 등 이름 있는 지식인도 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실명이 공개 되어 있다. 아마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썼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항쟁에 참여한 모두라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와 같이 어떤 영웅적인 인물이 주인공이 되어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항쟁의 주인공이 되었다. 심지어 계엄군의 입장에서 선 자들도 실명이 등장하는데 이들도 소설속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일종의 데자뷰를 느꼈다. 그것은 민주화성회에서 횃불시위를 한 것이 마치 2016년 광화문촛불에서 횃불을 든 것과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도청앞에서 민주화성회가 광회문에서 다시 타오른 것처럼 보였다.

 

피를 끓게 한 정의파 훌라송

 

소설에서 훌라송에 대한 것도 있다. 훌라송은 노래라기 보다는 구호이다. 서울에서도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대학생들이 많이 불렀다. 그때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훌라송이 있다. 그것은 우리들은 정의파다 훌라훌라. 같이 죽고 같이 살자 훌라훌라. 무릎꿇고 살기 보다 서서 죽기 원한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훌라훌라.”라는 내용이다. 이를 정의파 훌라송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훌라송은 독특한 운율이 있다. 짧고 간결한 구호를 훌라훌라하는 후렴에 맞추어 부르는 것이다. 특히 우리들은 정의파다 훌라훌라. 같이 죽고 같이 살자 훌라훌라. 무릎꿇고 살기 보다 서서 죽기 원한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훌라훌라.”라고 외쳤을 때 피가 끓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은 구절의 훌라송은 테라가타에도 유사한 게송이 있다. 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Jīvitañca adhammena,

dhammena maraañca ya;

Maraa dhammika seyyo,

ya ce jīve adhammika

 

“여법하지 못한 삶과

여법한 죽음이 있다.

여법한 죽음이,

여법하지 못한 삶보다 낫다.(Thag.670)

 

 

고닷따장로가 읊은 게송이다. 이 게송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극복을 위한 게송이다. 감각적 욕망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법답게 죽는 것이 더 나음을 말한다. 부처님 제자의 패기를 엿볼 수 있다.

 

명진스님은 이 게송에 대하여 불의에 살 것인가, 정의를 위해 죽을 것인가, 불의에 사는 것보다 정의를 위해 죽는 것이 낫다.”라고 하여 경구로 삼고 있다. 이는 담마()를 정의로 보고, 아담마(非法)를 불의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게송에서 담메나(dhammena)‘Justly, righteously’의 뜻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법다운 가르침, 여법한 가르침, 정의로운 가르침인 것임을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 법이 아닌 것을 따라 사느니 차라리 법답게 살다가 죽기를 바란다는 정의의 게송인 것이다.

 

훌라송에서 무릎꿇고 살기 보다 서서 죽기 원한다.”라는 말은 피를 끓게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불교경전에도 이와 유사한 말이 있었다는 것이다. 부처님 제자는 "여법한 죽음이, 여법하지 못한 삶보다 낫다.(Thag.670)라고 한 것이다.

 

인생은 각본 없는 연극

 

소설 광주 아리랑을 514일부터 518일까지 읽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중에는 산 자도 있고 죽은 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관련 당사자들은 앞으로 닥칠 가혹한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소설에서 인생은 연극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작가의 죽마고우 박효선이 한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인생이 연극일까? 이에 대하여 박효선은 모든 인생이 결말을 알기 심든 각본 없는 연극이제.”(1139)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인생은 연극이라고 했다. 각본 없는 연극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말했을까? 작가는 박효선의 말을 빌어서 내 인생 끝을 내가 어치께 안당가?”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자신만은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백세시대에 백세까지 살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숫따니빠따 화살의 경에서도 어떻게 생각할지라도, 그것은 생각처럼 되지 않습니다.”(Stn.588)라고 했다.

 

세상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죽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 밤이 지나면 내일이 올지 내생이 시작될지 알 수 없다. 왜 그런가? 사람은 지은 업()대로 살기 때문이다.

 

인생은 알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나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인생을 각본 없는 연극이라고 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에게 518일 이후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2021-03-0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