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기

양곤 순룬 수행센터에서 한 수행자를 만났었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1. 2. 24. 09:49

양곤 순룬 수행센터에서 한 수행자를 만났었는데

 

 

한 수행자를 만났다. 미얀마 순룬 수행센터에서 만난 스님이다. 담마마마까에서 2주 동안 수행을 마치고 12일 양곤순례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순룬국제선원이었다. 미얀마인 가이드 툰툰과 함께 1시간가량 머물렀는데 우연히 스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이 인연이 되었다.

 

 

스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순룬선원 방문기를 블로그에 올렸는데 댓글을 단 것이다. 스님은 몇 가지 오류를 지적했다. 그리고서 순룬사야도에 대한 자료를 보내 주겠다고 했다. 메일 주소를 알려 주었더니 순룬사야도전기를 보내 주었다.

 

순룬사야도전기를 열어 보았다. 스님이 번역한 책으로 144페이지에 달한다. 꼼꼼한 주석이 특징이다. 메일에 따르면 칠정정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다고 했다. 또 교학이 아닌 체험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했다.

 

떼인구 사야도가 있다. 블로그에서는 땡구사야도라고 표현했다. 들리는 대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때 20191월 순룬센터에서 스님에게 들었을 때는 떼인구사야도에 대한 전기를 번역중에 있다고 했다. 이번 메일을 보니 감수를 못해서 보내지 못했다고 했다. 아마 번역은 끝났는데 마무리작업이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순룬사야도전기를 읽어 보았다. 서두만 읽어 본 것이다. 나머지는 시간나는 대로 음미하며 읽어 보려 한다.

 

순룬사야도는 미얀마의 스승들과 달리 독특하다. 교학없이 아라한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경전에 무지한 사람도 간절한 마음으로 정진하면 도와 과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순룬사야도는 강한 호흡으로 도와 과를 성취했다. 단지 호흡만 관찰하면 사마타가 된다. 그러나 코끝을 스치는 감각을 관찰하면 위빠사나가 된다. 그래서 순룬센터의 수행자들은 강한호흡과 함께 코끝을 스치는 감각을 강도 높게 수련한다.

 

 

순룬사야도의 호흡관찰수행은 마하시전통과는 다른 것이다. 마하시에서는 배의 부름과 꺼짐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마하시 방식이 널리 유행하고 있지만 미얀마에서는 순룬방식도 널리 알려져 있다. 가장 명쾌하고 단도직입적인 방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순룬사야도의 전기를 읽다가 꼬여 있는 실타래이야기를 보았다. 사야도가 농부로서 농사를 짓고 있을 때 어떤 예언자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 그는 “Amai(할머니) Bok(이름)의 실타래가 꼬여 있다. 누가 이 혼란을 해소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농부는꼬여 있는 실타래는 베틀에 놓일 때 풀리지, 그렇지 않은가?”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음과 같이 알려 주었다.

 

 

그런 것처럼, 우 죠딘(U Kyaw Din), 꼬여 있는 실타래보다도 훨씬 더 꼬여 있는 무명(無明, avijjā, ignorance)이라는 실타래는 자네에게 마음챙김(sati, mindfulness, 正念)이 있을 때에만 풀린 다네. (순룬 사야도 전기, 12)

 

 

예언자는 농부 우 죠딘에게 가르침을 알려 주었다. 엉킨 실타래가 베틀에 놓일 때 풀리듯이, 무명이라는 실타래는 위빠사나 수행으로 풀림을 말한다.

 

예언자는 농부가 불법(sāsanā)을 크게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마치 폐허가 된 파고다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부처님의 수행법이 다시 출현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예언자가 말한 실타래 이야기는 청정도론 제1장 제1절에서도 볼 수 있다. 이는 상윳따니까야의 데와따상윳따에 실려 있는 매듭의 경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계행을 확립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이

선정과 지혜를 닦네.

열심히 노력하고 슬기로운 수행승이라면,

이 매듭을 풀 수 있으리.”(S1.23)

 

 

얽히고 설킨 매듭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얽힌 실타래를 내버려 두면 저절로 풀리는 것일까? 꼬인 실타래는 직조공이라면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명과 갈애로 얽혀 있는 존재의 실타래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매듭이나 얽힌 실타래나 같은 말이다. 꼬이고 꼬여 있는 실타래라면 직조공도 풀지 못할 것이다. 무명과 갈애로 사는 존재의 실타래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세 가지를 제시했다. 그것은 계, , 혜 삼학이다. 그래서 먼저 계행을 확립하고 선정에 들고 지혜를 닦으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매듭을 풀 것인가? 청정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예를 들어 남자가 땅 위에 서서 잘 드는 칼을 들어서 커다란 대나무 덤불을 잘라내는 것처럼, 이와 같이 계행의 땅에 입각해서 선정의 돌로 연마된 통찰의 지혜라는 칼을 정진력으로 책려된 예지적 지혜의 손으로 움켜잡고 일체의 자신의 상속에서 생겨난 갈애의 결박을 풀고 절단하고 파괴해야 한다.(Vism.1.7)

 

 

무명과 갈애의 매듭은 위빠사나의 지혜로 풀어야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지혜의 칼이다. 얽히고 설킨 난마를 하나하나 헤쳐서 풀기 보다는 지혜의 칼로 베어 버리는 것이다.

 

청정도론을 열어 보면 제1장 제1절에 위와 같은 매듭의 경에 실려 있는 게송이 나온다. 이 게송은 청정도론의 근간이 된다. 이는 다름 아닌 계, , 혜 삼학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은 계, , 혜 삼학에 대하여 일곱 가지 청정(七淸淨)으로 설명해 놓았다.

 

 

법보시를 해 주신 스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두 해전 방문한 수행센터에서 말 몇마디 나눈 것이 인연이 되었다. 또 순례기를 작성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인터넷 바다를 떠도는 글을 보고서 이렇게 알려 온 것이다. 법보시한 스님에게 공양하고자 한다.

 

 

2021-02-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