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기

작가는 위대하다,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를 읽고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2. 28. 07:41

작가는 위대하다,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를 읽고


코로나 대유행의 시기이다. 전쟁같은 상황이다. 오늘 확진자는 얼마나 나왔을까? 검색해 보니 12 27일 확진자는 970명이다. 천명 안팍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난리가 났다. 미국과 유럽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현재 인류는 전에 없었던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루고 있는 중이다. 나중에 평화가 왔을 때 이런 때가 있었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이런 때가 있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를 읽었다. 여러 날에 걸쳐서 밑줄치며 읽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독후기를 쓰기 위해서이다. 책은 지저분해지만 그래도 기록으로 남는다.

 


읽으면 써야 한다. 들으면 말하는 것과 같다. 읽기만 하고 쓰기가 없다면 95%는 잊어버린다. 읽자마자 잊어버리는 독서라면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읽었으면 무언가 하나라도 남아야 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 무엇을 건질 것인가?

책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스물한살 처녀가 겪은 전쟁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려 44년 만에 증언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작가의 나이 65세때인 1995년에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의 후속편이다. 서울에서 1.4후퇴 때부터 작가가 23세 때인 1953년결혼 할 때까지 3년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1.4후퇴 때 서울에서 인민공화국 치하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일이다.

지금 이 평화와 행복은 영원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언제 깨질지 알 수 없다. 봄날과 같은 호시절은 언제 그런 때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금방 지나가버린다. 늘 타는 듯한 더위나 살을 에는 추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젊음과 건강의 시기는 꿈결처럼 지나가고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1.4후퇴때 텅 빈 서울을 묘사했다. 가장 궁금한 것은 누구 치하에 있느냐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하늘인지 인민공화국의 하늘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는 생존과 관련이 있다. 이미 한차례 세상이 업치락뒤치락 했기 때문에 학습효과는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 바뀔 때 책잡힐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몸은 비록 인민공화국의 하늘 아래 있지만 마음은 일편단심 대한민국에게 밉보이는 것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하고 있었다.”라고 했다. 또 이런 상황에 대하여 우리가 대학에 들어간 지 1년도 채 안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1년도 안 되는 동안에 그런 일들이 다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라고 했다.

모두다 떠나버린 텅 빈 도시에서는 아침이 되어도 밥 짖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철저하게 버려진 도시에서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까? 빈집을 터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도 식량과의 전쟁을 하고 있었다.”라고 했다. 이를 도둑질이 아니라 보급투쟁이라고 했다.

서울대학생이 빈집을 터는 시대는 불행한 것이다. 세상이 인민공화국으로 바뀌었음에도 구호품은 없었다. 인민군이 물러갈 때까지 빈집털이해서 먹고 산 것이다. 세상이 업치락뒤치락 해도 점령한 정부는 국민이 먹고 살게 해 주어야할 의무가 있다. 이념은 단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작가는 매일 빈집털이를 하는 것에 대하여 오로지 배가 고픈 것만이 진실이라고 했다. 그 밖의 것은 모조리 엄살이고 가짜라고 했다.

작가는 6.25이후 한번은 인민공화국, 또 한번은 대한민국, 그리고 또 인민공화국 시대를 살았다. 어떤 정부가 좋을까? 이데올로기로 호불호가 결정되는 것일까? 작가는 입에 풀칠할 최소한의 생존권을 요구할 바에야 좋은 정부 나쁜 정부 가릴 게 뭐 있을까.”라고 했다.

어느 정부이든지 민중을 굶지 않게 해 주어야한다. 민중을 굶게 만들면 민주나 자유, 평등과 같은 이념 따위는 필요 없다. 등따숩고 배부르게 해 주는 정부가 좋은 정부이다. 빈집털이를 하게 만드는 정부는 좋은 정부일 수 없다. 1.4후퇴때 인민공화국 치하가 그랬던 것 같다.

작가는 인민공화국 하늘아래에서 세상이 뒤집히길 바랬다. 그래서 우리가 자는 사이에 소리없이 전선이 우리 위를 지나가서 밤사이에 바뀐 세상을 맞을 수 있는 거였다.”라고 기대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민중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인민공화국은 작가가 선택한 세상이 아니었다. 어느 날 그들이 밀고 들어왔을 때 인민공화국 세상이 된 것이다.

소설을 보면 양진영을 비교한 대목도 있다. 이는 어머니가 딸에게 나도 그 사람이 인민군이 아니고, 국군이나 미군이었으면 너 안 내놨다.”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국군과 미군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대한민국으로 세상이 바뀌기를 열망하지만 또 한편으로 군인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미군에 대한 불신이 크다. 이는 문밖에 깜둥이가 색시 서리를 하러 왔다는 것보다 더 끔찍했다.”라고 표현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중공군은 어땠을까?

서울에 진입한 중공군이 민가에서 자고 갔다. 어느 할머니는 무서운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무섭대. 늙은이 대접도 할 줄 알구.”라고 했다. 한방에서 잔 중공군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한방이면 어때. 손자 또래던걸. 하긴 양놈 같았으면 손자 또래도 못 믿었을 거지만두.’라고 했다.

소설을 보면 그때 당시 시대상황을 잘 증언하고 있다. 좌우이념 갈등으로 서로 죽이고 죽는 상황에서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몰랐을 것이다. 누굴 만나면 우선 저 사람 속이 힐까 붉을까?”부터 먼저 분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업치락뒤치락할 때는 사람이 무섭다. 사람을 만날 때는 오른쪽처럼 굴어야 하나 왼쪽처럼 굴어야 하나부터 정해놓지 않으면 불안했다.”라고 했다. 이런 불신이 팽배해서일까 차라리 일제시대 때가 좋았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압박과 무시당했지만 그래도 뭉치고 살았음을 말한다.

작가는 소설로서 양진영을 증언했다.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을 번갈아 살면서 두 세상의 그림자를 본 것이다. 어느 정부도 민중을 굶게 하면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배고픔은 이념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내가 만약 그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꼼짝없이 작가처럼 빈집을 털었을 것이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도둑질이라고 한다. 전쟁중에 빈집을 턴 것은 도둑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부에서 구호품을 주지 않았을 때 남의 집 담장을 넘어가는 행위를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중에 아녀자를 겁탈하는 것은 죄악이 된다. 이는 생존과는 관계가 없는 욕망의 충족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 본 것은 작가에 대한 믿음과 이전 소설의 후속편이라는 점에 있다. 특히 1.4후퇴 때 서울의 분위기를 잘 묘사했을 기대감으로 샀다. 기대는 충족되었다.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자전적 소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삶의 의지에 대한 것이다. 세상이 업치락뒤치락 했어도 살아남은 것은 강력한 삶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을 언젠가 낱낱이 밝히리라고 마음먹었을 때 폐허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평화의 시대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비록 휴전상태이긴 하지만 전쟁없는 70년 세월을 살고 있다. 과연 이 평화는 영원히 지속될까? 코로나를 예측하지 못했듯이 또 어떤 세상이 닥칠지 알 수 없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평화의 시대이건 전쟁의 시대이건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박완서 작가는 2011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기록은 남았다. 책을 접하니 작가가 면전에 있는 것 같다. 활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작품을 남기고 죽었다. 그러나 죽었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 작품을 읽고 기억하고 있다면 살아 있는 것이다. 작가는 위대하다.

 

 

2020-12-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