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군인들을 미치게 했는가? 광주 아리랑 5.18-5.21
광주 아리랑을 읽고 있다. 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 간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읽는 내내 착잡했다. 다큐나 영화와는 또 다른 것이다. 기록물은 단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극히 일부분만을 보여준다. 소설은 그래도 많은 것을 보여준다.
소설 광주 아리랑에는 수많은 실명이 나온다. 학생이나 스님, 신부, 목사뿐만 아니라 구두닦이, 용접공, 영업사원, 다방종업원 등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려면 수백권, 수천권이 될지 모른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다. 때로 학생이 주인공이 되고, 때로 스님이, 때로 신부가 주인공이 된다. 야학의 강학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서점 주인이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구두닦이 용접공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고교생이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모두가 주인공들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인간사냥 하듯
광주사태는 왜 일어났을까? 소설에서는 여러가지 정황에 대하여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서 말을 하고 있다. 전두환 일당의 권력욕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다 힘을 가진 군인들이 권력욕에 눈이 멀어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사태는 민중항쟁이 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시작했으나 시민들이 주도하게 되었다. 이는 과잉진압이 원인이다. 소설에서는 이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에 대하여 “공수부대원들이 마치 인간사냥 하듯 도망치는 시민들을 쫓아가 진압봉으로 쓰러뜨린 뒤 군홧발로 짓이겼다.”(광주 아리랑 1권, 204쪽)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소설에서 공수들의 만행을 보면 맹견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미친 개라고 볼 수 있다. 인간사냥을 하는 미친 개에 대하여 “주인을 모르고 미쳐 날뛰는 군대는 없어져야 한다. 누가 이 군인들을 미치게 했는가? 시민을 살상하라고 명령한 원흉은 누구인가?”(광주 아리랑 1권, 222쪽)라며 김성용 신부가 절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오월의 노래
사람들은 광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80년 5월 당시 광주에 있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준 것은 폭도로서 이미지이다. 이는 철저하게 승자의 관점에서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 알려지게 된 것은 사건이 나고 3-4년 지나고 나서였다. 복학하고 나니 광주에서 있었던 참상이 대자보형식으로 알려졌다. 1984년 무렵이다.
이전까지 광주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은 언론에서 제공하는 기사를 통한 것이었다. 1984년 학원자율화추진운동이 거세게 일어날 때 광주에서 있었던 일들이 끔찍한 사진과 함께 알려지게 되었다.
학생들은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잊지 않았다.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샘솟네.”라며 끝을 맺는 ‘오월의 노래’를 말한다.
오월의 노래는 자극적이다. 특히 자극적 부분은 “두부처럼 잘려 나간 어여뿐 너의 젖가슴”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소설에서는 “대검에 젖가슴을 찔린 여자는 열아홉 살의 최미자였다.”(광주 아리랑 1권, 222쪽)라고 했다. 최미자는 친구 집에 오는 도중 시위를 한 것도 아닌데 공수들에게 쫓기다가 대검에 찔린 것이다. 그러나 빨리 병원에 옮겨져서 살았다고 한다.
1984년 당시 대학가에서 오월의 노래는 데모할 때 마다 불렀다. 모두 사절로 되어 있는데 가사를 다 외울 정도이다. 가사는 매우 자극적이다. 그리고 적나라하다.
오월의 노래 가사를 보면 소설 광주 아리랑을 잘 표현해 놓은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제1절 첫 구절에 있는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피”일 것이다. 이 구절과 관련된 내용이 소설에 있다. 5월 21일 오후 1시 금남로 도청 앞 광장에 대한 상황이 그것이다.
대여섯 명의 청년들이 대형 태극기와 함께 구호를 외치며 도로 한복판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은 공수들이 조준 사격하자 맥없이 쓰러졌다. 대형태극기는 피로 물들었다. 두 번째로 대여섯 명의 청년들이 또다시 도로 한복판으로 뛰쳐나갔다. 이번에도 도로에 피를 뿌리며 맥없이 거꾸러졌다. 세 번째로 대여섯 명의 청년들이 도로 한복판으로 뛰쳐나갔다. 금남로가 피로 물들인 것이다. 아마 이런 장면을 보고서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피”라는 가사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의(正義)란 무엇일까?
소설 광주 아리랑에서 5.18에서 5.21까지 읽으면서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을 보니 “사회가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라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옳은 것, 바른 것이 정의인 것이다.
광주에서 미친개와 같은 공수들의 만행으로 머리가 터지고 죽어 갔다. 이를 보고 있어야만 할까? 누군가는 말릴 것이다. 그러나 말리는 사람도 때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다름 아닌 불의(不義)이다. 올바르지도 않고 바른 도리도 아니다.
정의는 “사회가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라고 했다. 올바르지도 않고 바른 도리도 아니라면 불의(不義)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불의에 대한 저항도 정의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소설에서 “시내는 시방 공수 새끼들 땜시 난리가 나부렀시야. 사람들을 무참히 때려죽이고 있는디 느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뭣 하냐!”(광주 아리랑 1권, 240쪽)라는 말로 알 수 있다.
광주사람들은 가만 있지 않았다. 불의에 맞서 항거했다. 심지어 스님도 뛰어들었다. 소설에서는 진각스님이 등장한다.
진각스님은 목욕탕에 가기 위해서 증심사에서 내려왔다. 광주는 이미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스님은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스님은 시위에 참여했다.
스님은 보도블럭을 뜯어내 조각을 만들었다. 이 장면과 관련하여 “진각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의아했다. 승복을 입은 승려가 양손에 보도블럭 조각을 들고 있다니!”라고 묘사되어 있다.
스님이라고 하여 데모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세상과 인연을 끊은 스님이라고 하여 불의에 대하여 모른척하고 있다면 정의롭지 않은 것이다. 진각스님은 “이럴 때 깨달았다는 고승들은 어떨까?”라며 궁금해했다고 한다.
정의는 국어사전에만 있지 않다. 불의에 항거하는 것도 정의이다. 불의에 분노하는 것도 정의이다. 정의로운 분노를 말한다. 이는 공수들에게 당한 사람이 “그런데 한 번 치민 분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적개심 같은 것이 막연히 솟구쳤다.”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정의로운 항쟁인 이유
5월 21일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틀전까지만 해도 공포에 떨었으나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 시민들은 무장하기 시작했다. 미친개에게 물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자위적 차원에서 무장한 것이다. 시민군이 탄생한 것이다.
시민군은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구성원은 어땠을까? 이는 “뒷골목 청년부터 고등학생, 대학생, 방위병, 영업사원, 넝마주이, 예비군 등등 다양했다.”(광주 아리랑 1권, 240쪽)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특히 넝마주이라는 말에 주목한다. 5.18다큐 ‘김군’의 주인공은 넝마주이였기 때문이다.
광주민중항쟁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시민군이 폭도로 비추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나면 시민군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시민군들 면면을 보면 대학생이나 지식인 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 청년이나 학생들이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가장 낮은 지위에 있던 청년들도 많았다. 불의를 보고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의로운 분노가 총을 들게 한 것이다.
광주항쟁은 정의로운 항쟁이었다. 이것은 “광주시민들이 일심동체가 된 것 같았다.”(광주 아리랑 1권, 316쪽)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어떻게 일심동체가 되었을까? 이는 “점심때가 되자 김밥과 빵, 음료수를 실은 리어카들이 보였다. 리어카에는 각 동 이름이 붙어 있었다.”(광주 아리랑 1권, 318쪽)라고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광주시민들은 불의에 항거했다. 시민들 대부분 참여했다. 이는 폭도에 의한 폭동이 아니다. 그 명백한 증거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위대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동시장 입구에서는 상인들이 여전히 시위대에게 김밥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광주 아리랑 1권, 320쪽)라거나, “시민들이 무등경기장 부근의 롯데제과에서 빵과 우유, 음료수를 트럭으로 실어 와 광주은행 본점 앞에 부려 놓고 나눠주고 있었던 것이다.”(광주 아리랑 1권, 321쪽)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죽이는 자는 죽임을 당하고
사태가 일어난지 41년이 지났다. 사태는 항쟁이 되었고 민주화운동으로 바뀌어져 불리고 있다. 그때 당시 권력자들은 폭도라고 했으나 지금은 열사라고 부른다. 어떻게 이렇게 극적인 전환이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현장에 있으면 알 수 있는 것이다.
현장에 정의가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분노할 때 그것이 정의인 것이다. 권력자들은 정의롭지 않았다. 맹견을 풀어 놓은 듯 닥치는대로 폭력을 행사했을 때 이런 행위는 폭도나 다름 없다. 폭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행위를 하면 과보를 받는다. 사람을 죽일 정도로 폭력을 행사했다면 그 과보는 매우 크다. 41년이 지난 현재 폭력을 행사 했었던 사람들은 역사의 죄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당시 불의에 항거하다 죽은 사람들은 열사가 되었다. 정의로운 분노, 거룩한 분노는 결국 역사의 승리자가 되었다.
“죽이는 자는 죽임을 당하고
이기는 자는 패하며
욕하는 자는 욕을 먹고
화내는 자는 분노를 받네.
행위는 돌고 또 돌아
빼앗긴 사람이 다시 빼앗네.”(S3.15)
2021-03-1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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