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소리 없는 아우성
갈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비록 작은 일인 사무실이긴 하지만 집을 떠나면 앉을 자리가 있다. 집에만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집이 아무리 대궐 같아도 하루종일 집에만 있다면 감옥과 다름없을 것이다.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밖으로 나가야 살 길이 있다. 집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집에만 있으면 나태해지기 쉽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있기 쉽상이다. 결국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점심 때 책을 찾아 왔다. 2007년에 쓴 ‘사찰순례기’에 대한 것이다. 늘 맡기는 곳이 있다. 3년째 맡기고 있는 문구점 한일상사이다. 이제 단골 고객이 되었다. 17번째 책을 만들었다. 두 권에 59,000원을 지불했다. 사무실과 집의 보관용이다.
보관용 책을 만드는 것은 낭비일 수 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고귀한 일이 된다. 글쓰기를 수련으로 여기는 입장에서 그 동안의 성과를 책으로 낸다는 것은 마치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것과 같다. 서로서로 좋은 것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문구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 모른다.
안양대로를 걷다 보니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갖가지 상호가 붙어 있어서 마치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활력이 없다. 날씨만큼이나 춥고 음산해 보인다. 장사가 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간판을 보니 ‘깃발’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간판은 마치 깃발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깃발이 바람에 펄럭일 때 시인은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이라고 했다. 코로나19시기에 텅 빈 거리에서 삐죽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는 간판을 보면 서로 ‘나를 보아달라’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어서 들어오라’고 호객행위 하는 것 같다. 간판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코로나19 위기가 날로 높아 가고 있다. 정부에서는 5인 이상 집합금지명령을 내렸다. 마치 전시상황 같다. 매일 코로나 확진자를 발표하고 사망자를 발표하는 것을 보면 전시나 다름없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는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수백만, 수천만만명이 감염되고 수십만, 수백만명이 죽었다면 세계대전이나 다름없다. 바이러스와의 대전이다. 과연 인류는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언제 어떻게 감염될지 모른다. 마치 전시에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고, 어디서 지뢰가 터질지 모르는 것과 같다. 더구나 백신확보도 되어 있지 않아서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천명에서 이천명, 삼천명, 만명 될지 모른다. 그저 무사하게 지나가기 만을 바란다.
언제 세상이 좋아질까? 어떤 이는 코로나가 빨리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녀는 더 늙기 전에 전세계 가 보고 싶은 곳을 가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지구본을 보면서 여기도 가 보고 싶고 저기도 가 보고 싶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면 평화가 온다. 치열한 전투중이라도 종전되었다고 발표나면 총성이 멎게 되어 있다. 꽃피는 내년 봄에는 코로나와의 전쟁도 끝날까? 한눈 파는 사이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은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봄 기운을 느끼듯이 평화는 도둑처럼 오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막연히 봄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동지도 지났으니 봄이 멀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혹독한 추위도 남았지만 해가 갈수록 길어진다는데 희망이 있다. 이른바 양의 기운이 우세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도 봄은 온다. 계절은 바뀌고 꽃은 핀다.
2020-12-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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