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누구도 가져 갈 수 없는 배움의 재물, 빠알리 팔정도경을 외우고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2. 25. 16:43

 

누구도 가져 갈 수 없는 배움의 재물, 빠알리 팔정도경을 외우고

 

 

오늘 스님과 약속을 지켰다. 오늘은 빠알리 팔정도경(S45.8)’을 다 외운 날이다. 빤냐완따 스님과의 약속이다. 올해 7월 성남에 있는 스님의 처소를 방문했을 때 팔정도를 생활화 할 것을 권유 받았다. 그리고 빠알리팔정도경을 외우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에 외우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 점심약속도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물며 스님과의 약속을 어길 수 없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루었다. 언젠가 때 되면 외우려 한 것이다. 그러다가 111일 담마와나선원 까티나법요식 때 스님과 마주쳤다. 스님과의 약속이 생각나서 먼저 빠일리 팔정도경 꼭 외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외우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일단 시동을 걸어야 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공표 했으니 이제 오로지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암송용 자료를 만들었다. 빠알리원문을 확보하고 우리말로 음역했다. 이를 블로그에 올려 놓았다. 언제 어디서든지 스마트폰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렇게 모든 준비를 완료 하고 나서 외우기에 돌입한 날자가 1127일이다.

 

오늘 1225일 크리스마스날에 빠알리 팔정도경을 모두 다 외웠다. 외우기 시작한지 꼭 4주 만이다. 처음에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날자가 갈수록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외우기가 익숙해짐에 따라 막판 일주일 동안 몰아치기로 외웠다. 마치 마라토너가 막판에 스퍼트하듯이 밤낮으로 외운 것이다.

 

최대고비는 '삼마사마디'에서였다. 네 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도 많을 뿐만 아니라 단어도 생소했다. 외웠지만 뒤돌아 서면 잊어버리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러나 자주 반복하다 보니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즉각즉각 떠 올랐다. 이전에 외운 것을 획인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삼마사마디를 다 외우면 모두 다 외운 것이 된다.

 

삼마사마디를 다 외운 것을 확인 했을 때 다 외웠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고 외워야 한다. 크리스마스날 오전 사무실에서 행선하면서 외웠다. 불과 열 보 안되는 행선거리이지만 왕복하면서 암송하다 보니 두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마침내 정오가 될 무렵 에왕 메 수땅부터 시작하여 삼마사마디까지 모두 외운 것을 확인 했다. 그때 , 내가 다 외웠구나.”라며 스스로 인정했다.

 

처음부터 풀코스로 막힘없이 다 외운 것을 확인 했을 때 충만했다. 마치 큰 일을 해 낸 것처럼 뿌듯했다. 처음 외우기를 시작했을 때어떻게 이렇게 많은 글자를 외울까?”라며 암담했었다. 그것도 생소한 빠알리어로 외우는 것이다.

 

외울 때는 반복하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런데 자주 반복하다 보니 외워진다는 것이다. 반복하다 보면 숙달되는 것이다. 그래서 4주가 지낸 현재 보지 않고서도 막힘없이 줄줄 외우게 되었다. 스님과 약속을 지킨 것이다.

 

팔정도가 없으면 불교도

 

팔만사천법문을 한단어로 요약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대승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마음()’이라 할 것이다. 테라와다에서는 팔정도라 할 것이다. 왜 팔정도일까? 그것은 계, , 혜 삼학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은 크게 계학, 정학, 혜학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팔정도에는 이와 같은 삼학이 모두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계학에 대한 것은 삼마와짜(正語), 삼마깜만또(正業), 삼마아지워(正命)이다. 정학에 대한 것은 삼마와야모(正精進), 삼마사띠(正念), 삼마사마디(正定)에 대한 것이다. 혜학에 대한 것은 삼마딧티(正見)와 삼마상깝뽀(正思惟)에 대한 것이다.

 

팔정도의 여덟 가지 항목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만약 팔정도의 가르침대로만 산다면 이세상은 다툼이 없을 것이다. 오계를 지키는 삶에 대한 것은 불음주계만 제외하고 모두 다 들어가 있다. 계학대로만 산다면 법 없이도 살 것이다.

 

팔정도를 실천하려면 먼저 팔정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물론 경전을 열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인이라면 팔정도 정도는 암송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팔정도는 불교의 시작점이자 마지막 종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팔정도경을 외면서 팔정도의 구조를 머리 속에 집어 넣었다. 더 이상 책을 펴보거나 검색하지 않아도 머리 속에 있는 것을 꺼내 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는 팔정도를 실천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본다.

 

빤냐완따 스님은 팔정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팔정도를 실천하는 삶이라고 했다. 이는 부처님도 강조한 것이다. 정각을 이루어 처음 설법한 것도 팔정도이고, 열반에 들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설법한 것도 팔정도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팔정도가 없으면 사향사과가 없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팔정도가 없으면 불교도 없음을 말한다.

 

 

팔정도경을 분석해 보니

 

팔정도는 이정표 같은 것이다. 불교인으로서 가야할 방향을 알려 주는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정견이다. 팔정도에서 정견은 사성제를 아는 것이다. 이는 둑께 냐낭(苦聖諦), 둑카 사무다예 냐낭(集聖諦), 둑카 니로데 냐낭(滅聖諦), 둑카 니로다가미니야 빠띠빠다야냐낭(道聖諦)이라 하여 사성제가 나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을 말하는가? 불교인이라면 사성제를 알고 팔정도를 닦아야 함을 말한다. 사성제 말고 다른 것을 정견으로 한다면 사견에 빠졌다라고 말할 수 있다.

 

팔정도경을 외우면서 새롭게 인식한 것이 있다. 삼마와야모에서 네 번째 게송 선법증장에 대한 것이다. 이는 웁빠나낭 꾸살라낭 담마낭 티띠야 아삼모사야 비이요바와야 웨뿔라야 바와나야 빠리뿌리야라는 정형구이다. 이 말은 이미 생겨난 착하고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여 망실되지 않고 증가시키고 성숙에 의해 충만하도록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정형구는 칠각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선법증장에 대한 게송은 칠각지의 모든 과정이 다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법을 일으켰다는 것은 칠각지에서 염각지택법각지가 작용한 것이다. 다음으로 선법을 유지하고 증장했다면 이는 정진각지에 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희열이 일어나면 희각지에 대한 것이고,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해졌다면 경안각지에 해당되고, 삼매에 들면 정각지에 해당된다. 마침내 평온에 이르렀다면 사각지에 해당된다. 이처럼 정정진에서 선법증장에 대한 게송은 칠각지와 관련이 있다.

 

팔정도경의 클라이막스는 삼마사마디로 보여진다. 그 중에서도 네 번째 게송인 네 번째 선정에 대한 것이다. 이는 한단어로 요약되는데 우뻬카사띠빠리숫디(upekkhāsatipārisuddhi)’라는 말이다. 한자어로 사념청정(捨念淸淨)이라고 번역된다. 우리말로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지극히 청정함의 뜻이다.

 

우뻬카사띠빠리숫디는 평정과 사띠와 청정, 이렇게 세 가지 복합어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네 번째 선정의 특징이다. 희열, 행복도 떨어져 나가고 최후에는 평온과 함께 하는 청정인데 여기에 사띠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팔정도의 정학이 모두 다 집약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바른 정진과 바른 사띠와 바른 삼매가 함께 어우러져야 가능한 것이다.

 

사념청정의 상태는 조건이 있다. 이는아둣캉 아숫캉(adukkha asukha)”이라는 말로 알 수 있다.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상태를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신체적 괴로움도 정신적 괴로움도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수카, 둑카, 소마나사, 도마나사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신체적 괴로움도 없고, 신체적 즐거움도 없고, 정신적 괴로움도 없고, 정신적 즐거움도 없다면 이런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는 상태라면 평온한 상태일 수밖에 없다. 느낌이 갈애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업을 짖지 않아 청정한 상태가 된다. 이는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기 전에 사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우뻬카사띠빠리숫디는 문자 그대로 평정하고 사띠가 있는 지극히 청정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팔정도는 실천도

 

선원에 가면 늘 사띠(sati)하라고 말한다. 일상에서도 사띠하라고 한다. 사띠는 선법(善法)이기 때문에 사띠하면 계는 자동적으로 지켜 질 것이다. 또한 늘 사띠 하고 있으면 정진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늘 사띠하고 있으면 집중이 되어서 지혜가 개발될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사띠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띠는 팔정도에서 여덟 가지 항목 중에서 한부분이다. 이렇게 본다면 팔정도의 삶을 살면 사띠는 자연스럽게 실천될 것이다.

 

팔정도의 삶을 살으라고 한다.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 오는 것은 계학에 대한 것이다. 팔정도의 정어와 정업은 현실에서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오계와 관련된 것으로 무사와다(妄語), 빠나띠빠따(殺生), 아딘나다나(偸盜), 아브라흐마짜리야(淫行)를 들 수 있다. 특히 말과 관련된 것으로 삐수나(兩舌), 파루사(惡口), 삼팝빨라빠(綺語)를 언급했다. 이렇게 팔정도는 현실에서 삶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팔정도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먼저 팔정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알았으면 다음 단계는 외우는 것이다. 외워서 내것으로 만들었을 때 좀더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을 것 같다. 왜 그런가? 팔정도의 구조가 머리 속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견은 4가지가 있고, 정사유는 2가지, 정어는 4가지, 정업은 3가지, 정명은 2가지, 정정진은 4가지, 정념은 4가지, 정정은 4가지가 있어서 모두 25가지가 있다. 이와 같은 항목은 모두 실천항목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팔정도에 대하여 목적도라고 하기 보다는 실천도라고 말한다.

 

누구도 가져 갈 수 없는 배움의 재물

 

이제 팔정도경을 다 외웠으니 지금 부터는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 외워야 한다. 그런데 한번 외워 놓으니 무척 든든하다는 것이다. 마치 무형의 재산이 생긴 것 같다. 절대 누가 가져 갈수도 없고 훔쳐 갈수도 없는 배움의 재물(sutadhana)’이다. 평생 자신과 함께 할 수 있고 죽어서도 가져 갈 수 있는 재물이다.

 

팔정도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운 것을 확인 했을 때 충만해진다. 마치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장소에서 외우고, 또 자리를 옮겨서 저 장소에서 외워 본다. 한번 암송하면 12분정도걸린다. 그런데 막힘 없이 암송하면 충만되기도 하지만 통쾌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경전을 외우는 맛일 것이다. 그러나 외우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팔정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 빤냐완따 스님이 강조한 것이다. 오늘 빠알리 팔정도경을 외움으로써 스님과의 약속을 지켰다.

 

 

2020-12-2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