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스쿼트는 일종의 몸관찰 수행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2. 28. 11:13

스쿼트는 일종의 몸관찰 수행

 

 

그 동안 몸에 대해 신경 안 썼다. 사실상 방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동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집과 사무실을 왔다갔다 할 뿐이다. 숨만 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호흡명상을 하는 것도 아니다.

 

운동과 담을 쌓고 살다 보니 몸이 많이 약해졌다. 그렇다고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힘이 난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모른다. 글쓰기에 몰입하면 서너시간은 금방지나 간다.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나면 일시적으로 강한 쾌감을 느낀다. 이를 유쾌, 상쾌, 통쾌라 해야 할 것이다.

 

늘 앉아 있다보니 자세도 구부정해졌다. 마치 자라목처럼 된 것 같다. 이런 지적을 많이 받는다. 이것도 어쩌면 직업병일 것이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순 없다.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렇다고 헬스장에 가지는 않는다. 별도로 시간을 내서 운동할 여력이 없다. 기구를 이용한 운동은 맞지 않다. 방법을 찾아 보았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집과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스쿼트(Squat)’이다.

 

스쿼트를 하고자

 

스쿼트는 오래 전에 알았다. 친척 중에 헬스트레이너가 있어서 권유 받았기 때문이다. 한때 열심히 했었다. 그러다가 중단하고 또 다시 시도하는 등 불연속적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 그것은 자극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초로에 들어섰다. 마음은 늘 청춘이지만 몸은 점점 노쇠해 가고 있다. 아직 큰 변화는 느끼지 못하지만 앞으로 10년후가 되면 어떤 모습이 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보다 건강이 더 악화되어서 혹시 걸어 다니지도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스쿼트와 관련된 유튜브를 보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은 줄어든다고 한다. 나이든 노인의 다리가 훌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은퇴나 정년 퇴임 등으로 인하여 정년백수 또는 노년백수가 되었을 때 집에 있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이 집이다. 그런데 집에 있으면 자세가 나온다는 것이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은 것이 일반사람들의 심리이다. 집에만 있으면 속된 말로 자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집에서 자빠져 있을 순 없다. 움직여야 한다. 운동기구를 사 놓을 수 있다. 그러나 기구를 이용한 운동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운동이다. 기구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이다. 팔굽혀펴기나 스쿼트 같은 것이다. 트레이너도 이런 방법을 권유한다.

 

스쿼트를 할 때는

 

오늘 새벽 스쿼트를 했다. 먼저 가볍게 경행을 했다. 발을 들어서 나아가서 내려 놓는 3단계 경행을 했다. 멈추었을 때는 멈추는 것을 아는 것이다. 어느 정도 몸이 풀렸을 때 스쿼트를 시작했다. 스무 번 하는 것이 목표이다.

 

하긴 하되 빨리 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하는 것이다. 마치 행선하듯이 하는 것이다. 멈출 때와 움직일 때를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다. 서 있을 때 10초가량 머물고, 내릴 때 10, 그리고 엉거주춤 자세에서 10, 올릴 때 10초 하여 40초를 한사이클로 하고자 했다. 이와 같이 한번에 40초를 유지하는 것은 유튜브에서 권유한 것이다.

 

 

처음 엉덩이를 밑으로 뺄 때는 잘 내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회수를 거듭할수록 점점 아래로 깊게 내려간다. 회수를 거듭할수록 더 깊게 내리다 보면 동시에 허벅지가 뻐근해 옴을 느낀다. 이때 수평을 잡기 위해 두 팔은 앞으로 뻗친 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를 약 10초간 유지하면 입에서 , 소리가 난다.

 

허리도 긴장하는 것 같다. 뻗친 두 팔도 뻐근함을 느낀다. 마치 벌받는 것처럼 또는 요가 하는 것처럼, 듯이 이런 자세를 유지하고 있으면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 뻐근함에 따른 즐거운 느낌이다. 괴로운 상태이지만 괴로운 느낌이 아니라 강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뻐근함에서 오는 쾌감이 있다. 그래서 지칠 때까지 한다. 아마 이런 것도 중독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좋은 중독이다. 운동도 되고 더구나 몸관찰수행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쿼트는 일종의 몸관찰 수행

 

스쿼트는 일종의 몸관찰 수행과도 같다. 우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엉덩이를 올리고 내릴 때 빨리 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아주 느리게 한동작한동작 알아차림 하면서 올리고 내리고 하기 때문이다.

 

최대한 내렸을 때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행선할 때 멈추어 서 있는 것과 같다. 다시 올리려 할 때는 의도가 있어야 올려 진다. 몸을 세웠을 때는 또 상태로 가만 있는다. 거친 숨을 몰아쉬기도 하는 것이다. 몸관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형구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올바른 새김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이 올바로 알아차리고 새김을 확립하여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한다.(S45.8)

 

 

최근 빠알리 팔정도경을 외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하면 10분가량 걸린다. 삼마사띠와 관련하여 몸관찰(kāyānupassī)이 있다. 이에 대하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여 머문다.(kāye kāyānupassī viharati)(S45.8)라고 했다. 몸으로 한정하여 몸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다.

 

대념처경(D22)에서는 몸관찰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몸관찰하는 것이 반드시 호흡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 , , 와 같은 네 가지 행동양식의 관찰도 있고, 먹고 마시고 대변보고 소변보는 등 일상에서 알아차림도 있다. 또 서른 두 가지 양상에 대한 혐오라 하여 머리카락, 이빨, 신장 등 신체의 외적 내적 기관에 대한 알아차림도 있다. 이밖에도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수, , 풍 사대에 대한 알아차림도 있고, ‘열 가지 시체에 대한 관찰도 있다.

 

스쿼트는 몸관찰의 어디에 해당될까? 아마 네 가지 행동양식에 대한 관찰에 해당될 것이다. 이는 수행승이 걸어가면 걸어간다고 분명히 알거나, 서있으면 서있다고 분명히 알거나, 앉아 있다면 앉아 있다고 분명히 알거나, 누워있으면 누워있다고 분명히 알거나, 신체적으로 어떠한 자세를 취하든지 그 자세를 분명히 안다.”(D22)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스쿼트에 대하여 서 있는 상태에서 몸관찰하는 것으로 본다.

 

스쿼트는 행선과 함께 병행

 

스쿼트는 행선과 함께 할 수 있다. 행선도 하면서 스쿼트도 하는 것이다. 공통적으로 동작을 알아차림 하는 것이지만 둘 다 운동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행선이 운동효과가 있다는 것은 경전적 근거가 있다. 이는 부처님이 긴 여행을 견디게 하고, 정근을 견디게 하고, 건강해지고,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을 완전히 소화시키고, 경행이 목표로 하는 집중을 오래 유지시킨다.”(A5.29)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래서 행선을 한시간 정도 하면 다리가 짱짱해져서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을 마련해 준다. 이처럼 운동효과로서 행선도 있는 것이다.

 

스쿼트는 운동효과로서의 행선을 보완해 줄 수 있다. 행선은 걸으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시간 행선을 하면 수키로를 걷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그러나 천천히 하기 때문에 지구력은 있을지 몰라도 운동효과는 별로 없다. 그런데 스쿼트를 하면 정지된 자세에서 자신의 체중을 최대한 실어서 하기 때문에 운동효과가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특히 허벅지 근육을 만들 수 있다.

 

몸은 근육이 있어야 지탱한다. 만약 근육이 쇠약해지면 잘 걷지도 못하고 잘 앉지도 못할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시간 좌선할 때 허리를 지탱해 주는 근육이 약화되었다면 오래 앉아 있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마하시계통에서는 좌선과 행선을 한시간씩 병행하고 있다. 짝수 시간에는 좌선하고 홀수 시간에는 행선하는 식이다.

 

행선 할 때 스쿼트를 병행하고자 한다. 실제로 병행해 보니 훨씬 더 탄력이 붙는다. 스쿼트를 하여 허벅지가 뻐근하고 두 풀이 들 수 없을 정도로 20회가량, 한회에 40초 걸려서 했을 때 새로운 힘이 샘 솟는 듯하다. 이는 다름 아닌 기분 전환이다. 이런 힘으로 행선을 하면 집중이 더 잘될 것 같다.

 

새벽에 스쿼트를 강하게 했더니

 

새벽에 스쿼트를 강하게 했다. 최대로 아래로 빼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식으로 20회가량 했더니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마에도 땀이 나고, 가슴부위에도 땀이 맺혔다. 이는 강한 유산소운동이 된다. 숨을 , 할 정도로 강한 것이다. 이럴 경우 없던 힘도 솟아 나는 것 같다. 이렇게 땀이 나니 샤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스쿼트는 틈만 나면 하려 한다. 집에서건 사무실에서건 틈만 나면 10분 가량 하려 한다. 스톱워치를 10분에 맞추어 놓고 천천히 오르내림을 반복할 때 강한 쾌감을 느낀다. 이는 감각적 쾌락과는 다른 것이다. 희열(piti)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스쿼트에 열중하다 보면 근심걱정을 잊어버린다. 이는 몸관찰에서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라는 구절과 일치한다.

 

스쿼트에 집중하는 동안만큼은 탐욕도 근심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로지 움직임과 이를 아는 마음, 그리고 의도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세상사에 연연해하는 마음은 모두 망상임을 알 수 있다.

 

지금 여기서 이렇게 느끼는 것만이 진실한 것이다. 감각을 알아차림 하는 것이 진실인 것이다. 몸관찰을 하면 세상의 탐욕과 근심에서 벗어난다는 말을 실감한다.

 

네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요즘 몇 가지 즐거움이 생겼다. 이제까지 글 쓰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나 이제 읽기와 외우기가 추가되었다. 최근 책읽기를 하면서 읽는 즐거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쓸 것을 염두에 둔 책읽기를 말한다.

 

읽었으면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쓰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책에다 밑줄 긋게 된다. 그래서 밑줄긋기용 연필을 여러 가지 색으로 준비했다.

 

암송하는 즐거움이 있다. 애써 힘들게 외운 것을 외운 것으로 그칠 수 없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워야 한다. 최근 외운 빠알리팔정도경’(S45.8)이 그것이다. 경행을 하며 입으로 나직이 10분가량 암송하면 유쾌, 상쾌, 통쾌하다.

 

이번에 즐거움이 하나 더 생겼다. 그것은 스쿼트 하는 것이다. 허벅지가 뻐근하게 스쿼트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 온 몸을 긴장시켜서 동시에 온 몸을 푸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행선과 병행하여 틈만 나면 하고자 한다.

 

현재 네 가지 즐거움이 있다. 글 쓰는 즐거움, 책 읽는 즐거움, 암송하는 즐거움, 그리고 스쿼트하는 즐거움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는 세상의 근심과 걱정을 없게 해주는 것 같다. 몰입 하다보면 근심걱정뿐만 아니라 탐욕도 사라진다. 요즘과 같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붙타는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본다.

 

 

2020-12-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