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팔정도는 십선행(十善行)에 대한 것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 3. 08:05

팔정도는 십선행(十善行)에 대한 것

 

 

팔정도경(S45.8)을 매일 암송하고 있다. 1,100여자에 달하는 글자를 한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더구나 나이가 들어 이제 초로가 되었다. 기억력에도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놀랍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암송함에 따라 다음 구절이 톡톡 튀어나오는 것이다. 반복숙달되어서 가능한 것이다.

 


팔정도경을 하루 두 번 또는 세 번 암송하고 있다. 마치 스님들이 조석으로 그리고 사시에 예불 드리는 것처럼 혼자 나직한 목소리로 암송한다. 하나도 틀리지 않고 삼마사마디까지 암송했을 때 무척 상쾌하다. 그때 스스로 사두! 사두! 사두!”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해 낸 것을 스스로 대견스러워하며 이 공덕을 먼저 돌어가신 부모님께 올린다. 그리고 모든 존재에게 회향한다. 테러와다 불교에서는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팔정도경을 암송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팔정도경은 부처님이 처음 설한 것이기도 하고 최후에 설한 것이기도 하다. 디가니까야에 있는마하빠리닙바나경(대반열반경)’(D16)에 따르면,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들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있다. 부처님은 마지막 제자에게 쑤밧다여, 가르침과 계율에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 없다면, 거기에는 수행자가 없고, 거기에는 두 번째 수행자가 없고, 거기에는 세 번째 수행자가 없고, 거기에는 네 번째 수행자도 없습니다.”(D16.121)라고 말씀했다. 팔정도가 없으면 사향사과의 성자도 없음을 말한다. 이는 팔정도가 없으면 열반도 없음을 말한다. 팔정도가 있어야 사향사과도 있고 열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홉가지가 있어야 정법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팔정도가 있으면 정법시대라고 말한다.

또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팔정도를 암송해 보니 오계가 있더라는 것이다. 팔정도에서 계학과 관련된 세 가지, 즉 삼마와짜(正語), 삼마깜만또(正業), 삼마아지워(正命)인 것은 잘 알고 있다. 또 거기에 있는 항목이 오계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오계에서 불음주계 하나만 빠져 있다. 그래서 삼마깜만또에서 세 가지, 즉 빠나띠빠따 웨라마니, 아딘나다나 웨라마니, 아브라흐마짜리야 웨라마니라 하여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에 대한 항목이 있다. 그리고 삼마와짜에서 무사와다 웨라마니라 하여 불망어에 대한 것이 있다. 이렇게 네 가지가 팔정도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팔정도에는 불음주에 대한 것이 없을까? 이런 의문으로 암송하다가 오늘 아침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팔정도는 십선행에 대한 것이 아닐까?”라고.

우리나라 불자들이 조석으로 암송하는 경이 있다. 천수경을 말한다. 천수경은 니까야에도 보이지 않고 대승경전에도 없는 독특한 경이다.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경이라 볼 수 있다. 경전에 실려 있는 좋은 구절을 모아 만든 생활경전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천수경에 십악참회 게송이 있다. 몸으로 지은 죄 세 가지, 말로 지은 죄 네 가지, 마음으로 지은 죄 세 가지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열 가지 항목을 보면 니까야에 그대로 실려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보아 최초의 천수경편집자는 초기경전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본다.

 

천수경의 십악참회는 초기경전, 즉 니까야를 근거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똑 같은 내용이 맛지마니까야를 비롯하여 여러 니까야 도처에 실려 있다. 다만 한가지 차이가 있다면 가장 마지막에 있는 치암중죄금일참회에 대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니까야에서는 밋차딧티(邪見)이라고 했다. 사견을 가지면 지옥과 같은 악처에 떨어진다고 했다. 천수경에서는 단지 어리석음의 뜻으로 치암이라고 했으나 니까야에서는 잘못된 견해가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입니다.”(M9.7)라고 하여, 어리석음이 사견이라고 명백히 규정한 것이다.


니까야에서 말하는 사견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다. 이는 팔정도경 삼마딧티(正見)에서 둑케냐낭, 둑케사무다예 냐낭, 둑케나로데 냐낭, 둑케니로다가미니아 빠띠빠다야 냐낭이라고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정견은 괴로움을 아는 것이고, 괴로움의 원인을 아는 것이고, 괴로움의 소멸을 아는 것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을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견은 사견과 반대되는 것이다.

 

외도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면 사견이 된다. 대표적으로 영원주의와 허무주의를 들 수 있다. 대부분 견해가 이 둘 중의 하나이다. 이 밖에도 사견으로는 숙명론, 우연론 등을 들 수 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은 외도의 견해를 연기법으로 부수었다. 부처님은 연기법으로 사상의 평정을 이룬 것이다. 부처님의 정견은 사성제로 표현되어 있다.

팔정도경을 암송하면서 팔정도경은 십선행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라며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 갔다. 오늘 아침 따지고 보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십선행 중에 몸으로 짖는 세 가지, 즉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에 대한 것은 삼마깜만또(正業)에서 드러나 있다. 또 말로 짖는 네 가지는 무사와다 웨라마니, 삐수나야 와짜야 웨라마니, 파루사야 와짜야 웨라마니. 삼팝빨라빠 웨라마니라 하여 삼마와짜(正語)에서 명백히 드러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마음으로 짖는 세 가지, 즉 탐, , 치에 대한 것이다.

, , 치는 팔정도경에서 어떻게 드러나 있을까? 먼저 치에 대한 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사견이라고 했다. 사견과 반대되는 것은 정견이다. 팔정도에서 정견은 사성제를 아는 것이다. 이로서 치에 대한 것이 해결되었다. 남는 것은 탐과 진에 대한 것이다.

팔정도경에서 탐애중죄금일참회에 대한 것은 어떤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삼마사마디에 있다. 정정 정형구에서 초선정에 대한 것을 보면 위위쩨와 까메히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여의고라는 뜻이다. 눈과 귀, 코와 혀, 그리고 몸으로 오욕락을 즐기는 것을 여의는 것이다. 또 생각해 보니 하나 더 있다. 삼마깜만또(正思惟)에서 네깜마 상깝뽀에 대한 것이다. 이는 욕망을 여읜 사유를 말한다. 탐욕과 관련하여 두 군데가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진애중죄금일참회에 해당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삼마상깝뽀를 들 수 있다. 정사유에 대한 항목을 보면 아브야빠다 상깝뽀에 대한 것이 있다. 이는 분노를 여읜 사유라고 번역된다. 이렇게 본다면 삼마상깝뽀에서는 마음으로 짖는 죄 중에서 탐욕과 성냄에 대한 것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팔정도경에 십악참회가 모두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다. 이런 사실을 오늘 아침 알았을 때 들뜬 마음이 되었다. 마치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것처럼 흥분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호들갑 떨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팔정도경 구조를 꿰뚫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팔정도경이 십선행에 대한 것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야심경을 대승경전의 정수라고 한다. 반야심경의 내용을 제대로 알면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반야심경 말미를 보면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등등주라는 문구가 나온다. 반야심경은 위대한 주문이고, 최고의 주문이고, 비교될 것이 없는 주문이라는 뜻이다. 이를 팔정도경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싶다. 팔정도경은 위대한 경이고, 최고의 경이고, 그 무엇과도 비교될 것이 없는 경이라는 것이다. 빤냐완따 스님이 왜 팔정도경을 생활경전으로 삼으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팔정도경 외우기를 잘 했다. 어렵게 외운 경을 잊어버리지 않게 위해서라도 매일 암송한다. 팔정도경을 암송하고 나면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하다. 마치 큰 공덕을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팔정도를 생활화하는 것은 먼저 팔정도경을 외우는 것부터 시작된다. 어떤 내용인지 먼저 알아야 실천할 수 있다. 경을 이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외워야 한다. 외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고 생활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모든 학문이 외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과 같다.

 

오계도 이해 차원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법회를 할 때마다 오계를 받아 지니는 것은 오계를 실천하여 생활화하는데 목적이 있다. 오계보다 더 수승한 것이 십선행이다. 십선행을 샐활화 하려면 먼저 팔정도경을 외워야 한다. 이해 차원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매일 암송하여 생활화가 되었을 때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 팔정도가 십선행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마치 큰 발견을 한 것처럼 들떴다.

 

 

2021-01-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