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머물것인가 건널것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 11. 07:13

머물것인가 건널것인가


새벽이 좋다. 남들 자는 시간에 깨어 있는 것은 쾌한 일이다. 할 것이 없다. 가장 좋은 것은 떠 오른 생각을 지켜보는 것이다. 더 좋은 것은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사유해 보는 것이다. 이럴 때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글쓰기 위해 사유하는 것이다. 사유한 것을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의문을 갖는 것이다. 자아와 세계에 대한 의문을 말한다. 문제의식이 없는 글은 글이 아니다. 자랑이기 쉽다. 자랑질 하려고 쓰는 것은 아니다. 글을 통해 정신적 향상을 이루기 위해서 쓴다. 그렇게 하려면 자아와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하고 질문해야 한다.

문제제기로 그쳐서는 안된다. 해법을 말해야 한다. 문제만 제기하면 그래서 어쩌자구요?”라는 말을 듣기 쉽상이다. 그 사람의 타령을 듣자고 글을 보는 것은 아니다. 하나라도 건질 것이 있는 글을 써야 한다. 유익한 글을 말한다. 자신에게도 이익되고 타인에게도 이익되는 그런 글이다.

나는 자리이타적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그런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자 한다. 경전과 주석을 근거로한 글쓰기를 말한다.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보다 경전의 말씀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허접한 글이라도 게송 하나 추가하면 글이 살아나는 것 같다.

경전을 모두 갖추어 놓았다. 사부니까야경는 두 종류의 번역서를 모두 갖추었다. 쿳다까니까야에 속해 있는 경전도 번역된 것은 모두 갖추었다. 이 밖에도 논장과 율장에 대한 것도 갖추었다. 모두 갖추니 책장에 가득하다. 의자만 돌리면 꺼내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경전을 모두 갖추었다고 해서 모두 다 읽어 본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 읽는다. 글을 쓸 때 읽는 것이다. 경전을 소설 읽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경을 찾아서 읽는 것이다. 한마디로 글을 쓰기 위한 경전읽기이다.

십년 이상 매일 쓰다시피 하다보니 경전 이곳저곳에 흔적이 남아 있다. 노랑메모리펜으로 칠한 흔적을 말한다. 또 견출지로 표시했다. 꼭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있는 페이지에 꼬리표를 달아 둔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니 세월이 흐름에 따라 수많은 꼬리표가 달렸다.

경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 본 것도 있다. 그것도 각주까지 샅샅이 훝어 본 것이다. 초역된 경전에 대해 교정작업 했을 때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본의 번역서를 말한다. 테라가타, 테리가타, 청정도론, 앙굿따라니까야 통합본, 율장부기를 교정했다. 오자와 탈자 등을 찾아 내는 것이 주된 것이긴 하지만 방대한 경전을 읽으면서 그 내용에 매료되었다. 기억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별도의 노트도 만들었다. 나중에 글쓰기 위한 것이다.

경전지상주의자가 되었다. 초기경전 가르침에 매료되면서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심오한 가르침과 비교하면 너무나 천박해 보였다. 더 이상 방의 세 면에 책으로 가득 채우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이사하면서 대부분 버렸다. 가지고 있는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인간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수천년 동안 전승되어 온 지혜와 견줄 수 없는 것이다.

경전을 근거로 글쓰기 할 때가 행복하다. 빠알리 원문을 참조해서 쓴다. 빠알리 문법은 모른다. 한번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빠알리 문법을 배우고 싶다. 서당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빠알리 원문을 자주 접하고 때로 외우다 보니 대충 감은 잡힌다.

글을 쓸 때 빠알리 사전을 참조한다.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것이다.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면 영문으로 설명이 나온다. 한문설명도 있고 일문설명도 있다. 무엇보다 단어와 관련된 경이 소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추적하다 보면 의외로 걸리는 것이 많다. 이런 경우 소 뒷걸음치다 쥐잡는다.”라는 속담이 연상된다.

빠알리 사전에서 빠알리단어의 뜻을 알 때 충만된다. 더구나 빠알리어는 부처님 당시에 쓰던 언어 아니던가! 빠알리어를 접하면 부처님 그분과 가까이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힘이 팍팍 솟아나는 것 같다. 이를 엔돌핀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한문시대는 가고 빠알리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이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전세계적으로 초기불교에 관심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증거가 아마도 빠알리사전일 것이다.

빠알리사전은 누구나 다운 받을 수 있다. 내용은 방대하다. 더구나 빠알리 삼장이 모두 실려 있다. 초기불교에 관한 모든 것이 ‘PCED194’라고 불리우는 빠알리사전에 모두 다 있는 것이다.

빠알리 사전을 접하면 불가사의한 느낌이다. 이렇게 방대한 내용을 누가, 언제, 어떻게, 왜 편집해 놓았는지 알 수 없다. 아마 집단지성의 힘으로 완성되었을 것이다. 빠알리사전을 접하면 뿌듯하다. 여기에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거기에서 거기이다. 한 존재가 아무리 사유해도 한계가 있음을 말한다. 그럴 경우 책을 접한다. 책을 보면 타인의 인생이 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는 것이다.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는 순간이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모두 양서는 아니다. 고전이 양서이다. 오래 전부터 꾸준히 읽혀진 책이 고전이다. 고전을 접하면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 책읽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고전중의 고전은 경전이라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빠알리삼장이다.

빠알리 삼장은 지난 십년 동안 매일 접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접해도 질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볼 때마다 새롭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내용이 심오함을 말한다.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완전히 내것으로 만들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이와 같은 경전을 접하는 것은 비밀의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요즘 컴퓨터 시대이다. 메모리가 부족하면 외장하드를 사용한다. 경전을 접한다는 것은 외장하드를 장착하는 것과 같다. 인류의 문화유산에 접속하는 것이다. 마치 온갖 진귀한 보물로 가득한 비밀의 방에 들어 가는 것과 같다. 이제까지 상상도 못했던 넓고도 깊은 세계에 들어 가는 것이다. 경전은 인류문화의 보고(寶庫)이자 외장하드와 같은 것이다.

새벽은 사유하기 좋은 시간이다. 이왕이면 글로 남기고자 한다. 그래서 스마트폰 자판을 오른쪽 엄지로 똑똑친다. 치다 보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오늘 숙제는 다한 것이다. 이를 인터넷에 올릴 것이다.

자아와 세계에 대한 의문과 질문의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저언덕으로 건너갈 수 있다. 의문이 없는 삶은 멈추어 버린다. 여기서 이대로 멈추어 버릴 것인가, 의문하여 저 언덕으로 건너갈 것인가? 아침 6시가 되었다.

 

 

2021-01-1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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