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하여
마스크를 쓰면 누가 누군지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마스크 뒤로 숨는 것 같다. 여기에 모자까지 쓰면 어떨까? 완전하게 자신을 숨길 수 있다. 선글라스까지 쓰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코로나 이전에 이런 사람은 범죄자 취급당했다. 현금인출기에 서 있다면 범죄자로 의심받았을 것이다.
마스크가 이제 예의가 되었다. 밖에 나갈 때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불안하디. 입장도 거부되고 탑승도 할 수 없다. 사람들도 실실 피한다. 혹시 감염될지 몰라 염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스크를 착용하면 인심이다. 마스크는 서로 좋은 것이다. 코로나시기에 마스크는 예절이다.
마스크로 인하여 피해 보는 업종도 있다. 아마 립스틱 업체가 직격탄을 맞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립스틱 업체는 보상받을 수 있을까?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강력한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소상공인이 죽어나고 있다. 밤 9시 이후에는 영업을 할 수 없고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이 발동됨에 따라 타격을 입는 업종이 있다. 정부에서는 이런 업종을 대상으로 하여 돈을 주고 있다. 이번 설을 앞두고 시행되고 있는 3차 지원금이다. 이름하여 ‘버팀목자금’이라고 한다. 과연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한국사람들은 순진한 면이 있다. 정부의 말을 잘 믿는다는 것이다. 정부의 시책에 적극 호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 담벼락에 붙은 포고문 형식의 시책에 두말하지 않고 따랐던 것 같다. 저항하면 잡아 가던 시기의 기억이 있어서 일 것이다.
이번 코로나시기의 재난지원금에 대해서도 대체로 따르는 편이다. 마치 정부에서 큰 시혜를 베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시혜가 아니라 당연히 주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알아서 주지 않는다.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고 요구해야 준다. 정부에서 버팀목자금이라는 명목으로 준 것은 알아서 주는 것으로 시혜성이다. 미안해서 주는 것이다. 코로나 무풍지대에서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정규직, 연금생활자, 건물주 등 여유 있는 계층사람들은 코로나와 무관하다.
아무리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도 매월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매월 또박또박 연금을 받고, 매월 따박따박 임대료를 받는 계층이 있다. 그러나 소상공인들에게는 꼬박꼬박, 또박또박, 따박따박 나올 구석이 없다. 마치 낙수효과처럼 사람들이 흘린 돈으로 먹고 살아 간다. 식당업 등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이 그렇다.
소상공인들은 단결해야 한다. 가만 있으면 죽는다. 정부에서는 자꾸 가만 있으라고 하지만 정부 말만 믿으면 다 죽을 수 있다. 정부시책에 저항해야 한다.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를 찾아야 한다. 정부에서 행정명령을 발동하여 영업하지 못하게 했다면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
기득권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해주는 것이 없다. 어려운 처지를 알아서, 발굴해서 조치해주지 않는다. 말을 탄 왕자가 나타나서 데려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부의 강력한 거리두기 시행에 따라 피해를 보았다면 가만 있어서는 안된다. 동종 업종끼리 연합해서 데모를 해야 한다. 시혜성 지원금이 아니라 피해성 보상금을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이다. 코로나시기에 볼 수 있는 ‘코로나민주주의’를 말한다.
립스틱 업체도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당연히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정부에서 마스크를 쓰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떨까? 교회가 영업활동하는 장소라면 당연히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절이나 성당도 영업개념으로 본다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시대를 초월하여 종교가 장사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중세시대 면죄부 장사는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일부 교회의 행태를 보면 영업권 투쟁을 벌이는 것 같다. 정부의 시책을 어기고 대면예배를 강행함에 따라 전염병 확산의 주범이 되고 있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이 자영업자들이다. 특히 집합금지명령의 대상이 되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가만 있다는 것이다. 문을 닫으라면 문을 닫고, 문을 열라면 문을 연다. 더구나 나라 걱정까지 한다. 어려운 시기에 나라곳간 걱정까지 하는 것이다. 나라에서 국민형평성을 생각하여, 국민정서를 생각하여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시혜성 돈을 주는 것도 감사히 생각하는 것 같다. 착한 국민이다.
정의의는 교과서에 있지 않다. 민주주의는 책에 있지 않다.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때 정의와 민주주의는 실현된다. 지금은 가만 있을 때가 아니다. 나가서 데모할 때이다. 그러나 착한 국민은 정부에서 잘 해주기만을 바란다.
소상공인인들은 시위해서 정치인들을 압박해야 한다. 그들이 소상공인들을 위한 법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기득권은 구경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진보주의자들도 침묵하고 있다. 같은 기득권이어서 그런 것일까? 등 따습고 배 부르면 다 그런 줄 아는 것일까?
어느 누구도 나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요즘과 같은 엄중한 코로나시기에 소상공인들은 단결해야 한다. 단결해서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권리를 찾아 먹어야 한다. 지원금이 아니라 보상금을 요구해야 한다. 집단행동을 하여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 코로나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2021-01-19
담마다사 이병욱
'코로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해는 못가지만 내년에는 (0) | 2021.05.22 |
---|---|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코로나19 검사 음성판정을 받고 (0) | 2021.05.13 |
한국은 코로나 선진국인가? (0) | 2021.01.17 |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가? (0) | 2021.01.14 |
소상공인 버팀목자금 (0) | 2021.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