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나를 바꾸는 자가격리

담마다사 이병욱 2021. 2. 2. 22:01

나를 바꾸는 자가격리


미얀마 선원에서 본 것이 있다. 그것은 영어로 리트리트(retreat)라는 말이다. 미얀마 위빠사나 국제선원에는 외국인 수행자가 많은데 플레카드에 리트리트라는 말이 보였다. 처음 보는 단어이다. 리트리트의 뜻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 보았다. 퇴각의 뜻도 있지만 피정이라고도 한다. 천주교 용어이다.

위빠사나수행센터에서 보내는 것을 영어로 리트리트라고 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안거가 될 것이다. 또는 은거라고 말 할 수 있다. 외진 곳에서 그냥 놀고먹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수행을 하는 것이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피정과도 다른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여 자신을 변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요즘 자발적 격리에 들어 갔다. 가능하면 에스엔에스, 특히 카톡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 경솔함으로 인하여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경계에 부딪쳐 무너졌을 때 마음의 힘이 매우 약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어떤 경계에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사람은 상황에 닥쳐 보아야 알 수 있다. 이전에는 모른다. 그가 아무리 많이 배우고 도덕군자처럼 보여도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본 모습이 나온다. 그것이 그 사람의 실력이다. 흔히 속는 것은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이미지 관리를 하기 때문에 깜박 속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어떤 상황에 직면하면 한계를 볼 수 있다.

나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경전을 읽고, 경전을 근거로 글을 쓴다. 훌륭한 가르침을 글로 표현할 때 정화된다. 그러나 사람을 바꾸지는 못한다. 머리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도 지혜라고 볼 수 있지만 경계에 부딪쳤을 때 허망하게 무너진다면 진짜 지혜가 아니다.

체득된 지혜가 있다. 몸으로 겪은 지혜를 말한다. 뜨거운 것을 언어로 아는 것과 데여서 아는 것과는 다르다. 데여 본 사람은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다시는 데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곤란을 겪으면 다시 겪으려 하지 않는다. 실수를 반복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지혜가 생긴 것이다.

지식과 지혜는 동의어가 될 수 없다. 많이 안다고 하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경전을 읽었다고 하여 내것이 될 수 없다. 경을 외웠다고 하여 내것이 아니다. 경의 내용대로 실천해야 내것이 된다. 그럼에도 경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면 기억하고 있지 않은 것보다 훨씬 낫다.

휴식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놀고먹는 휴식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 먼저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누구의 말이 바른지 알 수 없다. 이런 때는 경전만한 것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경전은 초기경전이다. 빠알리 니까야 경전이다.

경전에는 지혜의 말씀으로 가득하다. 상황별로 나와 있는 것 같다. 화가 났을 때는 분노와 관련된 경을 보면 된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앙굿따라니까야에절복진노경(A5.161)’에서 마음을 항복 받는 방법에 대하여 다섯 가지로 말씀하셨다. 그것은 자애, 연민, 평정, 아사띠, 업의 상속자에 대한 것이다.

분노의 마음은 자애의 마음과 반대되는 마음이다. 그래서 사무량심 중에서 세 가지, 즉 자애, 연민, 평정이 들어가 있다. 여기서 기쁨(mudita)이 빠진 것은 상대방에 대하여 분노의 마음이 일어났을 때 기쁨의 마음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애, 연민, 평정, 이렇게 세 마음은 먼저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으로부터 성취된다. 자애수행을 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야 연민의 마음도 생기고 평정한 마음이 된다. 또한 아사띠(asati)라 하여 상대방에게 관심두지 않는 것이다. 이는 피함으로 인하여 번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자신이 업의 상속자임을 아는 것이다. 행위를 하면 업이 되는데 분노의 업이 어떻게 파괴적으로 작용하는지 안다면 화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애, 연민, 평정과 ,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아사띠, 그리고 행위를 하면 과보를 받는다는 업의 상속자, 이렇게 다섯 가지를 실천하면 마음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마음을 항복받기가 쉽지 않다. 그 사람과 맞닥뜨렸을 때 무참히 깨질 수 있다. 화를 내면 깨지는 것이다. 분노가 폭발하여 발광하는 단계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다. 인간관계는 파탄나고 정신은 황폐화된다. 이런 일을 한번이라도 겪었다면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도발해 오더라도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이는 힘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람은 겪어 보아야 한다. 한번 심하게 깨져 보아야 안다. 고통을 절절하게 느꼈을 때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 뜨거운 불에 달구어진 솥뚜껑을 만지지 않는 것과 같다. 지혜가 생긴 것이다. 이런 행위를 해서 고통과 불이익이 초래될 것이라고 생각되면 멈추는 것이다.

멈출 줄 알아야 한다. 폭주하는 기관차가 멈추지 못하면 탈선하여 전복되고 말 것이다. 멈추어서 관찰해야 한다. 멈추면 지켜보는 것 밖에 달리 할 것이 없다.

멈추고 관찰하는데 있어서 선원만큼 좋은 곳이 없다. 그러나 재가의 삶을 사는 자들은 시간 내기 힘들다. 휴가를 내지 않는 한 10일짜리 집중수행 코스가 있는 선원에 들어 가기 힘들다. 이럴 때는 스스로 자가격리 하는 것이 낫다. 이를 리트리트, 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가이 쉬는 휴식이 아니다.

멈추는 수행과 관찰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특히 마음을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바뀐다. 나는 이번 자가격리에서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


2021-02-0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