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무량삼매에 대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21. 3. 3. 10:31

무량삼매에 대하여

 

 

2월 넷째주 금요모임에서 두 번째로 독송한 경은 삼매에서 생겨나는 성찰의 지혜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본래 타이틀은 삼매의 경(samādhisutta)’(A5.27)이다. 핵심 가르침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이 삼매는 현재의 행복이고 미래에 초래되는 행복이라고 자신에게 앎이 생겨난다. 이 삼매는 고귀한 것이고 자양분을 여읜 것이라고 자신에게 앎이 생겨난다. 이 삼매는 악한 사람이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에게 앎이 생겨난다. 이 삼매는 고요하고 승묘하고 평온하고 통일되어 있고 힘든 억압에 의해 강요되는 수행이 아닌 것이라고 자신에게 앎이 생겨난다. 이 삼매에 나는 새김을 확립하여서 들고 새김을 확립하여서 나온다라고 자신에게 앎이 생겨난다.”(A5.27)

 

 

여기서 말하는 삼매는 무량삼매이다. 이는 현명하고 주의깊게 무량한 삼매를 닦으면이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무량삼매(appamāa samādhi)

 

무량삼매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주석에 따르면, “해탈하지 못한 사람이 닦는 세간적 삼매에는 다섯 가지 장애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강력한 의지력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고귀한 님의 무량한 삼매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필요가 없다.”(Lba.III.159)라고 되어 있다.

 

KPTS에서는 ‘Lba’를 인용하여 무량삼매를 설명했다. ‘Lba’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찾아 보니 ‘Die Lehrredn des Buddha aus Angereihten Sammlung’라고 되어 있다. 독일어판 자료를 참고한 것이다. 이는 KPTS 전재성 선생이 독일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전재성 선생에 따르면 영어보다는 독일어가 더 낫다고 한다. 영어로 대화하면 능숙하지 않지만 독일어로 대화하면 능숙하다고 말했다. 이런 점은 번역자로서 장점이 된다.

 

오늘날 독일은 학술자료의 보고와 같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가치있는 자료가 독일에 가장 많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독일로 유학을 많이 간다고 한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량한 삼매(appamāa samādhi)는 출세간적 삼매를 말한다. 무량한 삼매는 자유자재한 삼매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체험에 따른 것이다.

 

다섯 가지 삼매의 앎이 있는데

 

무엇이든지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면 그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유의지가 없다. 자기 의지대로 한다고는 하지만 자유의지는 없는 것이다.

 

커피를 선택할 것인지 차를 선택할 것인지는 자신의 의지대로 될 수 있다. 그러나 커피중독자가 커피를 끊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마치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지 못하는 것과 같다.

 

중독된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는 것이다. 반면 중독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선택의 자유는 있지만 진정한 자유의지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성자들은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삼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삼매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삼매는 일상과 같은 것이라 본다. 자유자재로운 삼매를 말한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다섯 가지 앎āa)으로 설명했다. , 1) 현재의 행복이고 미래에 초래되는 행복, 2) 고귀한 것이고 자양분을 여읜 것, 3) 악한 사람이 섬기는 것이 아닌 것, 4) 힘든 억압에 의해 강요되는 수행이 아닌 것, 5) 사띠의 확립으로 들고 나오는 것을 말한다.

 

왜 행복보다 축복인가?

 

1번항을 보면, 삼매에 대하여 현재의 행복이고 미래에 초래되는 행복이라고 했다. 현재에도 행복하고 미래에도 행복할 것이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이는 행복이라기 보다는 축복이다.

 

테라와다불교 예불문에 축복경’(Sn.2.4)이 있다. 망갈라숫따라고 한다. 경을 보면 어리석은 자와 사귀지 않으며로 시작되는 수많은 축복의 조건이 있다. 이런 조건은 현재의 행복뿐만 아니라 미래의 행복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세상의 행복뿐만 아니라 저세상의 행복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행복보다 더 좋은 말은 축복이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뜻하는 것일 수 있지만, 축복은 지금 여기서 행복뿐만 아니라 미래 행복도 기대되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한 사람에게 축하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지금 여기서 행복뿐만 아니라 미래 행복도 기대하는 것이다. 어려운 시험을 쳐서 입사하게 되었을 때도 축하합니다.”라고 말한다. 결혼한 신랑과 신부에게도 축하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축복의 말이다. 이런 이유로 행복보다 축복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축복경을 설했다.

 

망갈라(magala)라는 말은 축복의 뜻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망갈라숫따를 행복경이라고 번역한다. 이는 경의 취지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일 것이다. 망갈라경 말미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는 모든 곳에서 번영하리니(sabbattha sotthi gacchanti)”(Stn.269)라는 말로 알 수 있다. 현재의 행복 뿐만 아니라 미래의 행복도 기대하는 것이 축복이다.

 

삼매에서 자유자재한 것은 행복이다. 그러나 축복에 더 가깝다. 지금 야기에서 행복뿐만 아니라 미래 행복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삼매는 현재의 행복이고 미래에 초래되는 행복이라고 자신에게 앎이 생겨난다.” (A5.27)라고 했다.

 

네 가지 자양분이 있는데

 

2번 항을 보면, 삼매에 대하여 고귀한 것이고 자양분을 여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 선생은 네 가지 자양분으로 설명했다. 이는 상윳따니까야 니다나상윳따에 실려 있는 자양분의 경’(S12.11)을 근거로 말한 것이다.

 

자양분의 경에 따르면, 네 가지 음식이 있다. 물질의 자양분, 접촉의 자양분, 의도의 자양분, 의식의 자양분을 말한다. 이 네 가지 자양분은 모두 윤회의 원인이 된다.

 

사람들은 매일 밥을 먹는다. 밥 먹는 것은 일상이다. 하루에 세 끼 먹는다. 어떤 이는 간식도 먹고 새참도 먹고 야식도 먹어서 하루 다섯 끼 먹는다. 누구도 먹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욕망으로 먹는 것이다. 그래서 윤회하게 된다.

 

먹는 것만 음식이 아니다. 부처님은 접촉하는 것도 음식이라고 했다. 이는 즐거운 느낌을 말한다. 즐거움을 추구하면 역시 윤회의 원인이 된다. 의도도 음식이다. 의도는 행위을 말한다. 주로 신업이나 구업으로 나타난다. 의식도 음식이다. 주로 의업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네 가지 자양분을 매일매일 취하는 것에 대하여 이 네 가지 자양분은 갈애를 원인으로 하고 갈애를 근거로 하고 갈애를 원천으로 한다.”(S12.11)고 했다.

 

자양분은 갈애를 원천으로 한다. 갈애는 즐기는 것에 대한 것이다. 즐기는 삶을 살면 윤회하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시 태어남을 원하는 뭇삶의 보양을 위한 네 가지 자양분이 있다.”(S12.11)고 했다. 그러나 자유자재한 삼매를 닦으면 네 가지 음식에서 자유롭게 된다. 그래서이 삼매는 고귀한 것이고 자양분을 여읜 것이라고 자신에게 앎이 생겨난다.” (A5.27)라고 했다.

 

악인이 명상을 못하는 것은

 

3번 항을 보면, 삼매에 대하여 악한 사람이 섬기는 것이 아닌 것이라고 했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악한 자는 삼매에 들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욕망으로 가득 찬 자는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5분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욕망과 분노로 가득 찬 자가 있다. 그는 본능적이고 감각적이고 감정적이다. 한마디로 동물과도 같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좌선한다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서유기를 보면 손오공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손오공은 원숭이라는 사실이다. 원숭이임에도 갖가지 능력을 발휘한다. 신통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안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명상이다. 원숭이는 잠시도 가만 있지 않는다.

 

동물들은 명상을 할 수 없다. 악한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명상을 해서 얻을 이익이 없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게으른 자가 등산하는 사람에게 뭐하러 힘만 들게 올라갑니까? 올라 갔다 내려올 것을.”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악한 사람이 명상을 할 수 없는 것은 욕망때문이다. 그래서 팔정도경을 보면 초선정에 들어 가는 조건으로 감각적인 쾌락의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에서 떠난 뒤”(S45.8)라고 했다.

 

선정에 들기 위해서는 먼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kāma)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akusala dhamma)’를 떠나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했을 때 선정에 들 수 있다. 그러나 악인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정에 들 수 없다. 그래서 이 삼매는 악한 사람이 섬기는 것이 아니다. (aya samādhi akāpurisasevito)” (A5.27)라고 한 것이다.

 

왜 선정에 들기 어려울까?

 

4번 항을 보면, 삼매에 대하여 힘든 억압에 의해 강요되는 수행이 아닌 것이라고 했다. 이는 출세간적 삼매를 설명하기 위한 말이다. 출세간적 삼매에 대하여 경에서는 무량한 삼매라고 했다.

 

출세간적 삼매가 있다면 세간적 삼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출세간과 세간을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절에 살면 출세간이고 도시에서 살면 세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성자의 흐름에 들면 출세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누구나 성자의 흐름에 들면 출세간의 삶이 된다. 그래서 마음도 세간의 마음과 출세간의 마음으로 나누어진다.

 

사향사과와 열반을 추구하는 삶은 출세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출세간의 도와 과를 이루려면 삼매에 들어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일반사람은 선정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논서에서는 생이지자로 설명한다. 전생에서부터 지혜를 닦은 자가 이 생에서도 수행자로 살기 쉬움을 말한다. 이 생에 태어날 때 이미 지혜의 종자를 가지고 태어났음을 말한다. 그래서 쉽게 선정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한번도 수행을 해 보지 않은 일반사람들은 선정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힘만 들 뿐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다섯 가지 장애(五障碍) 때문이다. , 감각적 쾌락의 욕망(kāmarāga), 분노(byāpāda), 해태와 혼침(thīnamiddha), 흥분과 회한(uddhaccakukkucca), 회의적 의심(vicikicch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간적 삼매를 성취하려면 힘이 든다. 오장애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재성 선생은 세간적 삼매는 강력한 의지력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량삼매는 노력없이 성취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향사과의 성자들은 삼매에 능숙하다. 삼매가 자유자재함을 말한다. 그래서 이 삼매는 고요하고 승묘하고 평온하고 통일되어 있고 힘든 억압에 의해 강요되는 수행이 아닌 것”(A5.27)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삼매에 대하여 라따나경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카양 위라강 아마땅 빠니-
야닷자가 사꺄무니 사마히또
나 떼나 담메나 사맛티 낀찌
이담삐 담메 라따낭 빠니-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싸끼야 족의 성자가 삼매에 들어 성취한

지멸과 소멸과 불사와 승묘, 이 사실과

견줄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르침 안에야 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지이다.”(Stn.225)

 

입정과 출정에서 자유로우려면

 

5번 항을 보면, 삼매에 대하여 사띠의 확립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 선생은 깰 것을 염두에 두고 잠자리에 드는 것을 비유로 설명했다. 이 말은 깨어 있음에 철저하는 것에서 가능하다.

 

번뇌를 부수기 위한 세 가지 원리가 있다. 이는 1) 감각의 문을 수호하는 것, 2) 식사에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 3) 깨어 있음에 철저한 것을 말한다. 이 중에서도 세 번째 항목 깨어 있음에 철저한 것에 대한 가르침을 보면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깨어있음에 철저한 것이라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은 낮에는 거닐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것들로부터 마음을 정화시킨다. 밤의 초야에는 거닐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것들로부터 마음을 정화시킨다. 밤의 중야에는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여 올바로 알아차리며 다시 일어남에 주의를 기울여 눕는다. 밤의 후야에는 일어나 거닐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것들로부터 마음을 정화시킨다. 수행승들이여, 깨어있음에 철저한 것은 이러한 것이다.(A3.16)

 

 

수행자는 행주좌와와 어묵동정간에도 깨어 있어야 한다. 다만 잠 잘 때는 예외이다. 잠 잘 때는 깨어날 것을 염두에 두고 잠자리에 들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깨어 있는 시간에는 깨어 있으라는 말과 같다.

 

무량한 삼매에 들면 삼매가 자유자재할 것이다. 선정에 들고 나가는 것이 자유로움을 말한다. 그래서 성자의 삼매에 대하여 나는 새김을 확립하여서 들고 새김을 확립하여서 나온다. (sato kho panāha ima samāpajjāmi sato vuṭṭhahāmī)”(A5.27)라고 한 것이다.

 

오장애가 있는 한 선정에

 

법구경에 지혜가 없는 자에게 선정이 없고, 선정이 없는 자에게 지혜가 없다.”(Dhp.372)라고 했다. 이 말은 선정과 지혜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생에서 한 수행한다는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다. 청정도론에서는 이에 대하여 지혜를 타고난 자라고 했다. 이는 청정도론 제1장에서 지혜를 갖춘 자는 세 가지 원인에 의한 업생적 결생의 지혜로 지혜를 갖춘 자이다.”(Vism.1.7)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지혜는 타고난 것임을 말한다.

 

선정에 쉽게 들어 가는 사람이 있다. 그는 태어나기 전에 이미 무탐, 무진, 무치의 조건을 갖추고 태어난 것이다. 이는 전생에 무탐, 무진, 무치에 대한 수행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생에 태어날 때 무탐, 무진, 무치라는 세 가지 원인, 즉 세 가지 조건을 갖추고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생에도 수행자로 살면서 한 수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혜를 계발하기 위해서는 선정을 닦아야 한다. 그러나 한번도 수행을 해보지 않은 범부는 선정에 들어가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선정에 들어가는데 장애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감각적 쾌락의 욕망 등 오장애를 들 수 있다.

 

오장애가 있는 한 선정에 들어갈 수 없다. 일반사람들이 선정에 들어가기 힘든 이유에 해당된다. 그러나 오장애가 극복된 사향사과의 성자들은 선정에 들고 나가는 것이 자유롭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무량삼매(appamāa samādhi)라고 했다.

 

일반사람들의 삼매

 

일반사람들도 삼매를 체험할 수 있다. 이를 세속적 삼매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몰두하는 것을 말한다. 독서도 삼매라고 하고, 뜨개질하는 것도 삼매라고 한다. 글쓰기도 삼매에 해당될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집중하고 있다면 모두 삼매에 해당될 것이다.

 

여기 사냥꾼이 있다. 사냥꾼은 대상을 포착하면 집중한다. 마치 스나이퍼가 총구를 겨누는 것과 같다. 이런 것도 삼매에 해당될까? 일반사람이 집중하는 것도 삼매라고 한다. 이를 세간적 삼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출세간적 삼매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선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 선생은 출세간적 삼매는 악한 사람이 드나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사냥꾼이 집중하는 것도 삼매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는 악한 의도를 가진 집중이다. 그래서 선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이에 대하여 전재성 선생은 죽이려는 마음은 선한 마음이 아닙니다. 오장애 중의 하나가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매일 글쓰기 삼매에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특히 담마에 대한 글을 쓰면 몰입된다. 오전일과가 금방 지나가 버린다. 이런 것도 삼매라고 볼 수 있을까? 독서삼매, 뜨개질삼매, 글쓰기삼매는 모두 같은 범주라고 볼 수 있다. 악한 의도는 없는 일반삼매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글쓰기는 세간적 삼매라고 말할 수 있다.

 

 

지혜가 없는 자에게 선정이 없고

선정이 없는 자에게 지혜가 없다.

선정과 지혜가 있으면,

참으로 그에게 열반이 현전한다.”(Dhp.372)

 

 

2021-03-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