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와나선원

보름달은 마음을 충만하게 한다

담마다사 이병욱 2021. 5. 26. 06:10

보름달은 마음을 충만하게 한다


달이 떴다. 보름달이다. 어제 저녁에 뜬 달은 보름에서 하루 부족한 달이다. 그럼에도 거의 원반 모양이다. 일몰 때 안양시 평촌 동쪽 하늘에서 본 보름달은 문자 그대로 쟁반만 하게 크게 보였다.

보름달을 사진 찍고 싶었다. 어제 저녁 달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쟁반보다 더 크게 보여서 마음도 꽉 차는 것 같았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해 두고자 오피스텔 꼭대기 층으로 올라 갔다. 18층에서 초저녁 동쪽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을 잡았다.

저녁밥을 먹고 다시 일터로 향했다. 집에 있으면 자세가 나오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풀 가동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임대료와 관리비는 가차 없이 징수된다. 가만 놀려 둘 수 없다. 앉아서 책이라도 읽어야 한다. 수행하면 더 좋다. 그래서 저녁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저녁은 아침과 다르다.

저녁에는 흙탕물이 인 것 같다.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이럴 때 감각적 욕망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유튜브 시청으로 나타난다. 마음을 다잡고 저녁에 해야 할 일을 했다.

일감이 끊긴 지는 오래 되었다.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때 되면 연락 올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있다. 과거 써 놓은 글을 책으로 엮는 작업이다. 보관용으로 두 질 만드는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글을 편집작업 했다. 책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남이 본다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돈이 안되는 일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수행도 돈이 안되는 일이다. 한시간 다리 꼬고 마치 고행하듯이 앉아 있어 본다. 혼침이 있으면 20분 이상 힘들다. 마음의 준비나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역시 20분 이상 힘들다.

한시간 앉아 있기 힘든 것을 쓰면 어떤 이는 자신을 자랑하려 한다. 몇시간도 끄덕 없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코치 한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비난하는 것이다. 한시간도 앉아 있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아 정신능력도 그럴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세계는 알 수 없다. 그 사람의 정신세계에 들어가 있지 않는 한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글 한줄 보고서 어떻게 그럴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은 한면만 봐서는 안된다. 드러난 한면만 보고서 전체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한눈에 알아보는 경우도 있다. 이상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0.5초 이내에 파악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글 한줄이나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을 판단하려 한다면 경솔한 것이다. 마치 그 사람처럼.

사람은 단점도 있고 장점도 있다. 드러난 것도 있고 드러나지 않은 것도 있다. 드러난 것 보다 드러나지 않은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의식의 영역보다 무의식의 영역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럼에도 단지 드러난 것을 보고서 그 사람을 재단하려 한다면 자신의 프레임에 맞추려는 것과 같다.

보름달이 떴다. 쟁반처럼 큰 달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음력 사월보름날이다. 부처님이 탄생하고, 정각을 이루고, 열반에 든 날이다. 테라와다불교 최대 명절날이다.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일주일 전에 치루었다. 동아시아불교 명절날을 말한다. 오로지 탄생만 기리는 날이다. 그런데 아득한 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불과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로 느껴지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이 변한다. 너무 빨라서 광속과도 같다고 말한다. 특히 도시에서의 삶이 그렇다. 온갖 정보로 넘쳐 나는 삶에서 하루 전의 일은 오래 된 것 같다. 하물며 일주일 전에 일어났던 일은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사건과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유튜브에서 어제 영상물은 옛것이 되어 버린다. 실시간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 것 같다. 하물며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은 고조선 시대에서나 있었던 일로 아득하게 느껴진다.

오늘 가야 할 곳이 있다. 테라와다불교 붓다의 날 행사장이다. 한국불교에서는 부처님오산날이라고 하지만 테라와다불교에서는 붓다의 날이라고 헌다. 전세계적으로는 붓다데이(Buddha Day)’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붓다의 날로 정착되는 것 같다.

붓다의 날 행사는 코로나로 인하여 공식적인 행사는 아니다. 비공식적 행사이다. 스님들에게 공양 올리는 날로 정했다. 담마와나선원 공양간에서 본 것이다.

담마와나선원 공양간이 있다. 스님에게 점심공양양을 올리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한 단체카톡방을 말한다. 카톡방 명칭은 담마와나 공덕회이다. 십여명 된다. 어느 남자회원이 공양간이라고 한 것에서 담마와나선원 공양간이라고 이름 붙여 본 것이다.

공양간에서는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점심공양과 관련하여 일별로 조를 짜고 먹을 것을 챙기는 것 등을 말한다. 생생한 삶의 현장을 보는 것 같다.

공양간에서 이런 이야기를 보았다. 자신이 당번일 때 스님에게 공양 올리는데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이다. 스님이 밥상을 받을 때 한마디 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큰 지혜가 될 것이다. 기꺼이 공양에 참여하는 이유라고 본다.

오늘 테라와다 붓다의 날 행사에는 테라와다 스님 네 명이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공양간 사람들은 스님들을 위해 공양 올릴 것이다.

보름달을 보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것 같다. 하늘에는 커다랗게 떴지만 카메라에는 작게 잡힌다.


달이 차면 그 보름달에
사람들이 합장하듯이,
세상 사람들은 고따마께
예배하고 공경합니다.”(M98)


옛날부터 보름달을 보면 소원을 빌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합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외도들도 부처님을 보면 합장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부처님의 원만한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충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름달은 마음을 충만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보름날에 행사가 많다. 포살도 보름날에 한다. 수행승들은 보름날 포살일에 빠띠목카를 외운다. 일반신도들은 이날 하루 만큼은 출가수행승처럼 살고자 한다.

보름달이 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름날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그날이 그날 같은 것이다. 먹고 살기에 바빠서 일수도 있고 즐기기에 바빠서 일수도 있다. 부처님은 이런 삶에 대해서 다움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싸카여, 어떠한 것이 소치기의 포살입니까? 비싸카여, 예를 들어, 소치기가 저녁 무렵 주인에게 소를 돌려주면서오늘 소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물을 마셨는데, 내일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물을 마실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비싸카여,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은나는 오늘 이러저러한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었다. 나는 내일 이러저러한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그는 탐욕에 의해서 탐착에 가득 찬 마음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비싸카여, 소치기의 포살은 이와 같습니다. 비싸카여, 이와 같이 소치기의 포살에는 커다란 과보, 커다란 광명, 커다란 충만이 없습니다.”(A3.70)


부처님은 소치기의 포살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소치기도 포살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치기의 포살은 남의 소를 세는 것을 말한다. 인생을 주인으로 살지 않고 고용인으로 사는 사람의 삶을 소치기의 포살로 보는 것이다.

소치기는 소의 숫자만 잘 헤아리면 된다. 소의 숫자만 맞으면 하루일과가 끝난다. 또한 소치기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사는 먹는 것이다. 어제도 먹고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을 것이다. 소치기는 먹는 것이 낙이다. 일반사람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먹는 것을 즐긴다는 것은 오욕락의 삶을 의미한다. 욕망대로 사는 것이다. 탐욕으로 살게 되면 성냄으로 살게 되고 결국 어리석게 살게 된다. 이렇게 탐욕으로 사는 사람에게 소치기의 포살이라고 했다.

소치기의 포살에는 과보가 없다고 했다. 먹는 것을 즐겼을 때 공덕이 없음을 말한다. 오욕락을 즐기는 삶을 살았을 때 선업공덕에 대한 과보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보름달처럼 가슴 충만한 삶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보름달은 가슴 설레이게 한다. 그것도 쟁반처럼 둥그런 달을 보면 넉넉해지고 충만해진다. 사월보름날도 가슴 충만한 날이다. 부처님이 탄생한 날이고, 정각을 이룬 날이고, 열반에 든 날이니 충만하지 않을 수 없다.


2021-05-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