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떠나는 여행

상처의 노예가 되어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1. 5. 29. 06:41
상처의 노예가 되어서

대인관계가 서툴다. 어제도 그랬다. 어려운 부탁인 것 같았는데 결국 거절하는 꼴이 되었다. "흔쾌히 받아 주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 새벽이다. 그 사람은 상처 받은 것일까? 문자라도 해 주어야 겠다.

사람을 많이 만나 보지 못했다. 만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온라인 사람들도 있지만 꿈속의 사람들 같다. 가상공간에서 만남은 가상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꿈깨는 것처럼 허망하게 스러지는 것 같다.

현실공간이든 가상공간이든 접촉이 있기 마련이다. 접촉은 느낌을 수반한다. 대개 세 가지 중에 하나일 것이다. 좋거나, 싫거나,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을 말한다. 이를 한자어로 낙수, 고수, 불고불락수라고 말한다. 접촉을 하다보면 이 세 가지 중에 하나에 걸리게 되어 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이미지일까? 한눈에 사람을 알 수 있다. 한시간 같이 있었다면 나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 오프라인 만남에서 그렇다.

눈빛, 얼굴빛, 표정은 숨길 수 없다. 오프라인에서 만나 이야기를 해 보면 알 수 있다. 그 사람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것도 오래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아야 안다. 그럼에도 한번 보고 판단하려는 것 같다. 한번 듣고 판단하고, 한번 읽어 보고 판단하려는 것 같다. 나는 그사람에게 어떤 이미지일까?

좀더 대범해질 필요 있다. 설령 나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 상황을 상기하거나, 그 말을 곱씹거나, 그 글의 의미를 헤아려 보려 하기 보다는 "그럴수도 있지."라며 넘어가야 한다.

한마디 말에 상처 받는다. 한줄의 글에 노심초사한다. 심지어 그 사람의 침묵에도 섭섭하게 생각한다. 하물며 나를 비난 하는 사람에게 말해서 무엇하랴?

비난 받을 때 힘들다. 모욕을 당했다고 느껴 졌을 때 참기 함들다. 그 상황을 곱씹는다. 이런 불편과 불쾌는 꽤 오래 간다. 그 사람으로 부터 말 또는 글로 상처 받았을 때 그 불편하고 불쾌한 마음을 바로 놓아 버린다면 그는 성자의 흐름에 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내가 있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마음 속에 담아 둔다. 그리고 곱씹는다. 불편과 불쾌를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불편과 불쾌가 하루 갈지 모른다. 하루밤 자고 나면 깨끗이 잊어 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이라면 3-4일 갈 것이다.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생 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상처 받았던 것이 무의식의 영역에 저장되어 있어서 조건만 맞으면 발현되는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상처받는다.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를 말한다. 육체적 상처는 때 되면 아물지만 정신적 상처는 오래 간다.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겪었다면 평생 갈 것이다. 크고 작은 상처가 무의식의 영역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지 튀어 나온다. 이건 내 모습이 아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순 없다. 상처를 치유 해야 한다. 상처를 상처로 인식하는 순간 더 이상 상처라고 볼 수 없다. 무의식을 의식화 했을 때 점점 자신의 모습과 가까워진다. 자신이 자기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완성이다.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이 나이 먹도록 남에게 상처주는 행위가 없었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때 당시에는 정당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대가 그렇게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그사람에게는 상처가 된다. 나는 가해자가 되고 그 사람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살다보면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살면 살수록, 오래 살수록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나중에 남는 것은 상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상처로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할까?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털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과거 상처를 소환하여 모두 털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상처를 꽉 움켜 쥐고 있는 이상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나 상처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 가야 할까? "내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벗어날 수 없다. 원망은 원망으로 풀어지지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을 내려 놓아야 한다. 무상에 대한 지각을 해야 한다.

"Na hi verena verāni,
sammantīdha kudācanaṃ;
Averena ca sammanti,
esadhammo sanantano.”

“결코 이 세상에서 원한으로
원한은 풀리지 않는다.
원한의 여읨으로 그치나니
이것은 오래된 진리이다.”(Dhp.5)

2021-05-2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