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왜(倭)를 한반도 ‘예’라고 부르면 어떨까?
고향마을에 가면 거대한 고분이 있다. 길이가 무려 50미터가 된다. 고분의 형태를 보면 봉우리가 두 개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장고봉’이라고 했다고 한다.
마치 산처럼 생긴 거대한 고분이 고향마을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예전에는 이런 고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작은 동산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고분이 발굴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매년 고향에 가면
고향마을에 있는 고분에 대하여 함평 예덕리 고분군이라고 한다. 길이가 50미터나 되는 장고형 구분을 ‘신덕고분’이라고 한다. 신덕고분 바로 아래에는 긴 사다리꼴의 고분이 여러 개 있다. 매년 한번 고향에 가면 둘러보는 곳이다.
고향마을에 왜 이렇게 거대한 고분군이 있을까? 국사책에도 보이지 않는다. 1990년대 이전에는 그 존재 자체도 몰랐었다. 유년시절 고향에 살았지만 존재 자체를 몰랐었다. 그러다가 삼십년 전부터 주목받고 있다. 대체 이 땅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신덕고분 안내판을 읽어 보았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43호로 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신덕고분은 길게 뻗은 자연구릉의 정상부에 장측이 서쪽으로 15도가량 치우쳐 축조되었다. 고분의 형태는 한쪽이 네모지고 다른 쪽은 둥근 전방후원형이다. 규모는 전체길이 51m에 원형부 직경 30m, 방형부 25m, 연결부 19m이며, 높이는 자락에서 원형부 5m, 방형부 4m, 연결부 3.15m이다.”
고분의 형상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말은 ‘전방후원형(前方後圓型)’이라는 말이다. 한쪽은 원형이고 또 한쪽은 네모형이라는 말이다. 전방후원형 고분은 영산강 일대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것이다.
고향마을에 왜 전방후원형이 있을까? 재작년 2019년 함평 고향에 갔었을 때 블로그에 전방후원형고분에 대한 글을 올렸다. 가장 큰 관심사는 무덤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다.
무덤의 주인은 누구일까?
거대고분의 주인은 누구일까? 여러가지 설이 있다. 한국인 설도 있고 일본인 설도 있고 마한의 망명객이라는 설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03년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어떤 학자는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한반도에서 주구묘를 썼던 전남지방의 마한세력 중 일부가 왜로 이주했다. 그런데 왜로 넘어간 마한 이주민의 후예들이 다시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에 걸쳐 원래의 고향인 영산강 유역으로 돌아온다. 이 무덤은 그때 쓰여진 것이 아닐까.” ([한국사 미스터리](13)‘장고형 고분’(下), 경향신문 2003-07-28)라고 써 놓았다.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믿기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부정하고 싶은 말이기도 한다. 전혀 몰랐던 이야기이도 하다. 그러나 무덤이 진실을 말해 준다.
무덤은 마치 타임캡슐 같다. 신덕고분도 마치 타임캡슐 같다. 한반도에서 볼 수 없는 전방후원형이 그렇고 더구나 도랑과 같은 주구가 있어서 그렇다. 주구와 관련하여 안내표지판에서는 “주변에는 고분의 형태를 따라 웅덩이 모양으로 파낸 도랑(주구)과 분구로 연결되는 8개소의 길(도로)이 확인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덕고분 무덤의 주인은 누구일까? 안내판을 보면 “신덕고분은 우리나라에서 최초 조사된 전방후원형분으로 한일고대문화 교류관계를 밝혀줄 중요한 유적이다.”라고 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덕고분은 1991년 발굴되었다. 함평 예덕리 고분과 관련하여 공중파에서 다큐 방송되기도 했다. 금년의 경우 7월 19일부터 광주국립박물관에서 ‘특별전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비밀의 공간, 숨겨진 열쇠 (https://www.youtube.com/watch?v=qzXxWrBHpI8 )’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도 열린다.
함평 예덕리 고분, 특히 신덕고분의 주인공을 알면 한일고대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무덤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다. 무덤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진다. 그런데 2003년 경향신문에서는 “왜로 넘어간 마한 이주민의 후예들이 다시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에 걸쳐 원래의 고향인 영산강 유역으로 돌아온다.”라고 했다.
경향신문 기사대로라면 신덕고분의 주인공은 ‘왜로 넘어간 마한 이주민의 후예’의무덤이다. 여기서 왜(倭)라는 말이 크게 문제가 된다. 오늘날 일본을 지칭하거나 폄하하는 왜와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과연 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왜(倭)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고향마을의 거대고분을 보고서 무덤의 주인은 누구인지 궁금했다. 또 1,500년전에 이 땅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궁금했다. 그러다가 유튜브를 보다가 흥미로운 영상을 발견했다. EBS에서 제작된 3부작 ‘잃어버린 역사, 한반도의 왜(倭)’가 바로 그것이다.
EBS에서 제작된 영상물은 1999년 8.15특집으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이다. 화질은 좋지 않다. 그러나 평소 궁금했던 것이 한번에 풀리는 것 같다. 이제까지 몰랐던 것을 알았고, 이제까지 숨기고 싶어 했던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역사책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고 덮어 두고자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큐영상은 식민사관에 따른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뒤집고 있다. 그리고 왜의 흔적을 따라가 보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왜는 일본이 아닌 한반도에 있었던 정치세력이었다는 것이다. 나주 영산강 일대의 옹관묘 세력을 통해 고증한 것이다. 세 편 다큐 인터넷주소는 다음과 같다.
1부 왜(倭)는 한반도에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lhrWJRJUvs )
2부 왜(倭), 바다를 건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UCUEDKS2oA&t=246s )
3부 왜(倭), 신대륙을 개척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rUCUEDKS2oA&t=246s )
세 편의 영상물을 녹취하면서 보았다. 너무나도 새로운 것이고 너무나도 충격적인 것이다. 과연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교과서에서도 나오지 않은 이야기를 공영방송에서 8.15특집으로 22년전에 방영한 것이다.
1부는 영상강 유역 옹관묘세력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영상의 시작은 "옹관을 만든 사람들, 그들은 조상을 땅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옹관을 묻은 땅 거기엔 그들의 영토 왜(倭)가 있었다.”라고 시작된다.
영상은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주 옹관묘 세력이 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가야도 왜의 범주로 본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 사료에 근거한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5세기까지 신라와 경계를 하던 지역을 왜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중국 삼국지 위지 한서에 따르면 “독로국은 왜와 경계가 접해 있다.”라고 했다. 후한서 동이열전에 따르면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접(接)이나 계(界)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 바다의 경우 사용하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료에 따르면 왜는 바다 건너 일본에 있는 왜가 아니다. 다큐 영상에서는 “그동안 우리는 고정관념 때문에 왜를 일본열도라고 생각해 왔고 따라서 한반도 안에 왜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6세기 이전 왜는 한반도 땅에 있었다.”라고 했다.
다큐영상에서는 무엇일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녹취해 놓은 것을 보면 “고대 영산강 일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키며 문명을 키워 갔던 옹관묘 세력, 그들은 바로 한반도 땅의 왜였다.”라고 했다.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나주를 중심으로 한 영산강 유역의 옹관묘세력을 왜로 본 것이다. 이는 역사적 사료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다면 영산강 유역의 옹관묘 세력만 왜라고 불렀을까? 놀랍게도 가야도 왜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는 414년 광대토대왕 비문에 나와 있다.
비문에 따르면 광개토대왕은 399년 5만대군을 거느리고 신라를 괴롭히는 왜를 무찔렀다고 한다. 서기 400년경에 한반도에 왜가 있었던 것이다. 바다 건너온 왜를 말할까? 당시 일본에는 그럴 만한 세력이 없었다고 한다. 고대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이어서 배도 없었고 군사력도 없었음을 말한다. 다만 철기로 무장한 가야세력은 가능했다. 그렇다면 나주 왜와 가야 왜는 어떤 관계였을까?
왜라는 말은 중국사서에 처음 등장한다. 중국사서에 따르면 왜라는 말은 관심밖의 소수민족을 말한다. 중국사서에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국명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아직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세력에 대해서 왜라고 한 것이다. 한마디로 한반도 남부에 사는 사람들을 통틀어 왜라고 한 것이다.
고대중국에서는 오랑캐를 호칭하는 말이 있다. 동이, 서융, 남만, 북적과 같은 말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동쪽에 있는 오랑캐이다. 동쪽에 사는 사람들을 통틀어 동이족으로 부르는 것이다. 왜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한반도 남쪽에 왜가 있었다고 한다. 왜라는 말은 일본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역사적 사료에 등장하는 것이다. 바다 건너 왜가 아니라 한반도 남부에 사는 사람들을 통틀어 왜라고 칭한 것이다. 마치 동쪽에 사는 오랑캐를 통틀어 동이족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일본사람을 왜(倭)라고 하는데
일본사람을 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이 7세기 말 고대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에는 고유명사였다고 한다. 고대국가가 성립되고 나서부터는 일본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그때부터 왜라는 말은 일반명사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고대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의 왜는 이후의 왜와 같지 않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한반도 남부에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던 세력이 일본에 건너가 살게 된 것이 일본 왜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나주를 중심으로 한 영산강 유역의 옹관묘 세력들이 이주하여 일본 왜가 시작된 것이다.
다큐에 따르면 나주를 중심으로 한 옹관묘 세력은 마한이 아니다. 역사서에서는 3세기까지 마한이 등장하지만 이후에는 나오지 않는다.
옹관묘 세력은 4세기 부터 5세기 말까지 존속했다. 5세기 이후 6세기가 되면 거대 고분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는 백제에 완전히 복속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백제 왕보다 더 큰 고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백제에서 밀려난 옹관묘 세력은 어디로 간 것일까? 오래 전부터 일본 큐슈 지방과 해상으로 교류해 왔기 때문에 일본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가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 진출에 대하여 다큐에서는 “5세기 말 신라에 의해 멸망된 가야지방의 왜세력이 일본열도 진출한다. 백제남하로 영산강 유역의 왜 세력이 이주하고 그 이후 통일전쟁에서 패망한 백제와 고구려 유민이 그 뒤를 잇는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왜라는 말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놀랍게도 다큐에서는 한반도 서남해안과 남부해안에 사는 사람들을 통칭해서 왜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나주를 중심으로 한 옹관묘 세력과 경상도의 가야세력을 의미한다. 어느 정도 세력을 형성했을까? 이는 삼국사기를 근거로 하여 “신라의 왕이 화친을 구하고 광개토대왕이 몸소 평정에 나서야 했던 강력한 세력”이라고 다큐에서 말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왜는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는 한반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본에도 왜가 있었다. 일본에서 야마토 정권이 그것이다. 호족연합으로 구성되어 있는 야마토정권을 왜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야마토정권을 처음부터 왜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7세기 후반에 처음으로 야마토정권과의 관계를 왜로 표현한 것이다.
일본에서 고대국가가 성립된 것은 7세기 후반의 일이다. 이전에는 호족연합에 불과한 야마토정권이 있었다. 우리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고대국가로 성장한 시기와 비교하면 대단히 늦은 것이다. 아마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에 의해서 일본의 고대국가가 7세기 말에 성립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고대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의 일본에서는 한반도를 지배할 능력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임나일본부설이 허구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이라는 국명이 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에서 고대국가가 성립된 7세기 이후부터이다. 이전에는 호족연합인 야마토정권이 있었다. 그런데 고대국가가 성립되고 나서 이전의 야마토정권을 왜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반도의 왜와 동일한 것임을 말한다.
한반도 남부에도 왜가 있었다. 중국이나 한국사서에는 3세기에서 5세기 말까지 존재한 나주의 옹관묘세력과 가야의 서남해안에 살던 사람들을 통틀어 왜라고 한 것이다. 단지 왜라고 이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에도 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이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동이족이 동쪽 오랑캐를 지칭하는 말이듯이, 주변 사람들에게 왜라고 통틀어 지칭한 것이다.
한반도 왜와 일본 왜는 어떻게 다른가?
왜라는 말은 매우 민감하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을 폄하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래서 ‘토왜’라는 말도 사용한다. ‘토착왜구’라는 뜻도 있고 ‘왜구를 박멸한다’는 뜻도 있다. 그러나 왜라는 말은 단지 이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큐에서는 한반도 남쪽에 살았던 사람들을 통틀어서 왜라고 했다. 이를 오늘날민족적 개념으로 본다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는 명칭에 불과한 것이다. 고구려나 백제, 신라에 편입되기 이전 사람들을 통틀어서 왜라고 이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일본에도 왜라는 명칭이 있다. 이는 오늘날 일본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서 왜가 아니다. 일본에서 고대국가가 성립되기 이전 야마토정권을 왜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야마토정권은 왜와 동일시되었는데 이는 고유명사로서 왜를 말한다.
한반도의 왜외 일본의 왜는 같은 사람들일까? 같은 사람들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일본에서 7세기 고대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에 한반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건너갔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틀어 왜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신덕고분의 주인공은 누구?
매년 고향에 가면 거대한 고분을 본다. 고분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천오백년전 이 땅에서는 누가 살았을까? 이런 의문을 해 본다. 그런데 다큐에서는 왜라고 했다. 한반도에서 3세기에서 5세기 말까지 살았던 사람들을 통틀어 왜라고 불렀던 것이다. 삼국에 속하지 않은 서남해안에 살았던 사람들을 왜라고 불렀던 것이다.
한반도 서남해안에 살았던 옹관묘 세력과 가야를 왜라고 불렀다.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일본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단지 이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삼국 이외 주변 사람들을 통틀어 왜라고 부른 것이다.
고향마을 거대고분은 왜인의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오늘날 말하는 일본사람의개념이 아니다. 고대한반도에서는 민족개념이 없었다. 다만 삶은 있었을 것이다. 일본 큐슈 지방과 빈번한 왕래도 있었을 것이다. 이를 사서에서 왜라는 말로 표기한 것이다.
왜라는 말이 부담스러우면 ‘예’라고 하면 어떨까? 왜와 예는 어감이 다르다. 왜와 예는 단지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3세기에서 5세기 말까지 일본과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큐 3부서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 코멘트 하고 있다.
“고대사의 한부분 한반도 왜의 역사는 지금 서서히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옹관과 함께 영원히 묻혀 있을 것 같았던 잃어버린 역사 한반도의 왜, 일찍이 고대도시를 건설했으며 백제와 신라왕이 화친을 구하고 광개토대왕이 몸소 평정에 나서야 했던 강력한 세력, 왜는 한반도에 있었다. 이제 우리 역사에 새로 써야 할 한반도의 왜, 영산강 일대 거대고분의 비밀이 완전히 풀리는 날, 잠자던 역사 왜가 살아나는 것이다.”
한국고대사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많다. 삼국시대 역사는 잘 알고 있지만 거대고분이 있는 영산강 지역의 옹관묘 세력은 잘 모르고 있다. 이 세력은 마한도 아니다. 북방유목계통도 아니다.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를 지닌 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산강 유역의 옹관묘세력은 고대국가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여러 소국으로 존재했었다. 고향마을에서 보는 거대한 신덕고분도 함평을 중심으로 한 소국의 왕의 무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덤형태가 일본 고분시대의 전방후원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출토품은 백제시대의 것이다.
신덕고분의 주인공은 왜인임에 분명하다. 어떤 왜인인가? 일본으로 건너간 한반도 왜인이 다시 한반도로 되돌아온 왜인일 것이라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나주를 중심으로 한 영산강 유역의 옹관묘 세력과 일본 야마토정권의 호족세력과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었음을 말한다.
야마토정권의 호족세력은 도래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건너가고 되돌아오는 등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통틀어 왜라고 하는데 이는 이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민족적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용인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반도 왜(倭)를 한반도 ‘예’라고 부르면 어떨까?
금강경에 “A는 A가 아니라 그 이름이 A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든지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왜면 어떻고 예면 어떤가? 오늘날 21세기 민족적 개념으로 본다면 다큐영상을 수용할 수 없다. 그러나 명칭을 떼 버리고 본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것이 된다.
왜라는 말이 부담스러우면 ‘예’라고 하면 어떨까? 왜와 예는 어감이 다르다. 왜와 예는 단지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3세기에서 5세기 말까지 일본과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에 대하여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면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제거하고 생활의 측면으로 본다면 고대 한반도와 일본에서 왕래하며 지냈던 것은 자연스런 일이 되어 버린다. 오늘날 왜라는 명칭은 이데올로기의 산물이 되었다. 한반도 왜(倭)를 한반도 ‘예’라고 부르면 어떨까? 고향마을 거대고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2021-07-1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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