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독거노인이 경로당에 가지 않는 이유는

담마다사 이병욱 2021. 8. 9. 08:50

독거노인이 경로당에 가지 않는 이유는


어제 뉴스채널에서 잠시 본 것이 있다. 어느 독거노인이 말 한 것이 강하게 남았다. 할머니는 경로당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왜 가지 않는가? 할머니는 경로당에 가면 자식자랑하고 손주자랑만 하는 사람 있어서...”라고 했다.

종종 TV에서 농촌 마을회관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회관에서 밥 먹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점심 때 하루 한끼는 회관에서 먹는 것 같았다. 갈 곳 없고 할 일 없는 노인들이 회관에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지어먹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소외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며칠전 뉴스에서 들은 것이 있다. 현재 도쿄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다. 일본 지하철에서 살인사건이 났는데 놀랍게도 행복해 보이는 여인의 얼굴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증오범죄라고 해야 할까? 홀로 고독하게 사는 남자의 눈에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너무 싫었던 것 같다.

에스엔에스스를 보면 대부분 자신의 자랑에 대한 것이다. 멋진 사진을 올려 놓고 설명하는 식이다. 여행간 것도 많다. 먹방을 따라올 수 없다. 페이스북에서는 한상 푸짐하게 차려 놓은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치 예술품 같다. 나도 종종 예술작품 같은 먹방을 올려 놓고 싶은 강한 충동을 받는다.

에스엔에스서는 감각을 자극하는 것으로 가득하다. 대개 사진으로 말한다. 사진 한장이 모든 것을 말해 주기 때문에 말이 필요없다. 그래서일까 아무 설명없이 사진 한장만 딸랑 올려 놓은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대체 어짜자는 것일까? 엄밀히 말하면 모두 자랑이다. 한상 가득 차려 놓은 것을 보면 때로 약올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간다.

페이스북에서 질문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써야 한다. 그럼에도 감각을 자극하는 것으로 가득하다면 생각과 거리가 먼 것이다. 설령 생각에 대해 쓴 것이라 해도 가족이야기만 가득하다면 공감 얻기 힘들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남편 없는 사람이 싫어할 것이다. 반대로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아내 없는 사람도 싫어할 것이다. 자녀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보인다. 자녀가 학교에 들어간 이야기, 취업한 이야기, 결혼한 이야기 등을 말한다. 자녀가 있기는 하지만 잘 풀리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 보았을 때 시기와 질투를 유발할지 모른다. 손주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진을 올려 놓고 손주사랑 이야기를 했을 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자랑질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도 볼 수 있다. 마치 끼리끼리 모여 사는 것 같다. 시인은 시인들끼리, 작가는 작가들끼리, 의사는 의사들끼리, 교수는 교수들끼리 어울리는 것 같다. 상류층에 사는 것처럼 우아하게 보였을 때 이를 보는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했을 때 낄 여지는 없다. 거기에 끼지 못했다면 불편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에스엔에스에서는 자랑으로 시작해서 자랑으로 끝나는 것 같다. 에스앤에스는 본래 그런 것인지 모른다. 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대상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안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랑질 하기가 쉽지 않다. 단체카톡방을 보면 알 수 있다. 학교 동기카톡방에서 자녀 자랑하지 않는다. 당연히 손주 사진도 올라오지 않는다. 심지어 여행 갔다 온 것을 올리면 돈 내라고 한다. 자랑질하려면 돈내고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페이스북에서는 걸림이 없다. 남편이야기, 아내이야기, 자녀이야기, 손주이야기, 여행이야기, 식도락이야기 등 대부분 자랑질이다.

페이스북을 보면 온통 행복한 사람들만 있는 것 같다. 자랑질 하는 것을 보면 불행은 없는 것 같다. 감각적인 것으로 가득했을 때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글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는 무뇌로 보이기도 한다.

감각적인 것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써야 한다. 자랑질하기 보다는 하나라도 건질만한 글을 써야 한다. 그럼에도 자랑질로 가득하다면 시기와 질투를 유발할 것이다. 마치 뉴스에서 본 독거노인처럼. 그렇다면 나는 어떠 한가?

글이 길다고 말한다. 글이 길어서 읽다가 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런 불편이 있어서일까 패스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친구맺기를 끊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안면 있는 사람들은 제발 짧게 쓰라고 말한다.

글을 짧게 쓰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글을 기승전결식으로 쓰다 보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확실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공감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이다. 하나라도 건질 만한 글을 쓰기 위함이다.

글을 쓸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가족이야기는 쓰지 않는다. 아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을 알았을 때 가족이야기를 절대 쓰지 말라고 했다. 10여년전에 한 약속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둘째, 영원히 남는 글을 쓰고자 한다. 마치 말한 것처럼 한번 뱉어 버리고 마는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에스엔에스에서는 한번 넘어가면 끝이다.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허공속에 사라지는 듯한 글을 쓰지 않는다. 한번 써 놓은 글은 모두 블로그에 저장된다. 때가 되면 책으로 나온다. 기승전결식으로 완성된 글은 나중에 책이 된다.

셋째, 공감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긴 글을 읽고서 시간낭비했다는 소리 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무언가 하나라도 건져야 한다. 경전 문구만한 것이 없다. 경전과 주석을 근거로 글쓰기 하는 이유가 된다.

사람들은 겉보기에 모두 행복해 보인다. 에스엔에스서도 행복한 사람들만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모두 말 못할 고민 한가지는 있을 것이다. 나의 행위가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단지 행복해 보이는 것이 싫어서 살인 나는 세상이다. 자식자랑과 손주자랑 때문에 경로당에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나의 사소한 행위에서 두려움을 보아야 한다.


2021-08-0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