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열사의 기일에
유튜브에서 정목스님의 자애경 낭송을 들었다. 정목스님은 목소리가 좋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 2005년 당시 정목스님이 진행하는 불교방송 마음으로 듣는 음악을 매일 들었다. 청취자 사연도 보냈는데 어느 날 글을 낭송하는 것을 듣고서 감격했다.
정목스님은 스님의 유튜브 채널 유나방송에서 자애경을 낭송했다. 분명하고 뚜렷한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에 팍팍 꼽히게 만든다. 그런데 자애경 첫번째 낭송에서 “잘난 체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했다. 약간 생소했다. 이런 말을 들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숫따니빠따에 실려 있는 ‘멧따숫따’(Sn.1.8)를 열어 보았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에서 번역한 것이다. 잘난 체하는 것과 관련된 것을 보니 “교만하지 말지이다.”(Stn.143)라고 번역되어 있다.
잘난 체하는 것과 교만한 것은 사실상 같은 말이다. 그럼에도 달리 보이는 것은 왜 그럴까? 그것은 전자가 훨씬 더 강렬한 말이기 때문이다. 두 말 모두 자만 또는 교만, 아만을 뜻하는 마나(mana)를 번역한 것이다.
부처님은 잘난 체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자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는 앙굿따라니까야 ‘핫타까알라바까의 경’(A8.24)에서 리더의 덕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은 리더가 되기 위한 여덟 가지 조건을 말했다. 그것은 1)믿음이 있는 것, 2)계행을 지키는 것, 3)부끄러움을 아는 것, 4)창피함을 아는 것, 5)많이 배운 것, 6)관대한 것, 7)지혜를 갖춘 것, 8)겸손한 것을 말한다. 이중에서 마지막 겸손한 것을 아는 것이 아마 잘난 체하지 않는 것에 해당될 것이다.
누가 잘난 체하는가? 세 부류의 자만이 있다. 태생적 자만, 배운자의 자만, 부자의 자만을 말한다. 이는 다름 아닌 우월적 자만이다.
태생적 자만은 부처님 당시 사성계급의 정점에 있었던 바라문계급에 대한 것이다. 오늘날 성직자들도 이에 해당된다. 당연히 스님들도 해당된다. 은연중에 “내가 스님인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태생적 자만이 된다.
배운자의 자만은 학자에게서 볼 수 있다. 또한 가르치는 자에게서 볼 수 있다. 지식전수자로서 교단에 섰을 때 “내가 교수인데.”또는 “내가 선생인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배운자의 자만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배운자의 자만은 범위가 넓다. 사회에서 성공하여 일가견을 이룬 사람에게서도 배운자의 자만을 볼 수 있다.
부자의 자만은 가난한 자에 대한 자만이다. 가난한 자를 경멸하기 멸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게으르고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 나는 어디에 해당될까?
지식인은 자만을 가지기 쉽다. 무언가 하나라도 아는 것이 있다면 아는 체할 것이다. 이는 잘난 체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장점을 돋보이려고 하는 것도 잘난 체하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일종의 잘난 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식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지식인의 이미지는 이론만 있을 뿐 실천이 따르지 않은 사람으로 하나의 상이 형성되어 있다. 많이 배운 자나 지위가 있는 자가 권위에 의존하여 특권만 누리려 할 뿐 낮은 자세로 실천하는 모습을 본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편견일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지난 봄 광주 5.18민중항쟁과 관련하여 몇 권의 책을 읽고서 고착화된 듯하다.
광주항쟁 당시 지식인들은 숨었다. 이는 광주항쟁 관련 소설 ‘광주 아리랑’과 기록물 ‘녹두서점의 오월’, 그리고 인물 이야기 ‘윤상원 평전’을 통해서 파악되었다. 광주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지식인들이 아니라 민중들이었다. 조직화 되지 않은 자발적 참여자에 의해서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김영철 열사일 것이다.
광주와 관련하여 몇 권의 책을 읽고서 민중항쟁 주역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죽은 사람들도 있다. 먼저 죽은 사람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마침 고향 갈 일이 있어서 7월초에 5.18묘역을 참배했다. 소설 ‘광주 아리랑’에서 소설속의 주인공 박병규 열사 묘와 김동수 열사 묘를 참배했고, 윤상원평전의 윤상원 열사 묘를 참배했다. 그리고 김영철 열사 묘를 참배했다.
김영철 열사는 책을 읽고서 처음 알았다. 이전에는 이름을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소설 ‘광주 아리랑’에 열사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었다. 김상윤 선생이 보내준 ‘녹두서점의 오월’에도 열사의 이름이 나왔다. 김상윤 선생의 친구라고 했다. 김영철 열사 이름은 김상집 선생이 편찬한‘윤상원 평전’에도 등장했다. “대체 김영철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지난 7월초 담양에 사는 김상윤 선생을 찾아 뵈었다. 광주항쟁과 관련하여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다. 선생과 선생의 가족이 공동저자로 되어 있는 ‘녹두서점의 오월’을 읽고서 꼭 한번 찾아 뵙고 싶었다.
김상윤 선생에 따르면 김영철 열사는 자신의 친구라고 했다. 그런데 운동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운동권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마지막날 도청에서 결사항전에 참여했을까? 그것도 처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참여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식인에 대한 태도는 바뀌어져야 한다.
지식인이라 하여 모두 비겁하게 숨지 않았다.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참여한 지식인들도 있었음을 말한다. 이는 김영철 열사를 비롯하여 윤상원 열사 등이 해당된다. 그런데 김영철 열사는 운동권 출신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야학 교장을 하는 등 빈민운동을 하긴 했지만 민주화 운동 경력은 없었던 것이다.
광주항쟁당시 재야운동권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김상윤 선생은 ‘녹두서점의 오월’ 에필로그에서 “과거에 통일운동을 했거나 진보운동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서면 오히려 많은 사람이 빨갱이로 몰릴 수 있다며 현장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운동권의 일선에 있던 사람들도 모든 죄를 운동권에 뒤집어씌울 것이란 이유로 참여하는 것을 꺼렸다.”(338쪽)라고 했다.
광주민중항쟁 당시 과거 민주화운동이나 통일운동 했던 사람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숨어 버렸다. 이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조직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직이 가동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전남대 등 시민들에게 지지를 받았던 학생지도부도 잠적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광주민중항쟁은 자발적으로 진행되었다.
광주항쟁은 전혀 생각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전면에 나섰다. 모두 포기하고 있을 때 트럭을 타고 무장하고서 나타난 사람들은 지식인이나 운동권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 가장 하층민중으로서 천대받은 사람들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조직화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김상윤 선생은 “책임져야 할 학생 지도부와 운동권 일선이 사라진 공백을 다행히 운동권 이선에 있던 사람들과 밑바닥 사람들이 메워 주었다.”(339쪽)라고 했다.
김영철 열사는 마지막까지 총을 들고 도청에서 결사항전했다. 처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대부분 재야 일선운동권이 잠적한 것은 아마도 처자식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스무 살 전후 청년들이 시민군이 되어서 결사항전을 한 것도 처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처자식이 있는 비운동권의 지식인도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김상윤 선생은 자신의 친구 김영철 열사에 대하여 “운동권도 잠적한 마당에 비운동권이 나선 것입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페이스북에서 김영철 열사 기일이 8.15광복절 날인 것을 알았다. 이는 김영철 열사의 아들이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하루 전에 어떤 페이스북친구가 김영철 열사의 기일이 다가왔음을 알렸다. 이에 7월초에 김영철 열사 묘를 참배한 바 있다고 댓글을 달았다. 그랬더니 김영철 열사 아들이 감사의 마음을 댓글로 달아 주었다.
김영철 열사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설을 통해서 기록물을 통해서 평전을 통해서 알았다. 김영철 열사가 돋보이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실천했다는 것이다. 지식인들은 이론만 앞설 뿐 실천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깬 것이다. 또한 김영철 열사는 비운동권 출신으로서 마지막날 도청에서 결사항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처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항전한 것이다. 이런 점을 높이 평가했다.
김영철열사는 도청에서 살아 남았다. 그러나 상무대 영창에서 자살시도를 했다. 이런 트라우마가 있어서일까 이후 정신적 문제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일로 인하여 일찍 세상을 떠났다.
지난 7월초 광주 5.18묘역을 참배했다. 수많은 열사들의 묘가 있었지만 다 참배할 수 없었다. 소설속의 주인공, 기록물에 나온 사람, 그리고 평전에 자주 나오는 사람을 참배했다. 박병규, 김동수, 윤상원, 김영철 열사의 묘를 말한다. 특히 김영철 열사의 묘에서 오래 보냈다.
사람들은 진정한 용기를 말한다. 진정한 용기는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불의에 항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이 배운 자일수록 많이 가진 자일수록 지위가 높은 자일수록 몸을 사린다. 특히 처자식이 있는 경우는 더욱더 사린다.
사람의 진가는 위기에서 빛난다. 위기에 처해 보아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한몸 기꺼이 던질 수 있다면 진정한 용기를 가진 자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날 도청에서 결사항전한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김영철 열사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지식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 그럼에도 김영철 열사는 실천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영철 열사와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민주주의의 열매를 따먹고 있다. 광주에서 김영철 열사와 같은 지식인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위대한 대한민국이 되었다.
2021-08-1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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