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내가 잠 못이루는 것은

담마다사 이병욱 2021. 8. 31. 07:54

내가 잠 못이루는 것은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오늘도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새벽에 깨어 잠이 오지 않을 때 스마트폰 자판을 치다 보면 아침 6시가 되기 일쑤이다. 이렇게 하고 나면 하루가 피곤하다. 낮에 비몽사몽간에 보낼 수 있다. 가능하면 새벽글쓰기는 지양한다.

잠은 잠이 와야 잠을 자는 것이다. 잠이 오지 않는데 억지로 청한다고 잠이 오는 것은 아니다. 믿음도 그렇다. 믿겨야 믿는 것이다. 믿기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믿음이 가면 믿지 말라고 해도 믿는다. 깨달음도 그렇지 않을까?

명상 할 때 잘 하려고 하면 잘 안된다. 잘 하려고 하는 마음을 놓아 버렸을 때 잘 된다. 이를 포기의 마음이라 해야 할까? 잠자는 것도 그렇다. 잠자기를 포기했을 때 잠이 올 수 있다. 어떤 마음인가? "잠이 오면 잠을 자지?"라는 포기의 마음이다.

포기한다는 것은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마음에 무언가 붙잡고 있는 것이 있을 때 잠이 오지 않는다. 마음에 욕망이나 분노, 들뜸, 흥분같은 불선한 것이 있을 때 잠못 이루는 밤이 되기 쉽다.

어떤 이는 커피 마시면 잠을 못잔다고 한다. 오전에는 몸을 깨게 하기위해서 마시지만 오후에는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잠 못이룰 걱정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도 있다. 차에도 카페인 성분이 있다는 것이다. 잠 못이루는 것이 커피때문일까?

 


이런 일화가 있다. 한국 사람들이 달라이라마를 친견했을 때 어떤 사람이 당돌하게 "존자님은 깨달았습니까?"라며 물어 보았다고 한다. 달라이라마는 어떻게 답했을까? 놀랍게도 "저는 잠을 잘 자는 사람입니다."라고 말 했다고 한다.

달라이라마는 왜 동문서답했을까? 가만히 따져 보면 동문서답이 아니다. 어쩌면 선문답일지 모른다. 왜 그런가? 본래 번뇌가 많은 사람은 잠 못이루기 쉽다. 마음에 욕망이 가득한 사람이 쉽게 잠을 잘 수 있을까? 분노가 가득한 사람은 분노로 인하여 잠 못이루는 밤이 되기 쉽다. 들뜨거나 흥분되도 잠 못이룬다.

잠을 잘 잔다는 것은 번뇌가 없음을 말한다. 달라이라마가 "저는 잠을 잘 자는 사람입니다."라고 했을 때, 이 말은"저는 번뇌가 없는 사람입니다."로 받아 들여야 한다. 달라이라마는 깨달은 사람인 것이다.

달라이라마 잠을 잘 잔다고 했다. 자신의 경지를 선문답식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초기경전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앙굿따라니까야를 보면 부처님과 알라바까왕자와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왕자는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잘 주무셨습니까?"라며 물었다. 이에 부처님은 "왕자여, 나는 잘 잤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잠을 잘 자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A3.35)라고 답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처님은 번뇌가 없는 사람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왕자는 잠을 잘 이룰 수 없었다. 가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도 가진 것이 많지만 사람도 많이 가졌다. 아내도 많았다. 오늘밤은 어디서 자야할지 고민도 있을것이다. 들뜨고 흥분되고 욕망의 마음이 있다면 잠을 잘 못잘 것이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누군가 자신의 것을 훔쳐 가려 한다거나,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하면 역시 잠을 잘 못잘 것이다.

번뇌가 많으면 잠 못이루는 밤이 되기 쉽다. 사업하는 자가 자금문제로 고민할 때 잠을 잘 자지 못할 것다. 사업하다 보면 사람문제도 발생한다. 인사문제로 골머리를 앓다보면 역시 잠 못이루는 밤이 되기 쉽다. 싸움을 하고 나면 잠못이루는 밤이 되기 쉽다. 부부싸움 했을 때 분노로 잠 못이루는 밤이 되기 쉽다. 에스엔에스에서 논쟁하다가 "그만하시죠."라는 말에 열받아 잠 못이루는 밤이 되기 쉽다.

잠을 잘 못자는 요인은 수없이 많다. 크게보면 욕망과 분노때문이다. 번뇌많은 자가 잠을 잘 못자기 쉽다. 어리석은 자가 잠 못자기 쉽다. 반대로 번뇌가 없다면 잠을 잘 잘 수 있을 것이다. 달라이라마같이, 부처님같이 현명한 사람, 깨달은 사람은 잠을 잘 잘것이다.

내가 잠을 잘 못자는 것은 번뇌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욕망, 분노, 들뜸, 흥분, 후회, 회한, 시기, 질투, 근심, 걱정, 슬픔, 절망 등 온갖 불선법이 있기 때문에 잠 못이루는 것이다. 커피때문이 아니다. 오늘밤은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2021-08-3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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