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내가 맛본 권력의 맛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0. 7. 08:25

내가 맛본 권력의 맛


나에게도 권력이 있었다. 군대 있을 때는 병장권력이 있었고 회사 있을 때는 부서장권력이 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홀로 된 자에게 권력이 있을 수 없다. 자신과의 싸움만 있을 뿐이다.

군대권력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다. 병장이 되면 내무반 내에서는 최고 권력자가 된다. 군 장성 권력이 부럽지 않다. 오죽 했으면 대장 위에 병장이라 했을까?

내무반 권력은 밥 먹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말년 병장이 되면 식당 가기도 귀찮e은 것이다. 갓 들어온 이병에게 밥을 타 오게 하는 것이다. 통제권 밖에 있는 내부반에서 병장은 왕이나 다름없다. 병장은 종종 권력행사를 하기도 한다. 그것은 집합으로 나타난다.

군대 다녀온 사람이라면 집합의 의미에 대해서 잘 안다. 집합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아는 것이다. 동기들끼리 대화하다 "오늘 저녁에 집합있대."라는 말을 들으면 밥이 넘어가지 않을 정도가 된다.

배에 주먹이 들어왔을 때 급소를 맞을 때가 있다. 신음하듯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고꾸라진다. 병장이 되기 전까지는 집합의 공포에서 헤어 나지 못한다.

군대생활이 힘들다고 하지만 집합처럼 힘든 것이 있을까? 집합만 없어도 군대생활은 할 만하다. 이런 사실을 아는 부모는 자식을 군대 보내지 않으려 할 것이다. 자신이 당한 것을 자식도 당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병역을 기피하는 요인 중의 하나는 군대문화에 뿌리깊게 남아 있는 집합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회사에 다니면 누구나 권력자가 된다. 부서장 권력을 말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권력이 생겨난다. 후임이 들어왔을 때도 권력자가 된다. 상하관계는 권력관계나 다름없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든지 볼 수 있다.

직장생활을 20년 했다. 1985년부터 2005년까지 수많은 회사를 전전했다. 직장생활 막판에는 조직 내에서 최고 위치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소기업에서 연구소장을 한 것이다.

연구소장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실무에서는 손을 뗀 상태이다. 의사결정만 잘 하면 된다. 의사결정 하는 것은 다름아닌 권력이다.

권력자가 되면 권력남용이 되기 쉽다. 병장권력이 대표적이다. 한번도 권력을 쥐어 보지 못한 자가 세월이 흘러 최고권력자가 되었을 때 절대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처음 맛보는 권력의 맛이다.

군대에서 쥐꼬리 만한 권력도 권력이다. 한번 권력의 맛을 보면 못잊어 할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맛본 권력의 맛은 평생 간다. 하물며 더 큰 조직에서 권력의 맛은 어떠할까?

고기도 먹어 본 자가 맛을 안다. 권력도 권력을 행사해 본 자가 맛을 안다. 요즘 대선을 앞두고 대권을 거머 쥐기 위한 권력투쟁하는 것을 보면 권력의 맛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왜 대통령이 되려 할까? 권력의 맛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의 맛을 알기에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이다. 이는 세력 싸움으로 나타난다.

권력은 세력에서 나온다. 세력이 있어야 권력자가 될 수 있다. 대권을 거머 쥐려면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는 다름아닌 선거권력이다.

선출권력 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이다. 주어진 권력은 한계가 있다. 임명권자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장 1년 하다 퇴출된 것도 주어진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오너를 대신해서 일을 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잘린 것이다.

임명권력은 내것이 아니다. 임명권자의 것이다. 그러나 선출권력은 자신의 것이다. 임명권자는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지만 선출권력은 표를 준 사람들을 의식한다.

임명권력과 선출권력은 다른 것이다. 고시에 패스한 자가 누리는 권력은 임명권력이다. 마치 병장권력과 같고 부서장권력과 같은 것이다. 진정한 권력은 선출권력에서 나온다.

선출권력이 왜 진정한 권력일까? 그것은 공익추구이기 때문이다. 이는 임명권자로부터 위임받은 권력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임명권력은 자신을 임명해 준 자에게 충성을 다하기 때문에 사익추구형이 되기 쉽다.

요즘 대선판에서 사익추구형 정치인들을 본다. 대개 임명직들이 많다. 고시에 패스한 자가 조직에 오래 몸담고 있다가 대권후보가 되었을 때 사익추구 정치인이 되기 쉽다. 3자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면 보인다.

공익추구형 정치인은 누구일까? 선거를 치루어본 자라면 누구나 공익추구 정치인이 된다. 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텃밭에 깃발을 꼽은 자를 말하지 않는다.

텃밭에서 내리 당선된 자가 있다. 그는 사실상 임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마치 병장권력이나 부서장 권력과 같다. 그래서 권력의 남용이 있을 수 있다. 사익추구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공익추구형이 되는가? 자신의 힘으로 당선되었을 때 공익추구형이 된다. 그것도 험지에서 출마한 경우를 말한다. 한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도전하여 이루어 내었을 때 자연스럽게 공익추구형이 된다.

선거철에 사람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사익추구형인지 공익추구형인지 구별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그가 임명권력인지 선출권력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가 텃밭에서 당선되었는지 험지에서 당선되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면 공익추구형 정치인이 된다. 선출직이면서 험지출마자를 말한다. 반대로 임명직이면서 텃밭출마자는 사익추구형이 되기 쉽다.

사익추구형이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 일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품위나 유지하며 세월이나 보내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 자리가 근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가 멋있어 보여서 그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책보다는 네거티브에 의존한다. 때로 중상모락도 서슴지 않는다.

국민은 어리석은 같으면서도 현명하다. 사익추구형과 공익추구형을 가려내는 안목이 있는 것이다. 민주당 경선을 보면 알 수 있다. 텃밭에서 손쉽게 당선된 자보다 서울과 수도권 험지에서 힘들게 당선된 자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명권력보다는 선출권력을 더 선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야권은 어떠한가? 모두 임명권력이거나 텃밭권력이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여 당선된 사람은 없다. 사익추구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공익추구형이 정권을 잡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사익추구형이 잡으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엠비(MB)짝 나는 것이다.

사익추구형들의 반격이 만만치 않다. 어떻게든 공익추구형을 끌어내리려고 하고 있다. 기득권층이 총동원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이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집단지성의 힘을 믿는다. 정의는 승리할 것이다.

나도 한때 권력자였던 때가 있었다. 병장권력도 있었고 부서장 권력도 있었다. 세월과 임명권자가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나 무지하면 남용된다. 대부분 사적이이익추구형이 되기 쉽다. 하물며 더 큰 권력은 어떠할까?

누구나 권력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도 권력이 된다. 나에게 개발능력이 있다면 기술권력이 된다. 사장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학문에도 권력이 있다. 이는 권위로 나타난다. 문화에는 문화권럭이 있고 예술에는 예술권력이 있다. 각 부문에서 프로페셔널은 모두 권력자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권력자인가? 나홀로 일하는 일인사업자에도 권력이 있을까? 누군가 일감을 준다는 것은 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능력 있는 자는 모두 권력자가 된다. 힘이 있기 때문이다. 힘은 권력이다.

나에게 살아갈 힘이 있는 한 나는 권력자이다. 그런데 권력은 늘 남용되기 쉽다는 것이다. 힘이 절제되지 않으면 망하는 길로 가게 되어 있다. 감각적 욕망이 그렇다.

진정한 권력자는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다. 법구경에서는 "전쟁에서 백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하나의 자신을 이기는 자야말로 참으로 전쟁의 승리자이다.”(Dhp.103)라고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고 했다. 이는 다름아닌 감각적 욕망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자를 말한다.

권력자가 되려면 먼저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래야 정의로운 권력이 된다. 공익추구형 권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시가 있다.


"
정의를 따르다가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면서
이익을 얻는 것보다 낫다.

지혜롭지 못하면서
높은 평판을 얻는 것은
지혜가 있으면서 평판을
얻지 못하는 것보다 못하다.

욕망에서 얻어지는
쾌락보다는
욕망을 벗어나
자기를 단련하는 괴로움이 낫다.

불의에 살 것인가,
정의를 위해 죽을 것인가,
불의에 사는 것보다
정의를 위해 죽는 것이 낫다.”


이 시는 명진스님이 애송하는 시라고 한다. 물어보았더니 고닷따경에 있다고 했다. 찾아 보니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번역된 테라가타에 실려 있었다. 빠알리 원문 번역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
무지한 자가 명예를 얻기도 하고
양식있는 자가 불명예를 얻기도 한다.
양식있는 자가 불명예를 얻는 것이
무지한 자가 명예를 얻는 것보다 낫다.” (Thag.667)

어리석은 자로부터 칭찬이 있고,
양식있는 자로부터 비난이 있는데,
양식있는 자로부터의 비난이
어리석은 자의 칭찬보다 낫다.” (Thag.668)

감각적 욕망에서 생겨나는 즐거움이 있고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괴로움이 있는데,
멀리여읨에서 생겨나는 괴로움이
감각적 욕망에서 생겨나는 즐거움보다 낫다.” (Thag.669)

"
여법하지 못한 삶과
여법한 죽음이 있다.
여법한 죽음이,
여법하지 못한 삶보다 낫다.” (Thag.670)


권력은 조직이나 단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홀로 사는 개인에게도 권력이 있다. 그것은 감각적 욕망에 대한 권력이다. 그가 감각적 욕망에 굴복한다면 패배자가 된다.

감각적 욕망과 싸워 이긴자는 승리자이다. 자신과 싸워 이긴자는 백만대군도 물리칠 수 있다. 자신과 싸워 승리한 자는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는다.

욕망을 통제하는 것에서 나오는 권력의 맛은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의 맛보다 더 달콤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감각적 욕망과 전쟁을 한다. 매일 패배하지만 언젠가 승리할 그날이 있지 않을까?


2021-10-0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