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윌스토어에서 건진 다기(茶器)세트
오늘은 아무것도 안되는 것 같다. 행선도 안되고 좌선도 되지 않는다. 책보는 것도 안된다. 아무래도 몸의 컨디션 때문인 것 같다. 등에 한기가 있는 것을 보니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 전기찜질팩을 등에 대 보아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 이럴 때는 타이레놀이 좋다. 나에게 있어서 타이레놀은 만병통치약과도 같다.
타이레놀을 사서 한알 먹었다. 비는 내리는지 마는지 할 정도로 가느다랗게 오고 있다. 우산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날씨이다. 일단 걸어 보기로 했다. 목적지를 중앙시장으로 잡았다. 시장에 가면 활력 있는 모습에 기분전환이 될 것 같았다.
안양중앙시장 가는 도중에 재활용용품점이 있다. 가는 길에 늘 들르는 곳이다. 살 것이 없어도 둘러본다. 갖가지 생활용품이 있다. 이런 것도 팔아도 되는지 의문이 들정도로 사소한 것들도 많이 있다.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은 다기(茶器)이다. 이곳에서 몇 번 저렴하게 사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기대를 가지고 재활용품점을 들어갔다. 명칭은 ‘굿윌(goodwill)’이다. 우리말로 ‘선한의지’라고 할 수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친선, 선의, 영업권의 뜻이 있다. 정식명칭은 굿윌스토어이다.
굿윌스토어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다. 장애인일자리 창출기업이라고 나온다. 물품을 기증받아 운용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업이다. 기증받은 물품을 판매하는데 수익금은 장애인근로인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는데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굿윌스토어는 전국에 걸쳐 매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안양에는 은혜와 진리의 교회 주차장 옆에 유일하게 하나 있다. 이름하여 굿윌스토어 안양점이라고 한다.
굿윌스토어에 들어가면 다른 것은 보지 않는다. 다기가 있는지 살펴본다. 오늘도 기대를 안고 갔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는다. 매의 눈으로 스캔하다가 구석에 있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 내가 찾던 것이다. 차주전자와 네 개의 찻잔으로 구성된 다기세트이다.
가격표를 보니 7천원이다.다기세트를 7천원에 구입하는 것은 득템한 것이나 다름없다. 차박람회장에서 다기세트를 구입하려면 5만원가량 든다. 비록 중고물품이고 재활용물품에 지나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7천원이라면 거저 가져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안양에서만 통용되는 재난지원금으로 결재했다.
다기세트는 여러 개 있다. 그럼에도 눈에만 띄면 사게 된다. 일단 사 놓으면 쓸모가 있다. 집에도 가져다 놓고 여행 갈 때도 가져간다. 친척에게 선물로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새것을 바란다. 무엇이든지 새것을 사야만 사는 것 같은 맛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가전제품 같은 것은 새것을 사는 것이 좋다. 그러나 다시세트는 새것을 사지 않아도 된다. 마시는데 지장이 없으면 된다. 헌것이면 어떤가? 오늘부터 내것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내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먼저 물로 깨끗이 씻었다. 누군가 사용했을 것이다. 세제로 닦는 작업을 하면서 흔적을 지우고자 한 것이다. 일종의 세레모니라 할 수 있다.
다기는 어디서 만들었을까? 차주전자 아래면을 보니 중국제이다. 중국제이면 어떤가? 잘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이번에 산 차주전자 내부를 보니 철망으로 되어 있다. 내가 바라던 것이다. 철망이 있으면 찻잔에 찌꺼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또한 농도를 적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안양중앙시장 가는 것은 포기했다. 도중에 원하는 물품을 구입했기 때문에 발길을 되돌린 것이다. 그리고 차기를 세척하고 시음했다. 보이차를 만들었다.
보이차는 한번도 산적이 없다. 모두 선물 받은 것이다. 달라고 해서 받은 것도 있다. 친구가 사무실 방문할 때 집에서 묵혀 두고 있는 차가 있으면 가져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확보한 보이차가 있다. 명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맛을 보면 깊이가 있다. 이런 맛에 차를 마시는지 모른다.
보이차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수행자에게는 차 마시는 문화가 발달된 것 같다. 특히 불가에서는 손님이 오면 차 대접하는 것이 하나의 예의처럼 되어 있다.
오늘 확보한 차기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잠시 인연이 되어서 함께 하는 것이다. 모든 옹기는 깨지는 것으로 끝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는 “이 몸을 옹기라고 알고”(Dhp.40)라고 했다.
몸을 왜 옹기라고 알라고 했을까? 이는 “이 몸은 머리카락과 같은 서른두 가지의 신체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옹기처럼 힘없고 약해서 부수어지기 쉽고 오랫동안 지속하기 어렵고 일시적이다.”(DhpA.I.316)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옹기는 부서지기 쉬운 것이라고 했다. 몸도 부서지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다르다. 그래서 “이 마음을 성채처럼 확립하여 지혜를 무기로 악마와 싸워 성취한 것을 수호하며 집착은 여의어야 하리.”(Dhp.40)라고 했다. 몸이 부서지기 전에 사향사과와 열반을 이루어야 함을 말한다.
몸은 부서지기 쉽고 마음은 흔들리기 쉽다. 이럴 때는 마음을 잡아야 한다. 경전을 열어 보는 것이 가장 좋다. 법구경 아무 곳이나 열어서 게송 몇 개만 보아도 전혀 다른 마음이 되어 버린다. 여기에 차라도 한잔 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오늘 비 오는 날 길을 걷다가 다기세트 하나 건졌다.
2021-10-0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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