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없는 모임에 참석하고
모임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목적없는 모임도 있을까? 그런 모임이 있다. 삼무교 모임이다.
삼무교, 삼무교는 무엇일까? 김선홍선생이 주창한 것이다. 세 가지가 없음을 말한다. 무계획, 무대책, 무대뽀를 말한다.
무계획은 영화 기생충을 떠오르게 만든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미리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않음을 말한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다면 걱정이 없어서 좋을 것이다.
무대책은 무계획과 같은 맥락으로 본다. 그때 닥쳐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늘 변하는 세상에서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으로 순발력을 발휘해야 한다.
무대뽀정신은 어떤 것일까? 일단 질러 놓고 보는 것이다. 일이 벌어지고 나면 수습하면 된다. 이것저것 고려하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일단 착수하는 것이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했다.
삼무교 모임 초대를 받고 망설였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김선홍 선생 페이스북을 인연으로 하여 모인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일까? 만나 보아야 안다. 에스엔에스에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페이스북에서 백번, 천번 보아도 한번 대면하는 것만 못하다.
카톡방이 만들어져서 모임을 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이는 목적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이고자 한다. 이것이 삼무교의 특징일 것이다. 무계획, 무대책, 무대뽀의 모임이다.
정치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호구조사도 하지 말자고 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일단 가 보기로 했다. 가서 사람을 사귀는 것이다. 모임을 갖다 보면 어떤 이야기든지 할 것이다.
약속장소는 약수역 5번출구이다. 오전 9시 30분에 도착하니 한번도 본적 없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설령 안다고 해도 페이스북에서 본 얼굴들이다. 그럼에도 초면에 서로 인사를 나누니 금방 구면이 된 것 같다.
처음에는 8명 모였다. 중간에 3명 합류하여 11명 되었다. 김선홍 선생 전직장 외교부 동료들도 있고, 요가강사도 있고, 전직교수도 있고, 성공회신부도 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금요일 오전 모임에도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니 시간에 있어서 자유로운 사람들 같다. 일인사업자이기에 평일 시간 내는 것이 가능하다.
목적없는 모임에도 목적은 있다. 약수역 5번 출구부터 걷기 시작하여 매봉산 정상까지 걸었다. 이어서 매봉산에서 남산방향으로 걸었다. 도중에 실개천에 들렀다. 김선홍 선생 페이스북에 자주 등장하는 계곡이다. 그곳에 도착하니 최부득 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 없는 모임은 아니었다. 남산걷기 모임이 되었다. 도중에 실개천에서 행사를 가졌는데 이번 모임 하일라이트라 아니할 수 없다. 실개천 계곡에 숨겨 놓은 막걸리 세 병을 나누어 마시는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많이 마시지 않았다. 종이컵으로 두 잔 반을 마셨다. 오늘만큼은 불음주계를 어기기로 했다. 다음 법회 때 오계를 받아 지니면 된다. 계를 어기면 참회하고 다시 받아 지니는 것이다. 이것이 식카빠다이다. 학습계율이라고 한다. 평생걸려 훈련에 의해 완성되는 계율을 말한다.
막걸리에 안주는 없다. 빈속에 마시니 즉각적으로 반응이 왔다. 더구나 1시간 이상 걸었기 때문에 마치 시원한 맥주 마신 것처럼 갈증이 해소되었다. 이렇게 삼무교 의식을 치룬 것일까?
점심시간이 되었다. 남산길을 1시간가량 걸어서 한옥 식당에 도착했다. 계산은 각자 하는 것이다. 이런 것도 삼무정신일 것이다.
각계각층 사람들이 모여서 걸었다. 모임의 목적이 있어서 모인 것도 아니다. 그냥 모인 것이다. 김선홍 선생 얼굴 보고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선생의 순수하고, 솔직하고, 꾸밈없는 개성에 반해서 모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 모이자고 했을 때 이것이 나에게 이익이 될 것인지 손해가 될 것인지 따져 본다. 나에게 실익이 없다면 굳이 시간과 돈과 정력을 낭비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그사람 얼굴보고 가는 것이다.
김선홍 선생 얼굴 보고 모임에 참석했다. 한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삼무교 교주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다.
오늘날 페이스북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페이스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지만 실제로 만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상공간에서 친구는 가상공간의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상공간 사람도 대면하면 현실공간 사람이 된다.
이번 모임에 참여한 것은 가상공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였다. 한번 만남을 가짐으로 인하여 확고한 실체로 굳어지는 것 같다. 더 이상 가상공간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런 것도 사람사는 재미일 것이다.
2021-10-1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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