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했으면 사과를 받아 주어야
서울 경선 발표 결과를 듣고 깜짝놀랐다. 3차 선거인단 결과 발표를 듣고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이낙연은 60% 이상이고 이재명은 20%대였다. 마치 바꾸어 말한 것 같았다. 이재명은 턱걸이로 간신히 최종후보자가 되었다. 이런 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3차 선거인단 결과에 마음이 우울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 하루가 지난 다음 카톡방에 ‘역선택’이라는 말이 나왔다. 극우사이트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선택이라는 말에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1차 선거인단에 참여해서 투표했다. 그런데 2차도 있고 3차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순이다. 한번 모집한 것으로 끝냈어야 했다. 1차 발표 결과에 충격을 받은 측에서는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치 전쟁과도 같은 상황에서 반전을 노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마치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이 되었을 지 모른다.
이재명을 열렬히 응원했다. 수많은 글을 써서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는 자발적인 것이다. 이재명을 재발견한 기쁨을 글로서 표현한 것이다. 이런 것에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재명을 편애하는 글쓰기를 했다. 이런 행태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반발을 불러 일으킨 것 같다. 이는 댓글에 악플로 나타났다.
어떤 이는 블로그 댓글에 절절하게 호소했다. 그 사람은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는 글은 불교의 중도정신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불교를 깊이 공부하신 분이 정치인에 대해 기대를 품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습니다.”라고 했다. 정치관련 글쓰기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실망을 표현한 것이다.
불교에 관한 글만 쓰지 않는다. 그날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쓴다. 그러다 보니 대선후보 경선과 관련된 글도 쓰게 되었다. 이런 글쓰기가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글만 보고서 사람을 판단하려 하는 것이다. 글과 사람은 다른 것이다. 글을 그 사람의 인격과 동일시하면 실망하기 쉽다. 글은 잘 정리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인격과 일치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사죄하는 댓글도 보았다. 페이스북 친구 K는 이재명과 관련된 글에 초치는 듯한 댓글을 달았다. 그는 조만간 이재명에게 큰 것이 터질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찬양하다가 망신당하지 말고 불교관련 글이나 쓰라고 충고했다.
친구란 무엇일까?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친구이다. 또한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 친구이다. 페이스북친구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감해 준다는 것은 친구의 조건이 된다. 그럼에도 비난한다면 더 이상 친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차단조치 했다.
페이스북에서 차단조치는 극형에 해당된다.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노출되지 않는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숨겨 버리는 것이다.
차단조치를 하기도 하고 차단을 당하기도 한다. 어느 비구니 스님에게 차단당했다. 댓글에“지나치십니다.”라고 표현한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국제구호 운동을 하는 스님은 매번 비참한 모습의 미얀마 간난아기 사진을 올렸다. 이런 것에 대하여 식상하다는 식으로 댓글을 단 것이다.
차단조치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나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차단 당하는것에는 이유가 있다. 차단 당할 만해서 차단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 없이 차단당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P가 그렇다.
P는 왜 나를 차단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글을 너무 자주 올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 보았자 하루에 한 개에서 많아야 세 개이다. 다만 글이 길 뿐이다. 글이 길어서 차단한 것일까?
P는 한때 긴 글에 ‘좋아’요 추천을 잊지 않고 꼬박꼬박 눌러 주었다. 어느 날 이름이 보이지 않았을 때 그가 페이스북을 하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타인의 글에 단 댓글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발견하고서 차단당했다는 것을 비로서 알게 되었다.
P는 잘 아는 사람이다. P는 지위와 명예도 있는 사람이다. 더구나 같은 단체소속이다. 그럼에도 차단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중에 만났을 때 “왜 차단했습니까?”라며 물어보고 싶다.
뻔히 아는 사이에서 차단 당했다는 것은 대단히 불쾌하다. 안 보고 살 것도 아니다. 자주 볼 날이 많다. 나의 글에서 피로를 느낀 것일까? 글이 너무 길어서 그런 것일까? 글이 식상한 것일까?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차단 당했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재명 관련 글에 댓글로 비난한 K는 차단 당했다. 그런데 그는 블로그에 장문의 댓글을 남겼다. 이재명이 후보로 선출되는 날 올린 것이다. 그는 이재명은 민주당 후보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는데 예상은 빗나간 것이 되었다.
K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는 블로그 댓글에다 “존경하는 선생님, 일단 뭐라 사죄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말로 글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평생 올곧은 불교학자로 멋진 삶을 살아오셨던 선생님이 진흙만도 못한 정치판에서 특정 정당 후보를 지지하셔서 상처를 입으시거나 오명을 쌓으시면 불교계의 큰 타격이라는 생각으로 단 댓글이었습니다.”라고 글을 달았다.
그가 염려했던 명예에 대한 것이었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글을 연속으로 쓰는 것은 좋지만 만에 하나 이재명에게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게 되었을 때 명예가 실추될 것을 염려한 것이다.
세상 사는데 명예와 불명예는 늘 있는 것이다. 이익과 불이익, 칭찬과 비난, 명예와 불명예, 행복과 불행은 늘 있는 것이어서 세속팔풍이라고 한다.
K가 오해하는 것이 있다. 불교학자라고 한 것을 말한다. 나는 불교학자가 아니다. 블로그에 매일 의무적으로 한 개 이상 글을 쓰는 블로거이다. 그래서 학자의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자의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불교계통 학과를 나오지 않았다. 인문학 계통의 공부를 한 것도 아니다. 공대를 나와서 오랫동안 개발자로 일했었고 지금은 일인사업자로서 삶을 살고 있다. 불교와 인연 맺은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2004년부터 인연이 되었다.
K는 사과했다. 아니 진심으로 사죄했다. 그는 댓글에서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올립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가을 보내시고 후에 인연이 되면 꼭 찾아뵙고 진심어린 사죄 올리겠습니다.”라고 거듭 사죄했다.
사과를 하면 사과를 받아 주어야 한다. 다만 진심어린 사과이어야 한다. 부처님도 진정으로 뉘우칠 때는 받아 주라고 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진정으로 참회할 때 참회를 받지 않고
울화를 품고 분노가 무거운 자는 원한에 묶이네.
나는 원한을 즐겨하지 않기에
그대들의 참회를 받아 들이네.”(S1.35)
진정으로 참회할 때는 받아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모른 채하고 못 본채 하고 외면한다면 그 사람을 계속 원한에 쌓이게 하고 계속 분노하게 만들 것이다.
K를 페이스북 차단에서 해제했다. 진심으로 사과한 것으로 생각하고 사과를 받아 준 것이다. 부처님도 진심으로 뉘우칠 때는 받아 주라고 했다. 이제 다시 친구로 지낼 것이다.
앞으로 정치에 대한 글을 계속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된다. 어떤 이들은 불교에 대한 글만 쓸 것을 요구한다. 특정 후보에 대한 글을 쓰면 중도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후보가 잘못되었을 때 글쓴 이의 명예를 걱정하기도 한다.
스님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보통불자에 지나지 않는다. 초기경전 문구를 이용하여 글을 쓴다고 하여 글과 인격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믿으면 실망하기 쉽다. 공부하는 학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정치와 관련된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있다. 아직 공부가 덜 되어서 그런지 모른다.
그러나저러나 P는 왜 나를 차단했을까? 차단한 이유는 무엇일까? 뻔히 아는 사이에 너무 한 것 아닌가? 자주 만날 텐데 이렇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에게도 허물이 있을 것이다. 허물이 발견되면 즉시 사과한다. 사과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지위도 명예도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모른다.
외국 사람은 아이엠소리(I am sorry)와 익스큐즈미(Excuse me)가 입에 붙어 있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했으면 사과를 받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21-10-1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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