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억울하게 강제보시 당했을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0. 29. 07:20

억울하게 강제보시 당했을 때


유격훈련에 레펠이 있다. 시범 조교는 올빼미들에게 절벽에서 줄타는 방법을 보여준다. 십미터가량 되는 절벽에서 발을 이단 터치해서 사뿐하게 내려온다. 군대 유격훈련가서 본 것이다.

아파트 도색작업 하고 있다. 최고 25층 높이에 긴 줄이 매달려 있다. 작업자는 줄 하나에 의지하여 위태롭게 페인트를 분사한다. 작업이 끝나면 신속하게 내려온다. 유격훈련장에서 레펠 타는 것이 연상된다.

 


어제 저녁 딱지를 건네받았다. 주차위반 딱지를 말한다. 정식명칭은 '과태료 부과 사전통지서'이다. 동안구청에서 날아온 것이다. 경찰서가 아니다. 사진과 함께 과태료가 32천원이다. 그것도 두 장이다. 누군가 신고한 것이다. 그것도 심야에 촬영한 것이다.

오랜만에 과태료 고지서를 접했다. 종종 신호위반이나 과속으로 과태료 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주차위반인 경우는 처음이다. 누가 신고했을까? 같은 아파트 주민이 신고했을까? 신고전문 카파라치 소행일까? 구청에서 단속 나온 것일까?

 


억울했다. 아파트 도색작업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하주차장 바닥을 도색한다고 하여 밖에 주차할 수밖에 없었다. 자리가 나지 않아 이면도로 코너에 주차해 놓았는데 이런 딱지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른 차들도 모두 과태료 대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것만 콕 집었다. 아마도 대열에서 벗어나 단독 주차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다른 단지 길에 주차해 놓은 것도 원인이 된 것 같다.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하고 억울하다. 늦은 밤에 주차하여 아침 일찍 출차했음에도 컴컴한 심야에 촬영하여 신고한 것이다. 누가 그랬을까?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러나 따져는 보아야 겠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보상 요청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구청에 가서 이의신청도 생각한다. 역시 들어주지 않을 것 같다. 한번 고지되면 바꾸기 힘들 것이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나라에 세금 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포기할까 한다.

과태료 6 4천원,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금액이다. 억울한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많다는 것이다. 금액으로 따졌을 때 더 큰 것도 많다. 돈 떼인 것에 비하면 억울한 축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돈 떼이기 쉽다. 상대방이 결재하지 않으면 떼이는 것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천만원 가까이 되는 것 같다.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직장에 다니면 월급 받는다. 월급은 때 되면 나오는 것이다.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월급이 밀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대개 세번 밀리면 회사가 가망이 없다. 몇 차례 겪었다.

사업을 하면 계산서를 발행한다. 부가세와 함께 국세청 신고에 들어 간다. 사업 초창기 때 계산서를 발행하면 다 결재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결재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밀리고 밀려서 거금이 되었을 때 사기당한 기분이 되었다.

사기꾼이 달리 사기꾼이 되지 않는다. 세금계산서를 제 때 결재하지 못하면 사기꾼이 된다. 공학박사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도 결재할 능력이 안되면 사기꾼 소리 듣는 것이다.

미결리스크는 항상 있다. 어느 소기업 사장은 매출의 10%는 떼일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건을 만들어 납품했는데 100% 다 받을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부도가 나서 파산했을 때 받을 수 없다. 결재해 주고 싶어도 돈이 없을 때 미결이 된다.

완결은 잊어버린다. 미결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금액이 크던 작던 미결대금은 세월이 지나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내돈 떼먹고 달아난 사람을 평생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억울한 일은 평생 간다. 내가 손해 봤다고 생각하면 오래간다. 과태료 딱지도 오래 갈 것이다.

잊어버려야 한다. 나라에 세금 냈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응어리가 남아 있다. 돈으로 때울 수는 있지만 억울한 감정은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세상은 내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도 많다. 사고 같은 것이다. 사고는 예고 없이 일어난다. 사고는 순간적으로 발생한다. 사고가 났을 때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나에게"라며 억울해 할 것이다.

우연발생적 사고를 인정해야 한다. 이를 전생의 업보성숙으로 볼 수 없다. 모든 것을 업보성숙으로 본다면 숙명론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유없이 발생하는 우연론으로 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부처님 가르침에 답이 있다. 사고는 접촉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흔히 '접촉사고 났다'고 말한다. 자동차 사고를 말한다. 차와 차의 접촉이 없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삶의 과정은 사실상 접촉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매순간 접촉사고가 나고 있는 것이다. 시각접촉, 청각접촉 등 육처에서 접촉이 일어나고 있다.

심야에 카파라치에게 찍힌 것은 접촉에 따른 것이다. 고지서를 본 것은 시각접촉에 따른 것이다. 고지서는 업보의 성숙도 아니고 우연도 아니다. 일어날만 해서 일어난 것이다. 하필 그 자리에 주차한 것이 문제가 되었고, 하필 그 사람에게 걸린 것이 원인이 되어서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억울한 감정이 남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씨바까여, 이 세상에서 어떠한 느낌들은 불운한 사건에서 생겨납니다. 씨바까여, 이 세상에서 어떠한 느낌들은 불운한 사건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을 체험해야 합니다."(S36.21)

상윳따니까야 '몰리야씨바까의 경'에 있는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불운한 사건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씀했다. 불행이 업보의 성숙이나 우연론이 아님을 말한다.

사고가 일어날 요인은 많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1)담즙(Pitta), 2)점액(Semha), 3)바람(V
āta), 4)체질(Sannipātikāni), 5)계절의 변화(Sannipātikāni), 6)불운한 사건(Visamaparihārajāni), 7)우연한 피습(Opakkamikāni), 8)업보의 성숙(Kammavipākajāni), 이렇게 여덟 가지 요인에 따라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과태료 딱지는 여섯번째 '불운한 사건'에 해당될 것이다.

세상에 억울한 사람이 많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누구나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말못할 것도 있을 것이다. 이를 업보의 성숙으로 보면 숙명론이 된다. 그러나 업보의 성숙은 여덟 가지 중에서 하나에 해당된다. 살다보면 '불운한 사건(6)'이나 '우연한 피습(7)'에 의한 것도 많기 때문이다.

불운한 사건과 우연한 피습은 업보의 성숙이 아니라 접촉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접촉사고가 났을 때 "액땜 했다."는 식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부처님 제자라면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세상이 생겨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시각의식이 생겨난다. 그 세 가지가 화합하여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S35.107)

부처님은 세상이 생겨나는 원리에 대하여 접촉으로 설명했다. 눈으로 보는 순간 대상과 접촉이 일어나는데 이를 '세상의 발생'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과태료 고지서를 본 순간 접촉이 일어났다. 그리고 불쾌한 느낌이 지배했다.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고지서를 보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이는 과거전생의 업보와 관련 없는 것이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전생 것 액땜했다'고 말하며 위로한다. 그러나 사고는 일어날 만해서 발생한 것이다. 하필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다. 전생의 업보성숙과 무관한 것이다. 접촉해서 사고가 난 것이다.

사고에 대하여 업보성숙으로 보면 십이지연기가 회전되는 것이다. 사고에 대하여 접촉으로 보면 팔지연기가 회전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십이지연기로 해석하면 숙명론자가 될 것이다. 과거의 요인인 무명과 행이 나의 삶에 영향 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접촉으로 보면 육입에서부터 연기가 회전되기 때문에 업보성숙으로 보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접촉은 매순간 일어난다. 매순간 접촉사고가 발생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세상이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접촉에 따라 매순간 세상이 생겨나는 것이라면 세상을 창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운명도 바꿀 수 있음을 말한다.

과태료 고지서를 보는 순간 불쾌가 지배했다. 억울하다고 느꼈을 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삶의 과정에서 이보다 억울한 일은 훨씬 많았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가장 억울한 일은 죽음일 것이다. 불운한 사고나 우연한 피습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죽었다면 이 보다 더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 사는 세상은 억울한 자들로 가득한 것 같다.

과태료 6 4천원,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 기부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부담이 덜하다. 절에 갈 때 보시금 내듯이 국가에 내는 것이다. 국가 예산이 되어 유익하게 쓰여진다면 이것도 보시가 될 것이다. 억울한 강제보시이긴 하지만.


2021-10-2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