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외줄타기 하는 심정으로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1. 2. 10:35

외줄타기 하는 심정으로


줄 하나에 의지하여 작업하고 있다. 무려 25층 높이에서 외줄 하나에 의지하여 페인트를 분사한다.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도색작업이 한창이다.

 


18
년만에 칠하는 것이라고 한다. 오래 되기도 했지만 최근 재발된 아파트 영향이 크다. 새로 지은 아파트와 비교하여 낡고 초라해 보여서 도색작업 하는 것이다.

 


도색작업 비용이 놀랍다. 새로 신축된 아파트 건설사로부터 받아 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일조권 침해 명목으로 받아 낸 것이다. 재개발되기 전에는 전망이 좋았으나 무려 최고 38층까지 건설됨에 따라 권리가 침해 받은 것이다.

 


세 가지 도색방안이 제시되었다. 그 중 하나가 투표로 선정되었다. 놀랍게도 신축아파트 도색 스타일과 유사하다. 아파트도 주변환경에 적응해 가는 것일까?

도색작업은 목숨을 거는 것 같다. 수십미터 높이에서 외줄을 타고 분사시키는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수당도 많을 것이다.

외줄타기 도색을 보면서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마트에 가면 수천, 수만가지 상품이 있듯이, 현실세계에서도 수천, 수만가지 직업이 있다. 나의 직업은 어떠한가?

컴퓨터 하나로 먹고 살고 있다. 책상에 앉아서 작업하기 때문에 비교적 편하다. 그러나 일감이 없으면 놀아야 한다. 갈수록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이 들어 이런 일이라도 있다는 것에 안심이다.

요즘 꿈을 꾸면 쩔쩔매는 꿈을 꾼다. 직장에 새로 들어 갔는데 적응하지 못하는 꿈이다. 꿈에서 깨면 안심이다. 그래도 붙잡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하고있는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업이다.

직장은 생명과도 같은 곳이다. 직장이 없으면 죽은 목숨과도 같다. 한때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리 개떡 같은 직장이라도 월급만 준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다녔다. 그것은 가족의 생계의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트라우마가 요즘 꿈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직장 꿈을 꾸었다. 어느 직장에 새로 들어 갔는데 "어버버"하는 꿈을 꾸었다. 무능력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은 꿈이다. 실력이 들통나서 퇴출을 염려하는 꿈이다. 직장 꿈을 꾸면 대개 이런 식이다.

이 세싱에서 먹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생계문제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특히 한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렵다. 어떤 수모와 굴욕을 감수하고서라도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직장은 생명이나 다름없다.

직장은 없어도 직업이 있으면 먹고 살 수 있다. 자영업자가 이에 해당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한다. 마치 야생의 포식자와 같이 혼자 힘으로 먹이를 마련해야 한다. 사냥에 실패하면 굶을 것이다.

사람은 배고파 보아야 한다. 수입이 없어서 쩔쩔맬 때 그제서야 삶의 현장에 나가게 된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마치 세렝게티 평원의 포식자와도 같다. 도시의 들개처럼 일거리를 찾아 도시를 배회하기도 한다. 헝그리정신으로 무장하면 안될 것이 없다.

현재 하고 있는 일도 헝그리정신의 산물이다.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었을 때 방황하다가 이것으로 정했다. 이후 이것으로 지금까지 먹고 살아왔다. 그런데 늘 불안했던 것 같다. 직장 꿈만 꾸면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쩔쩔매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먹고 사는 문제에서 해방될까?

한가지 희망은 있다. 나도 내년 초부터는 본격적으로 연금생활자가 되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에 비하면 반토막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국민연금은 비빌 언덕이 되는 것 같다. 이것도 노동해방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연금생활자가 된다는 것은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생각된다. 연금에 의지하는 삶을 살았을 때 배부른 돼지가 될 것 같다. 더 이상 야생의 굶주린 포식자가 아니다. 비록 자신이 낸 것을 자신이 찾아 먹는다고는 하지만 인생의 종착점에 이른 것 같다고 생각해 본다.

나는 여전히 현역이고 싶다.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페셔널로 살고 싶다. 연금에 의지하여 안락한 삶을 사는 것보다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며 살고 싶다. 그러나 안락한 삶에 굴복하기 쉬울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정말 인생끝장으로 본다.

 


목숨을 담보로 외줄타기하며 살아 가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줄타기 페인트공에게서 강한 생명력을 본다. 삶의 활력을 본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불로소득자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고액연봉자, 고액연금소득자, 건물임대소득자에게서 볼 수 없는 삶의 활력이 있다.

블로소득에 의존하는 삶은 죽은 목숨과 다름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놀고먹는다면 죽은 목숨이다. 움직여야 산 목숨이다. 집안에만 있어도 죽은 목숨이다 살려면 집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가서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친구와 우정을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오늘도 집을 나선다.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외줄타기 하는 심정으로.


2021-11-0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