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부가가치세 신고의 날에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 24. 11:34

부가가치세 신고의 날에

 

 

마음의 부담이 덜어진 것 같다. 부가세신고를 마쳤기 때문이다. 마감일을 하루 남겨두고 신고한 것이다. 이런 심리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줄 돈은 천천히 주자는 심보일 것이다.

 

부가세신고 날자를 어기면 큰 불이익을 당한다. 하루만 늦어도 벌금 맞아야 한다. 늦으면 늦을수록 누진된다. 언젠가 한두번 늦게 신고했다가 벌금폭탄 맞은 적 있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국세청은 고리대금업 못지 않은 것 같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일까 신고때만 되면 신경이 곤두선다.

 

 

개인사업자는 6개월에 한번 신고한다. 매년 1월과 7월에 신고한다. 그런데 부가세신고는 일종의 성적표와 같다는 것이다. 마치 학업성적표를 받아 보듯이 지난 6개월의 사업성적표가 산출된다.

 

나의 21년 하반기 사업성적표는 어떨까? 매출처가 7군데이고 매출계산서를 63매 발행했다. 매출처는 5곳이고 59매의 매입계산서를 받았다. 매출금액에서 매입금액을 빼면 이익금이 된다. 이익금액의 10%를 부가세로 내야 한다.

 

세금을 많이 내면 좋은 것이다. 장사나 사업을 잘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가세를 많이 낸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들어온 돈은 온데간데없다. 입출금통장은 늘 마이너스 상태이다.

 

부가세를 내고 나면 입출금통장 잔고가 푹 꺼진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재난지원금이 나와서 그나마 숨통이 트인 것 같다. 소상공인 5차 방역지원금 백만원이 입금된 것이다.

 

이번에 전자신고하면서 하나 발견한 것이 있다. 그것은 개업일이 2005113일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사업자 개업일을 말한다. 그때 당시 사업이라는 것을 처음 해보았는데 거래하기 위해서는 사업자등록증이 필요 했다. 이런 이유로 국세청에 등록한 날자가 113일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회사창립 기념일은 2005113일이 되는 것이다.

 

20년동안 이회사 저회사 옮겨 다니다가 퇴출되었을 때 무엇을 해먹고 살아야 할지 먹먹했다. 40대 중반의 가장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도 했다. 그래서 안테나 설치하는 사람을 열심히 쫓아다니기도 했다. 관련 회사에 취업하려고도 했으나 소위 노가다 하기에는 스펙이 너무 좋다고 하여 거절당했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다. 회사 다녔을 때 배운 기술을 활용하여 셋톱박스를 만들어 팔고자 했다. 소량 생산해도 꾸려 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사실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업자등록증을 발행하게 되었는데 상호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했다. 불교에 점점 심취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상호를 인드라미디어라고 한다.

 

상호 인드라미디어는 2년가량 유지되었다. 물론 원맨컴퍼니이다. 2년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물건을 납품해도 결재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판로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현재 하고 있는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업이다.

 

PCB설계는 회사 다닐 때도 해 본 것이다. 주요한 개발과정 중의 하나이다.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사업을 할 수 있다. 캐드 툴은 크랙버전을 활용했다. 라이선스 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결국 라이선스 했다. 십년 이상 지난 후의 일을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전의 일이다. 라이선스 비용으로 매달 백만원씩 15개월 지불해야 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크랙버전으로 먹고 살았으니 정식버전을 사야 했던 것이다.

 

2005년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동안 방황했었다. 그러다가 2006년 말에 현재 하고 있는 인쇄회로기판설계업으로 정착되었다. 처음에는 공동사무실을 활용했다.

 

안양에 있는 공동사무실에는 책상 하나만 주어졌다. 공동사무실에서 1년을 보냈다. 그리고 200711월에 현재의 사무실로 입주했다. 그리고 예전의 인드라미디어상호를 버리고 예아트라는 새로운 상호로 등록했다.

 

상호는 바뀌어도 처음 사업자등록한 날자가 개업일임을 이제야 알았다. 이렇게 본다면 창업한지 17년이 된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원맨컴퍼니이다.

 

원맨컴퍼니에서 원맨사장은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일감을 수주하는 것에서부터 전자계산선 발행하는 것까지 홀로 다 해야 한다. 영업도 당연히 홀로 한다.

 

처음에는 회사소개서를 만들어 무작정 찾아 가기도 했다. 그러나 경비단계에서 차단당했다. 전화로 영업하는 경우 교환원 단계에서 차단당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키워드 광고이다.

 

키워드광고는 별도로 영업 활동하지 않아도 된다.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 광고하면 된다. 다음과 네이버에 광고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전화가 걸려 온다는 것은 대단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무턱대고 찾아가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제 사업 17년차가 되었다. 40대 중반에 홀로 세상에 내던져졌을 때 먹먹했으나 이제는 자리 잡은 것 같다. 일감이 없으면 왜 일이 없을까?”라며 초조해하지만 곧 일감이 있게 된다. 이런 세월을 살아왔다.

 

나에게 있어서 지난 17년은 어떤 세월일까? 나 자신으로 산 세월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직장 다닐 때는 나로 산 것이 아니다. 월급을 받기 때문에 나로 산 시간이 아니었다. 일인사업자로 살면서 비로서 나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으는 삶을 살고 있다. 삶의 족적은 계산서철로 남아 있다. 200711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래 매출과 매입계산서를 버리지 않고 파일로 보관해 두고 있다.

 

모으는 삶에서 글을 빼 놓을 수 없다. 2006년 이후 거의 매일 글을 쓰다시피 하고 있는데 블로그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요즘에는 책으로 만들고 있다. 2012년 것까지 현재 45권 만들었다.

 

업무노트도 모아 놓고 있다. 처음 회사는 1985년 여름에 입사했지만 업무노트 모아 놓은 것을 보니 1987년 부터이다. 이렇게 모아 놓은 업무노트는 100권가량 된다.

 

 

강연이나 모임에서 들은 것을 기록한 노트도 있다. 글쓰기 위한 메모 노트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모아 놓은 노트도 30권가량 된다.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는다. 모두 삶의 흔적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사무실을 가진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은퇴자에게 충고하고 싶다.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라고. 집에서 방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다면 자신만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임대사무실을 갖고 있다. 일터이자 동시에 글 쓰는 공간이다. 요즘은 개조해서 명상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일인사업을 하면서 나의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삶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제행무상이기 때문에 언젠가 끝이 있을 것이다.

 

오늘도 새로운 마음으로 일터이자 아지트인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날이 그날 같지만 오늘의 태양은 어제의 태양과 다르다. 혼자 커피를 내려 마시며 오늘도 이렇게 두들겨 본다. 무엇보다 부가세신고를 마쳐서 마음의 부담이 없다.

 

 

2022-01-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