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가지 잘린 낙락장송을 보며

담마다사 이병욱 2022. 2. 2. 16:33

가지 잘린 낙락장송(落落長松)을 보며


비산동의 변화는 놀랍다. 안양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곳 같다. 최근 신축되어 입주가 완료된 '평촌 래미안-푸르지오' 아파트 단지가 그렇다.

새아파트는 비산2동에 건설되었다. 연립주택, 저층아파트, 상가, 시장을 밀어버리고 재개발된 것이다. 높이가 무려 38층에 달하는 초고층 타워형이다. 높이와 함께 한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은 소나무이다. 백년 이상 되어 보이는 낙락장송이 가지가 잘린 채 이식되어 서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소나무가 관상수로 활용되고 있다. 브랜드 아파트에는 키 높은 소나무가 위용을 자랑한다. 전에 보지 못하던 현상이다. 요즘은 경쟁적으로 소나무를 이식하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신축된 아파트 단지를 보니 도가 지나친 것 같다. 최소한 백년은 넘은듯한 낙락장송을 가져온 것이다.

 


낙락장송이 있으면 아파트단지가 품격 있어 보인다. 브랜드가 있는 단지는 브랜드 관리 측면에서 이식했을 것이다. 그런 한편 자연과 환경을 훼손하는 행위가 아닌지 의심된다.

명품아파트에는 명품소나무가 있어야 할까? 저 소나무는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 아파트 단지에 서 있지만 바닥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단지 전체가 지하주차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수백년 되어 보이는 가지 잘린 낙락장송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굽은 소나무가 마을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곧은 소나무는 목재로 활용되기 때문에 잘리기 쉽지만 심하게 뒤틀린 소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고향마을이나 선산의 지킴이가 됨을 말한다. 그러나 요즘은 안심할 수 없는 것 같다. 명품 브랜드 아파트 단지에 언제 팔려 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산2동이 재개발로 지정되었을 때 여러 편의 글을 썼다. 오래 살다 보니 제2의 고향과도 같았는데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워했다.

2017
년의 일이다. 어느 날 세탁소에 글이 하나 붙었다. 세탁소 주인이 쓴 것이다. 주인은 "37년 저의 업소를 찾아 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써 놓았다. 재개발을 앞두고 성도세탁소는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비산약국도 아마 성도세탁소 못지않게 오래 되었을 것이다. 비산시장 입구 사거리에 있었는데 토요일 밤에도 12시까지 문을 열었다. 일요일에도 문을 열어서 언제나 가면 약품을 살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기록해 두었다. 블로그에 '언제나 그 자리에(https://m.blog.daum.net/bolee591/16158059)'(2017-10-07)라는 제목으로 기록을 남겼다.


철거는 2018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비산시장, 경상도 닭집, 유치원, 비산태권도장, 성도세탁소, 비산약국 등 하나, 둘 사라졌다.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모두 사라졌을 때 커다란 공터만 남았다.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사라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리고 '터줏대감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https://m.blog.daum.net/bolee591/16158351)'(2018-03-04)라는 제목으로 시를 남겼다.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
이제 봄이 왔으니 파괴가 시작될 것입니다.
유치원도, 미용실도, 약국도, 마트도
태권도장도 추억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에게는
고향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유년기의 추억도 함께 사라집니다."(2018-03-04)


공사는 터닦기부터 시작되었다. 지하 깊숙히 파 내려 간 다음 지하주차장 부터 만든 것이다. 단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지하주창이 된 것이다. 토목공사가 완료되자 본격적으로 건설공사가 진행되었다.

아침이 되면 쇠망치 울려 퍼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하루가 다르게 구조물은 쑥쑥 올라갔다. 이 모든 과정을 일터에 가는 길에 지켜보았다.

나는 비산동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다. 1988년에 처음 인연 맺은 이래 5-6년을 제외하고 1995년 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이 시기 동안 수많은 재개발과 재건축을 지켜보았다. 그결과 비산사거리를 중심으로한 지역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 정점을 찍은 것이 이번에 새로 건설된 '평촌 래미안-푸르지오'아파트 단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 지방은 소멸위기에 처해 있다. 출산율은 떨어지고 고령인구는 늘어나는 등 갈수록 쇠락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서울과 수도권 도시는 날로 고층화 되고 있다. 요즘은 지었다하면 38층이다. 이로 인해 최근 10-20동안 스카이라인이 크게 바뀌었다. 비산동은 안양에서 가장 핫한 곳이 된 것 같다.

영화에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제목이 있다. 나는 지난 20-30년 동안 비산동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아주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급격하게 스카이라인이 변한 모습을 매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나는 비산동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다.

성도세탁소 주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비산약국 주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청과물가게 주인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새상가에서 입주권을 받아 예전처럼 영업하게 될까? 아직까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연립주택 앞에서 노점하던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입주권을 받아서 저 높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을까? 원주민들은 얼마나 입주했을까?

 


하늘높이 치솟은 아파트 단지에 저녁이 되면 대부분 불이 켜져 있다. 2018년 철거가 시작된 이래 4년만에 입주가 완료된 것이다. 새로 비산2동 주민이 된 사람들은 과거에 이곳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고나 있을까?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아파트 단지에 명품 소나무가 서 있다. 고향마을이나 선산을 지켜야할 명품 소나무가 이곳으로 팔려 왔다. 새아파트단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가지 잘린 낙락장송을 보며 자랄 것이다. 여기가 고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 알고 있다. 이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2022-02-0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