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그 사람에게 10만원 주었다

담마다사 이병욱 2022. 2. 11. 15:35

그 사람에게 10만원 주었다

 

 

날씨가 따뜻하다. 상대적으로 날씨가 따뜻한 것이다. 며칠 전까지 만해도 밖에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잔뜩 끼여 입었지만 영하의 추위에 속수무책이었다. 오늘 점심 때 날씨는 마치 봄날처럼 안은하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기로 했다. 안양아트센터쪽으로 가고자 했다. 그러다가 방향을 틀었다. 이왕이면 재활용품 파는 가게로 가고자 한 것이다. 두 정거장 거리에 있다. 안양 굿윌스토어(Good Will Store)이다. 잘하면 건질 만한 물건이 있을 것 같았다.

 

만안구청에서 굿윌스토어로 가기 위해 대로를 따라 올라갔다. 불과 100미터도 못가서 그 사람을 발견했다. 안양에서 늘 보는 사람이다. 노숙자 같기도 하고 걸인 같기도 하다. 나의 글쓰기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그는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는 더벅머리로 바가지를 뒤집어쓴 것 같다. 얼굴은 광대뼈가 나왔다. 아니 볼이 움푹 패인 것이다. 눈은 초롱초롱하기도 하고 형형하기도 하다. 무표정한 얼굴이다. 깊은 고뇌가 있는 것 같다.  

 

 

그는 항상 맬 것을 매고 다닌다. 맬 것은 비닐을 둘둘 말은 천막베낭이다. 아마 잠자리에 대한 것인지 모른다. 두 개의 줄로 어깨걸이를 만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모습은 변함없다.

 

나의 용기없음을 한탄하고

 

그를 처음 발견한 것은 십년 이상 된 것 같다. 안양예술공원에서도 보았고 학의천 공원에서도 보았다. 안양아트센터에서 걸어가는 것도 보았다. 요즘은 만안구청 앞을 지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그가 나의 글에 처음 등장하던 때는 언제일까? 블로그 검색을 해 보았다. 십년전의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다만 2016년에 집도 절도 없이, 천막 베낭의 대자유인(https://blog.daum.net/bolee591/16157154)’(2016-07-17)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글에서 그를 종종 보다 보니 그에 대하여 궁금 해집니다. 왜 그런 모습으로 돌아다니는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흥미를 유발합니다.”라며 글을 남겼다. 추운 겨울날 본 것을 회상하며 늘 입고 다니는 얇은 검은 옷과 거의 맨발이 몹시 추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공원에서 축구하는 사림들이 안되 보였는지 컵라면을 사주자 맛 있게 먹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합니다.”(2016-07-17)라고 써 놓았다.

 

가장 최근에 그 사람에 대해서 쓴 것은 작년 202110월의 일이다. 그때 안양아트센터 옆을 지나갔었는데 이를 목격하고 천막배낭 지고 다니는 사람(https://blog.daum.net/bolee591/16160970)’(2021-10-13)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글에서 나의 용기없음을 한탄했다. 지난 10년 동안 안양 이곳저곳에서 보았지만 한번도 말을 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도 보시를 한적이 없다는 말과 같다.

 

그 사람에 대해서 글로만 가지고 표현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늘 지나치기만 했을 뿐 만나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가 너무 허름해 보이는 것도 이유가 있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심리가 작용해서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만나지 못한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2021-10-13)라고 써 놓았다.

 

SBS작가가 나의 글에 흥미를

 

오늘 재활용품센터로 가는 길에 그 사람을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번 글에서 나의 용기없음을 한탄하고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음을 글로 표현했다.

 

만나서 어쩌자는 건가? 친구라도 되자는 건가?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인지 알아보자는 건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만용이다. 마치 SBS작가가 나의 글에 흥미를 갖는 것과 같다.

 

언젠가 블로그에 그 사람의 뒷모습을 글과 함께 올렸다. 어떻게 보았는지 SBS작가가 댓글을 달았다. 전화번호를 알면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블로거가 자신의 느낌을 쓴 것임에도 검색에 걸린 모양이다.

 

그 사람을 본지는 십년 이상 되었지만 한번도 말을 건넨 적이 없다. 그 사람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여 말을 걸어 신상파악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 두었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저질러 보기로

 

그 사람은 노숙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걸인은 아닌 것 같다. 추운 겨울날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을 보았다. 사람이 그렇게 산다면 하루도 못살 것이다. 그럼에도 십년 동안 변함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를 발견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각설이 타령 노래가 생각난 것이다. 추운 겨울날 천막배낭 하나 짊어지고 다니는데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대체 그는 어디서 어떻게 사는 것일까? 거처가 있는 것일까? 무엇을 먹고 살까? 생각하면 할수록 불가사의 했다.

 

오늘 그 사람을 발견했을 때 일을 저질러 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취재하듯이 대화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주기로 한 것이다. 지갑을 보니 5만원권 화폐가 3개 있었다. 마침 잘 되었다. 두개를 꺼냈다.

 

일단 돈을 주려고 생각하자 마음이 바빠졌다.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되었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도 몰랐다. 부딪쳐 보기로 했다. 마치 쫓아 가듯이 가까이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렸다.

 

그 사람은 놀란 듯했다. 갑자기 낯 선자가 보자는 식으로 터치하니 눈이 둥그레 지는 것 같았다. 이에 돈을 건네며 이것…”이라고 말을 흐렸다.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주저함이 없이 받았다. 거절할 줄 알았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에서 말을 걸었다. “안양에서 많이 봤습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안양에서요?”라며 놀라는 듯했다. 길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맛있는 것 사 드시고 베낭도 하나 사세요.”라고 말했다. 천막베낭 메고 다니는 것이 안되 보였기 때문이다.

 

대단히 짧은 만남이었다.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돈을 전달하고 몇 마디 건넨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서는 부리나케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그는 안양시내 방향쪽으로 길을 계속 갔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지난 10년동안 보아 왔지만 글로서만 표현했을 뿐 한번도 말을 건네거나 보시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 마침내 그 사람이 지나가길래 용기를 내 본 것이다.

 

그 사람에게 돈을 10만원 주었다. 그런데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이었다. 왜 그럴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구호단체에 10만원을 기부하면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때로 아깝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주고 나서도 후회하는 것이다. 그런데 직접전달 하니 느낌이 다르다. 간접보시 보다는 직접보시가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차라리 그 시간에 차라리…”

 

이제까지 수많은 글을 썼다. 보시에 대한 글도 많이 썼다. 그러나 실천한 경우는 많지 않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이런 사실을 꼬집었다. 그는“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차라리 그 시간에 거리의 걸인이나 도와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라고 글을 남겼다. 2014년도의 일이다.

 

그 사람의 글에 자극받았다. 당장 실천하기로 했다. 그래서 종각역으로 갔다. 노숙자들이 많은 곳이다. 서점 계단에 노숙자들이 고개를 묻고 앉아 있는 모습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햄버거를 준비했다. 돈으로 주기 보다는 먹을 것을 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롯데리아 햄버거 두개와 따뜻한 캔커피 두개를 준비했다. 그리고서 고개를 파묻고 있는 노숙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건냈다.

 

 

그는 처음에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이내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받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에 대하여 티내지말고 보시하라고 했는데https://blog.daum.net/bolee591/16155851’(2014-03-01)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절에 갈 때는 빈손으로 가서는 안된다

 

노숙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돈을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시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노력은 하고 있다. 기회만 되면 보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수행자에 대한 보시가 그렇다.

 

절에 갈 때는 빈손으로 가서는 안된다. 반드시 보시금을 지참해야 한다. 이것이 예의이다. 왜 그런가? 출가수행자들은 신도들의 보시에 의존해서 살기 때문이다. 이것은 2019년 미얀마 담마마마까 국제선원에서 배운 것이다. 혜송스님에게 배운 것이다.

 

이제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다음에도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안양에서 사는 한 이곳저곳에서 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이 기억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내 얼굴을 알아보았을 때 곤란할 것 같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전달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 같다. 가진 것이라고는 천막배낭 하나뿐이다. 그 사람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할 방법이 없다. 직접전달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 돈으로 맛있는 것을 사먹을까? 무엇보다 천막배낭을 내려 놓고 시장에서 파는 베낭을 사서 매고 다닐까? 지나친 욕심이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 사람을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때 마다 돈을 주어야 할까? 참으로 고민된다. 얼굴을 알아볼 까도 염려된다. 나는 여전히 용기가 없는 것 같다.

 

나는 앞으로 그 사람을 이제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만약 내가 그 사람에게 베풀었다고 생각한다면 나의 자만이 될 것이다.

 

형벌 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그 사람이 불쌍해서 돈을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연민의 마음이 된다. 마치 걸인에게 돈을 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사람은 걸인 같지 않아 보인다. 마치 도를 닦는 도인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 추운 날에 얇은 옷을 입고 다닌다. 천막베낭을 지고 나니는 것을 보니 거처가 없는 것 같다. 마치 형벌 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사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처럼 안락하게 살 수도 있는데 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다. 마치 고행하는 것 같다. 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형벌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그 사람을 연민해서 돈을 주었다면 나의 자만이 된다. 이럴 때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유해야 한다. 어떻게 사유하는가? “수행승들이여,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그대들은 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라고 관찰해야 한다.”(S15.11)라고. 이렇게 사유하는 것이 공평하다.

 

나도 한때 저와 같은 사람이었다고

 

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에서 나는 불행하고 가난하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행복하고 부유하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든지 불행하고 가난한 자가 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부자가 될 수도 있다. 가난한 자라고 해서 경멸해서도 안되고 부자라고 해서 질시해서도 안된다. 과거 전생에 다 겪어 본 것이다.

 

 

나는 언제든지 최악의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불행하고 가난한 자는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과거 전생에 다 겪어 본 것이다. 미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불행하고 가난한 자를 보았을 때 보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베푸는 마음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불쌍한 마음을 가져서도 안된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나도 한때 저와 같은 사람이었다.”이라며 평등의 마음을 내야 한다.

 

 

2022-02-1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