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밧지 족의 칠불퇴법(七不退法)

담마다사 이병욱 2022. 2. 15. 11:23

밧지 족의 칠불퇴법(七不退法)

 

 

부처님 가르침은 반드시 수행에 대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직시의 가르침도 있고 우정의 가르침도 있고 심지어 사업에 대한 가르침도 있다. 당연히 국가 운영에 대한 가르침도 있다. 앙굿따라니까야에 실려 있는 밧지인의 일곱 원리에 대한 품이 그것이다.

 

금요니까야모임이 211일 열렸다. 모두 네 개의 경을 합송했다. 그 중의 하나가 국가에서의 불퇴전의 원리란 어떤 것인가?’라는 제목의 경이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 밧싸까라의 경(Vassakārasutta)’(A7.22)에 해당된다.

 

경은 마가다국의 대신 밧싸까라의 이름을 딴 것이다. 마가다 국왕 아자따쌋뚜가 밧지 족을 멸망시키고자 전쟁을 하려 하는데 먼저 대신을 시켜서 부처님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밧지 족을 결코 멸망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일곱 가지 이유가 있다. 이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밧지 족이 자주 모이고 자주 만나는 것이다.

둘째, 밧지 족이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일을 하는 것이다.

셋째, 밧지 족이 공인된 법을 수용하는 것이다.

넷째, 밧지 족이 노인을 공경하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다섯째, 밧지 족이 여인들을 폭력으로 제압하지 않는 것이다.

여섯째, 밧지 족이 탑묘를 공경하고 공물을 올리는 것이다.

일곱째, 밧지 족이 아라한을 공경하고 여법하게 수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곱 가지에 대하여 전재성 선생은 칠불퇴법(七不退法)이라고 했다. 이는 “satta aparihāniye dhamme”에 대한 것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는 이를 일곱 가지 불퇴전의 원리라고 번역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이라고 번역했다.

 

칠불퇴법은 일곱 가지 번영의 원리라고 말 할 수도 있다. 이는 경에서 밧지 족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되지 퇴전은 기대되지 않는다.”(A7.22)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자주 모여야 하는 이유

 

첫째, 자주 모이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자주 만나는 것이다. 모이고 만남이 있어야 대화가 된다. 이와 같은 모임을 상가라고 한다. 전재성 선생에 따르면 정치적 모임도 상가라고 한다.

 

인도의 경우 국회도 상가라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밧지족 사람들은 국회와 같은 모임을 만들어서 각종 사건과 사고를 다루었음을 알 수 있다. 무언가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주 모여야 하는 것이다.

 

모임은 모여야 성립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임이라고 한다. 만일 모이지 않고 개별적인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중구난방이 되어 버릴 것이다. 또한 각자도생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럴 때 외적이 침입하면 어떻게 될까? 나라는 쉽게 망해 버릴 것이다.

 

무엇이 화합의 모임인가?

 

둘째, 화합하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 선생은 이에 대하여 전원일치의 화합이라고 했다. 마치 상가에서 전원일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과 같다. 이는 화합승가에서 가능한 것이다. 어떻게 전원일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어떤 모임이든지 회의를 하다 보면 이견이 없지 않을 수 없다. 상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의 상가에서는 전원일치 합의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율장에 따르면 백사갈마로 가능하다. 세 번 물어서 이의가 없으면 통과시키는 것이다.

 

이견이 있어서 의견이 팽팽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경우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된다. 율장을 보면 상가에서도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됐다. 그렇다면 상가에서는 왜 갈마를 하는 것일까?

 

상가에서 갈마를 하는 것은 부처님의 법과 율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다. 수행승이 법과 율을 어겼을 때 상가회의가 열리는데 이는 비법을 쳐내고 정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 대부분은 법과 율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설한 법과 부처님이 내린 율이 판단 기준이 된다.

 

모임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불화의 모임, 화합의 모임, 정진의 모임을 말한다. 여기서 최악은 불화의 모임이다. 최상은 정진의 모임이다. 일반적으로 모임은 화합의 모임을 말한다.

 

불화의 모임은 어떤 것일까? 이는 논쟁을 일삼고 서로 입에 칼을 물고 찌른다.”(A3.93)라고 표현된 것에서 알 수 있다. 모임은 불화하기 위해서 모인 것은 아니다. 모임은 화합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유와 물처럼 융화하며 서로 사랑스런 눈빛으로 지낸다.”(A3.93)라고 했다. 이것이 화합의 모임이다.

 

최상의 모임은 정진의 모임이다. 어떤 모임인가? 이는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열심히 정진한다.”(A3.93)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이는 종교모임에서 가능한 것이다.

 

모임은 싸우기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 모임은 화합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이왕이면 정진의 모임이면 최상이다. 이는 장로수행승이 사치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탈선을 멍에로 꺼리고 멀리 여읨을 선호하고 도달하지 못한 것에 도달하고,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고,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열심히 정진한다. 그의 후계자도 자각적으로 본 것을 따라 한다.”(A3.93)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모범이 되는 자를 보고 따라 하고자 했을 때 정진의 모임이 됨을 말한다.

 

지도자가 여법하지 않으면

 

셋째, 법을 지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공인되지 않은 것은 시설하지 않고, 공인된 것은 어기지 않고 예전에 공인된 밧지 국의 법을 수용하여 따른다.”(A7.22)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법치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것이다. 그런 법은 어떤 것일까?

 

불교에서는 담마를 법이라고 한다. 담마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지만 한자어로 표현하면 법()이다. 그런데 초기경전을 보면 담마는 때로 담메나(dhammena)나 담미까(dhammikā)의 형태로 사용된다. 이 말은 여법하게또는 법답게로 번역되는데 영어로는‘Justly, righteously’의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담마는 정의로운 법에 대한 것이다.

 

법치국가에서 지도자가 정의롭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법을 어기게 될 것이다. 왜 그런가? 이는 지도자가 여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가 잘못된 길로 가기 때문에 모두가 잘못된 길을 따르네.(A4.70)라고 했다.

 

정의롭지 못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이는 왕들이 정의롭지 못하게 되면, 왕자들도 정의롭지 못하게 되고, 왕자들이 정의롭지 못하게 되면, 사제들과 장자들도 정의롭지 못하게 되고, 사제들과 장자들이 정의롭지 못하게 되면, 도시와 지방의 백성들도 정의롭지 못하게 된다.”(A4.70)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래물도 맑다. 지도자가 정의롭지 못하면 나라 전체가 정의롭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행성들도 바르게 돌지 못한다고 했다. 우주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계절과 년도가 바르게 돌지 못하면, 바람이 바르게 불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불면, 신들이 분노하게 된다. 신들이 분노하면, 비가 바르게 내리지 않게 된다.”(A4.70)라고 했다.

 

정의롭지 않은 왕이 출현하면 나라에 재앙이 일어난다. 여법하지 않을 때 국민의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 부처님은 공인되지 않은 것은 시설하지 않고, 공인된 것은 어기지 않고 예전에 공인된 밧지 국의 법을 수용하여 따른다.”(A7.22)고 했다. 밧지 족들이 정의로운 법치국가임을 말한다.

 

노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

 

넷째,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왜 번영의 조건이 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노인의 지혜이다.

 

노인에게는 지혜가 있다. 오늘날과 달리 옛날에는 농경시대였다. 농사짓는 것에 있어서는 노인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인에게는 언제 파종해야 할지 언제 수확해야 할지에 대한 지혜가 있었을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해도 그것은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들은 몸으로 체득한 지혜가 있다. 산전수전 다 겪어 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에 해당된다.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이 겪어 보지 못한 것을 먼저 겪어 본 사람들이다. 이런 이유로 노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래서 경에서도 부처님은 공양하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A7.22)라고 했을 것이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

 

다섯째, 여인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어떠한 훌륭한 가문의 여인들과 훌륭한 가문의 소녀들이라도, 그녀들을 끌어내어 폭력으로 제압하지 않습니다.”(A7.22)라고 했다.

 

경에서 훌륭한 가문의 여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kulitthiyo’라는 말을 번역한 것이다. 영어로는 ‘A woman of good family, a lady, noblewoman’의 뜻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남의] 집안의 아내라고 번역해 놓았다.

 

빠알리어 꿀라(kula)라는 말은 ‘a family; clan; caste’의 뜻이다. 꿀라가 단독으로 쓰였을 때는 가족이나 종족, 카스트의 뜻이 된다. 그런데 ‘kulitthiyo’로 쓰이면 훌륭한 가문의 여인들이 되고, ‘kulakumāriyo’로 쓰이면 훌륭한 가문의 소녀들이 된다. 이런 여인들을 폭력으로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고귀한 가문의 여인들만 보호의 대상이 될까? 모든 종족의 여인들도 해당될 것이다. 모든 카스트의 여인들도 대상이 될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평등사상에 기반한다. 또한 다양성에 기반한다.

 

최근 유튜브에서 법인스님 이야기를 들었다. 이는 조현이 만난 사람들에 나온 것을 들은 것이다. 법인스님은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떤 다양성인가? 남녀의 경우 차별이 없는 다양성도 해당된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차별성을 강조하는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차별성을 강조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긴장과 갈등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민족의 차별, 종교의 차별, 지역의 차별 등 갖가지 차별이 있을 때 소수자 또는 소외자 그룹은 보호받지 못한다.

 

어떤 사회가 선진사회인가? 당연히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선진사회이다. 인종, 종교, 지역뿐만 아니라 여성도 존중받는 사회가 다양성의 사회이다. 이렇게 본다면 밧지 족은 다양성의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여성이 보호받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다양성이 존중되면 여성은 보호 받는다.

 

성자들의 무덤이 있는 곳은

 

여섯째, 탑묘를 공경하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전재성 선생은 탑묘가 있는 곳을 성스러운 장소로 설명했다. 성자들의 무덤이 있는 곳은 경건한 장소임을 말한다.

 

초기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탑묘에서 머물기를 좋아했다. 부처님은 탑묘에서 명상하기를 즐겨 했는데 이는 탑묘가 경건하고 성스러운 장소임을 말한다. 이는 오늘날 사원에 머무는 것과 같은 것이다.

 

탑묘가 있는 곳은 성스러운 장소이기 때문에 성역이기도 하다. 세상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율장에서도 확인된다.

 

율장 대품을 보면 출가시켜서는 안될 사람의 유형이 있다. 그 중에 감옥문을 부순 도적이 있다. 탈옥한 자가 출가하고자 했을 때 이를 받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탈옥자가 왜 출가하고자 했을까? 이는 빔비사라왕이 수행자 싸끼야의 아들들 가운데 출가한 자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도 할 수 없다.”(Vin.I.75)라고 말한 것에서 기인한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 당시 사원은 사실상 치외법권 지역이었고 성역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탑묘가 있는 곳은 성역과도 같다. 성자의 무덤이 있는 곳도 성역이다. 밧지 족의 사람들은 어떠한 탑묘들이라고 해도 안으로나 밖으로나 공경하고, 존중하고, 존경하고, 공양하고, 그리고 여법하게 공물을 바친다.”(A7.22)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성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성자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한 번영만 있고 퇴전이 없음을 말한다.

 

아라한을 공경하는 것은

 

마지막으로 일곱째, 아라한 공경에 대한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것이다. 아라한은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여 궁극의 경지에 이른 성자를 말한다.

 

아라한은 복전이다. 아라한에게 공양하면 과보가 기대되기 때문에 복밭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복전은 공양대상이기도 하지만 보호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밧지족들은 거룩한 님에 대하여 여법한 보호와 수호와 비호를 잘 갖춘다.”(A7.22)라고 했다.

 

경에서는 보호, 수호, 비호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이는 ‘rakkhāvaraagutti’를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은 ‘rakkhā(protection)+ āvaraa(shutting off)+ gutti(guard)’의 뜻이다.

 

니까야에서는 비슷한 말이 나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어휘가 매우 풍부함을 말한다. 그런데 전재성 선생에 따르면 번역어의 한계가 있다고 했다. 적합한 단어가 많지 않음을 말한다. 빠알리어 굿띠(gutti)에 대하여 비호라고 번역했는데, 이 말은 부정적 의미가 있어서 나중에 바꾸겠다고 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살피고 감싸고 보호해서라고 번역했다.

 

아라한을 공경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하는 것과 같다. 가르침을 공경하는 나라는 어떤 침략행위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라는 지켜야 할 것이다. 군대는 지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방(國防)이라고 한다.

가르침을 공경하는 나라를 힘으로 정복할 수 없을 것이다. 끝까지 지켜 내려 할 것이다. 이는 아소까 비문에서 확인된다. 아소까 대왕은부처님의 담마만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의 평화와 행복을 가져온다.”라고 했다. 그래서 담마에 의한 정복을 천명했다. 부처님 가르침이 좋은 줄 안다면 침략자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려 할 것이다.

 

간계나 분열을 통해서라면 몰라도

 

부처님은 밧지 족이 멸망할 수 없는 이유를 일곱 가지 들었다. 이 말은 번영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도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밧지 족의 국가는 공화제와 같은 것이다. 이는 의회가 있어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한 것과 같다. 상가와 같은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가는 부처님의 상가도 있지만 정치적 모임도 상가라고 말한다. 오늘날 의회를 상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런 모임에서는 모든 것이 민주적이다. 그리고 화합하는 모임이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모임이고, 노인이 공경 되는 모임이고, 조상이 숭배되는 모임이다. 무엇보다 부처님 가르침이 존중되는 모임이다. 부처님은 이런 모임이 있는 밧지 족에 대하여 번영만이 기대되지 퇴전이 기대되지 않는다.”(A7.22)라고 했다.

 

여법한 모임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자가 리더가 되었을 때 모임은 무너진다. 마찬가지로 정의롭지 못한 자가 지도자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들이 강을 건너는데, 우두머리 황소가 잘못 가면, 지도자가 잘못된 길을 가기 때문에 모두가 잘못된 길을 따르네.”(A4.70)라고 했다.

 

밧지 족처럼 일곱 가지 불퇴전의 법이 있으면 멸망할 수 없다. 그러나 외적 또는 내적 요인에 따라 망할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마가다의 대신 밧싸까라에게 아자따쌋뚜는 간계나 분열을 통해서라면 몰라도 전쟁으로 정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A7.22)라고 말했다.

 

내가 경전을 믿고 의지하는 이유

 

밧지 족의 칠불퇴법은 사회학이나 정치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다양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칠불퇴법을 보면 오늘날 적용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시대가 변해도 진리는 변함없음을 말한다.

 

스마폰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정신적 능력까지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문명은 물질문명은 관계없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고도의 정신문명은 이미 축의 시대에 완성되었다. 이는 니까야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경전을 믿고 의지하는 이유에 해당된다.

 

 

2022-02-1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