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부처님을 수행도반으로 삼아

담마다사 이병욱 2022. 2. 19. 07:12

부처님을 수행도반으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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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첫번째 금요니까야모임에서 두 번째로 합송한 것은 친구에 대한 경이다. 어떤 친구일까? 핵심 게송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그에게 비밀을 고백하면,
그는 비밀을 지켜주고,
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가난할 때 경멸하지 않네."(A7.36)

앙굿따라니까야에 있는 벗의 경1(Mittasutta)’(A7.36)에 있는 가르침이다. 이쯤 되면 절친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친구가 있을까?

친구도 친구 나름이다. 친구라 하지만 다 똑같은 친구가 아니다. 친소관계가 있다. 단지 친한 정도를 넘어 절친 사이도 있다. 이런 친구에게는 비밀을 털어 놓아도 될 것이다. 비밀을 지켜 줄 것이기 때문에.

비밀을 지켜 주지 않으면 절친이라 할 수 있을까? "이건 비밀인데"라며 비밀을 털어 놓았을 때 비밀을 지켜 주지 않으면 비밀을 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절친대상에서 제외된다.

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말라고 했다. 이것도 절친 조건에 들어 간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재난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라고 번역했다. 어떤 케이스가 있을까? 병에 걸렸거나 빚을 지거나 송사에 휘말렸을 때 등 어려움에 처했을 때이다. 이를 일시적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럴 때 버리지 말라고 했다. 마치 물에 빠진 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과 같다.

다음으로 가난할 때 경멸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망했더라도 멸시하지 않는다."라고 번역했다. 불행이 오래 지속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경우 일방적으로 도움만 주게 되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손익을 따지는 비즈니스 관계라면 손절 대상일 것이다.

경에서 절친 조건은 모두 일곱 가지이다. 법수가 일곱이기 때문에 일곱 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1)주기 어려운 것을 주고, 2)하기 어려운 것을 하고, 3)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 4)비밀을 고백하고, 5)비밀을 지켜 주고, 6)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7)가난 할 때 경멸하지 않는다."(A7.36)라고 했다.

친구 사이는 이해관계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익이 되면 사귀고 이익이 되지 않으면 끊는다면 비즈니스 관계라고 보아야 힌다. 주는 것만큼 받는 것이다. 남녀 연인 관계도 어쩌면 비즈니스 관계일지 모른다. 기브앤테이크(Give & Take)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남녀관계는 절친관계가 되기 힘들다고 본다.

사랑과 우정은 다른 것이다. 또한 애정과 우정은 다른 것이다. 남녀간의 우정은 애정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래서 자애수행에서는 연인이나 부부사이의 관계는 제외된다.

청정도론 제9장에 자애수행이 있다. 어느 대신 아들이 장로에게 "존자시여, 어떤 사람들에 대해 자애를 닦아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장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애를 닦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재가자는 어떻게 했을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그는 자기의 아내를 사랑했다. 그가 그녀에 대하여 자애를 닦으면서 밤새도록 벽과 싸워야 했다."(Vism.9.6)라고 했다.

재가자는 왜 벽과 싸웠을까? 그것은 대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연인을 대상으로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이라며 자애의 마음을 방사했다면 애정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를 자애수행의 실패로 본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특히 이성에 한정하여 닦아서는 안된다.”라고 했다.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죽은 자이다. 그래서 또한 죽은 사람에 대하여 닦으면, 근본삼매는커녕 근접삼매도 얻지 못한다.”(Vism.9.6)라고 했다.


이성 간에 친구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친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부부사이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절친의 일곱 가지 조건을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도 부부 나름이다. 부부사이에도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와 절친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절친조건 일곱 가지가 결정적이다. 그렇다면 친구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는 디가니까야 31번 경에 설명되어 있다. 친구의 조건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도움을 주는 사람은 좋은 친구라고 알아야 하고, 2)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 같은 사람은 좋은 친구라고 알아야 하고, 3)유익한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좋은 친구라고 알아야 하고, 4)연민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친구라고 알아야 합니다.”(D31)

좋은 친구(
善友)의 조건에 대한 것이다. 선우가 있다면 악우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일까? 경에서는 "1)무엇이든 가져가기만 하는 친구, 2)말만 앞세우는 친구, 3)듣기 좋은 말만 하는 자, 4)나쁜 짓거리에 동료가 되어주는 자.”(D31)라고 되어 있다.

선우와 악우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로 가를 수 있다.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자가 친구이다. 그러나 나쁜 짓거리에 동료가 되어 주는 자는 악우라고 했다.

술친구도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사회에서는 통용될지 모르지만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악우에 해당된다. 왜 그런가? 경전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1) 방일의 근본이 되는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 있는 것에 취할 때에 동료가 되어주고, 2)때가 아닌 때에 거리를 배회할 때에 동료가 되어주고, 4)흥행거리를 찾아다닐 때에 동료가 되어주고, 4)방일의 근본이 되는 노름에 미칠 때에 동료가 되어줍니다.”(D31)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불교인의 입장에서 술친구는 선우가 될 수 없다. 술친구는 악우에 해당된다. 왜 그런가? 불교에서는 오계가 있기 때문이다. 불음주계가 있기 때문에 술친구는 선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만나기만 하면 술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모임이 있을 때도 술자리가 마련된다. 등산모임을 갖고 나서도 뒷풀이 할 때 역시 술자리가 마련된다. 그렇다고 모두 악우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불음주계 하나만 어겼을 뿐이다.

 


불교에서 불음주계는 정언명령이 아니다. "술 마셔서는 안된다."가 아니라, "방일의 근본이 되는 곡주나 과일주 등 취기가 있는 것을 삼가는 학습계율을 지키겠습니다."가 된다. 지금 비록 불음주계를 어긴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끊을 날이 있을 것이다. 불음주계는 평생에 걸쳐 단계적으로 완성된다.

친구의 조건이 있고 절친의 조건이 있다. 또 악우의 조건도 있다. 그런데 앙굿따라니까야에는 수행친구 조건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벗의 경2(Bhikkhumittasutta)'(A7.37)에 있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어떤 것일까?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1)
사랑스럽고, 2)성실하고, 3)공경받을만 하고,
4)
가르침을 주고, 5)충고를 받아들이고,
6)
심오한 대화로 이끌고,
7)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몰아가지 않는다."(A7.37)

이와같은 일곱 가지 조건을 갖춘 친구를 수행도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 그런가? 가르침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이는 세속적 의미의 친구나 절친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수행도반 조건 중에 "심오한 대화로 이끌고"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교학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수행에 대한 것이다.

앙굿따라니까야에서 교학승에 대해서 "심오한 의취를 지혜로 꿰뚫는 놀라운 사람들”(A6.46)이라고 했다. 여기서심오한 의취(gambh
īra aṭṭhāpada)는 덮여있고 숨어있는 온, , 계를 말한다. 다름아닌 오온, 십이처, 십팔계의 가르침을 말한다. 부처님이 우리 몸과 마음을 오온으로 분석하여 관찰한 것이다.

그 사람이 지혜로운지는 토론해 보면 알 수 있다. 토론하다 보면 심오한 얘기를 하게 되는데 이는 수행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사람들은 사람과 함께 논의 하면서 이와 같이이 존자는 탐구하는 자세와 말솜씨와 질문하는 것에 따르면, 이 존자는 지혜가 열악하고 이 존자는 지혜가 없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존자는 심오하고 승묘하고 사유의 영역을 뛰어넘고 미묘하여 오직 슬기로운 자만이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말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존자는 가르침을 설할 때에 간략하고 혹은 상세하게 설명하고, 교시하고, 시설하고, 확립하고, 개현하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밝힐 힘이 없다.’라고 안다.” (A4.192)라고 설명했다.

심오한 대화(gambh
īra kathā)로 이끄는 자는 수행도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도반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에서는 거절하더라도 도반으로 삼고, 사귀고, 섬겨야 한다”(A7.37)라고 했다. 정진의 모임에서 쫓겨날지라도 떠나지 말아야 함을 말한다. 왜 그런가? 좋은 친구는 청정한 삶의 전부와도 같기 때문이다.

세싱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지인도 있고 친구도 있다. 절친도 있고 수행도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인은 많지만 친구는 드물다. 절친은 더욱더 드물다. 수행도반 역시 드믈다. 이런 때 가장 좋은 친구는 누구일까? 부처님이다.

부처님이 왜 좋은 친구인가?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부처님은 "세존을 벗으로 삼아(Mamañhi kaly
āamitta)”(S3.18)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은 절친이 될 수 있고 수행도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청정한 삶의 전부와 같다."(S3.18)라고 말할 수 있다. 친구가 없을 때는 부처님을 수행도반으로 삼아 정진해야 한다

2022-02-1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