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암송

새벽에 행선과 암송으로 겟투(Get Two)

담마다사 이병욱 2022. 3. 25. 08:20

새벽에 행선과 암송으로 겟투(Get Two)


지금이 몇시인지 모른다. 잠에서 깨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잠이 부족하다면 더 자야할 것이다. 그러나 새벽잠은 꿈에서 헤매기 쉽다. 이럴 땐 차라리 앉아 있는 것이 낫다.

앉아 있으면 멍때리기 하기 쉽다. 이런 것도 명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앉아 있느니 차라리 서 있는 것이 낫다. 서서 무엇을 해야 할까? 경행 하는 것이다. 비록 다섯 보밖에 지나지 앉은 방이지만 왔다갔다하다 보면 편안해짐을 느낀다.

경행을 하면서 암송한다. 어제 외운 게송을 포함하여 처음부터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다. 매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전에 외운 게송은 즉각즉각 떠오른다. 그 많은 글자가 떠오르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아마 스토리텔링식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자주 암송하다 보니 사진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외운 게송에서 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캄캄하다. 단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스마트폰을 열어 보아야 한다. 열어 보니 "마 망(m
ā ma)"이라는 단어이다. 이는 "나로 하여금"이라고 번역된다.

"
사만타 다지닝 디스봐
윳땅 마랑 사바하낭
윳다야 빳쭛갓차미
마 망 타나 아짜바이"

"Samant
ā dhajini disvā,
yutta
māra savāhana;
Yuddh
āya paccuggacchāmi,
m
ā ma hānā acāvayi."

"
코끼리 위에 올라탄 악마와 더불어,
주변에 깃발을 든 군대를 보았으니,
나는 그들을 맞아 싸우리라.
나로 하여금 이곳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라."(Stn.444)

 


어제 외운 게송이다. 숫따니빠따 빠다나경 25개 게송에서 18번째 게송이기도 하다. 외우기도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게송에서는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기 전 불퇴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천리길도 한걸음이고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다. 긴 길이의 경도 한게송한게송 외우다 보면 어느덧 종착지가 보인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것도 지나고 나면 가능한 것이 된다. 이 세상에서 게송 외우기만큼 짜릿한 것이 어디 있을까?

게송 외우기는 강한 성취감을 수반한다. 글쓰기 보다 몇배 강렬한 것 같다. 긴 길이의 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했을 때 그 상쾌함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단어 하나가 생각이 나지 않아 스마트폰을 열어 보았다. 외울 것이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계를 보니 4 5분이다. 그리고 지금 엄지를 치고 있는 시각은 4 38분이다. 새벽에 암송하기와 글쓰기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암송할 때와 글 쓸 때는 세상의 근심과 걱정을 잊어버린다. 왜 그럴까? 집중하기 때문이다. 암송할 때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집중이다. 글을 쓸 때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것 자체가 집중이다. 쓸데없이 유튜브나 뉴스를 본다면 번뇌만 일어날 뿐이다.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와 암송하기 만한 것이 없다. 이중에서 가장 힘든 것은 게송을 외우는 것이다.

빠알리 게송을 외우는 것은 쉽지 않다. 큰 결심을 해야 한다. 목표를 정해 놓고 한게송한게송 외우며 따박따박 나아가야 한다. 이런 과정은 차라리 고행에 가깝다. 감각을 즐기는 자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 것이다.

무의미해 보이는 것에 의미가 있다. 행선은 겉보기에 아무런 의미 없는 동작처럼 보인다. 발을 천천히 내딛는 동작이 마치 학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오체투지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양이 차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행선에는 심오한 그 어떤 것이 있다.

발을 딛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마치 우주를 딛는 것과 같다. 발을 들어서 딛을 때 우주를 성큼성큼 걷는 것과 같다. 한발한발 딛을 때 마다 정신과 물질,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생겨난다. 이는 다름 아닌 연기법이다.

연기법이란 무엇인가? 문자그대로 조건발생이다. 그것도 함께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빠띳짜사뭅빠다(paticcasamuppada)라고 한다. 동시에 함께 조건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 있게 된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불가사의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한마디로 단정한다면 잘못이기 쉽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고 했을 것이다.

행선하면서 한발을 내딛는 것은 우주를 딛는 것과 같다. 수많은 원인과 조건이 작용해서 한걸음 딛는 것이다. 한걸음한걸음 우주를 걸을때 마다 우주를 성큼성큼 걷는 것과 같다.

경행하면서 암송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를 겟투(Get Two)라고 말할 수 있다. 담배 이름에도 겟투가 있다. 일석이조이고 동시에 두마리 토끼를 잡는 것과 같다.

경행하면서 암송하면 위빠사나도 되고 사마타도 된다. 발을 뗄 때 ""하고 소리가 나는데 그때 괴멸을 본다. 이것은 위빠사나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암송할 때 기억을 불러오는데 이것은 집중에 해당된다. 그래서 사마타가 된다. 경행하면서 암송하면 겟투가 된다.

새벽시간을 사랑한다. 새벽에는 암송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사방이 고요할 때 홀로 깨어 한발한발 내딛으며 괴멸을 관찰하면서 암송하면 우주에 나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이 하루종일 지속됐으면 좋겠다.


2022-03-2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