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무침에 도전하고
오늘 오전에 자료를 이메일로 발송함으로써 일이 끝났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3일 걸렸다. 고객이 재촉하는 바람에 속도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첫 날 화요일에는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납기를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밤 늦게까지 아트웍 설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감이 있으면 가슴이 설레인다. 수입과 직결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는다. 일터로 향할 때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혼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일인사업자라고 말한다. 어느 덧 18년 되었다.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한다. 혼자 일하면 커피도 혼자 타 마셔야 하고 쓰레기통도 혼자 비워야 한다. 전자세금계산서도 혼자서 처리하고, 부가세 신고도 혼자서 한다. 설계자이면서 경리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내를 사무실에 오게 한다. 돈 관리에 개입하면 설 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출금 통장도 직접 관리한다. 그러다 보니 보시하는 것도 자유롭다. 비교적 큰 금액이 입금되면 평소 보시하고픈 사람에게 보시한다.
일하다 막히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옆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어떻게든 홀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도 안되면 멘토에게 전화를 건다. 신기하게도 전화 한통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멘토는 나보다 열 살이 아래이다. 그러나 PCB설계에 관한 한 그는 프로페셔널이다. 멘토가 있어서 든든하다.
나홀로 일하기 때문에 밥도 혼밥한다. 점심 때 홀로 밥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요즘은 종종 집에 와서 먹는다. 일인사업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오늘 점심 때 쪽파무침을 만들었다. 어제 다듬어 놓은 것을 활용했다. 벼룩마트에서 한단 사 놓았는데 양이 많다. 큰 양푼으로 가득하다. 손질하는 데만 한 시간 이상 걸렸다.
스스로 주부초단이라고 말한다. 국이나 찌게 끓이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제철에 나는 나물 등을 무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2단 정도 될 것이다. 아직까지 빨래는 하지 않는다. 빨래까지 손 댄다면 3단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쪽파를 무치기 위해 유튜브를 보았다. 한번 보고서 파악이 됐다. 먼저 뜨거운 물에 데쳐야 한다. 뿌리부분을 먼저 투입한다. 약 10초 뒤에 나머지를 투입한다. 이렇게 30초가량 데친다.
데친 것은 차가운 물에 씻는다. 꼭 짜서 물기를 제거해 놓으면 1차 작업은 끝난다. 다음으로 양념 만드는 것이다.
양념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동태 찌게 끓일 때와 다르지 않다. 다만 식초가 추가될 뿐이다. 고추장, 고추가루, 마늘, 깨, 참기름, 올리고당은 기본 양념이다. 여기에 시골된장을 곁들였다. 유튜브에서는 소개되지 않지만 된장이 들어가면 그윽한 맛이 난다.
준비된 양념으로 버무렸다.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조물조물 비볐다. 맛은 어떨까? 예상했던 대로 감칠 맛이 났다. 갖은 양념이 들어가서일까 깊고 그윽한 맛이다. 이 정도면 합격점은 되는 것 같다.
점심 때 고등어를 준비했다. 어제 저녁 이마트에서 사 온 것이다. 마트 폐장시간이 가까워지면 할인해서 파는데 노르웨이산 고등어가 49% 할인되어서 두 마리를 2,880원 주고 산 것이다. 한마리를 에어프라이어에 구웠다. 노릇노릇 기름이 흐른다. 식당에서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파트에 별도의 식탁이 없다. 주방에 딸린 식탁이 있는데 미닫이 식으로 되어 있다. 작은 평수에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설계되었을 것이다.
한 상 차려 놓았다. 쪽파무침과 고등어, 김, 된장국이 전부인 소박한 식단이다. 고등어 한마리는 너무 많아 반만 먹었다. 나를 위한 공양이다.
일인사업자는 홀로 일 수밖에 없다. 홀로 일하고 혼밥 하는 등 나홀로의 삶이다. 문제가 발생해도 홀로 처리해야 한다. 컴퓨터에 문제가 있으면 검색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만일 내가 정년때까지 조직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자가 되었을 것이다.
공사직에서 정년퇴임 한 사람들이 있다. 대게 지위가 높은 상태에서 퇴직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해도 지시하는 것에 익숙할 것이다. 하찮고 사소한 것은 부하들이 알아서 해 줄 것이다. 당연히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청소할 일이 없을 것이다. 세금과 관련된 일도 입출금과 관련된 일도 담당자가 하게 된다. 심지어 운전도 기사가 해 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갑자기 퇴출되었거나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마 먹는 것밖에 달리 할 것이 없는 무능력자가 될 것이다.
세상사는 문제의 연속이다. 살다보면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진짜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생, 노, 병, 사 같은 것이다. 여기에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취온고도 있다. 이른바 팔고를 말한다.
팔고 중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괴로운 것은 원증회고라고 본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남에 따른 괴로움이다. 그것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운에 달려 있다. 그래서 행운이 항상 함께 하기를 바란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불교를 종교로 택했다. 부처님 가르침에는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해법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팔만사천 가르침에 답이 있다. 이런 이유로 경전을 근거로 해서 글을 쓴다. 요즘에는 게송을 외워서 경을 암송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니까야 경전 읽기에 돌입했다. 일터에서는 디가니까야를 읽고, 집에서는 맛지마니까야를 읽는다.
일인사업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홀로 하는 것에 익숙하다. 시킬 사람도 없고 지시할 사람도 없어서 홀로 일처리 한다.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홀로 해결한다. 그러다 보니 문제해결 능력이 생겨나는 것 같다. 음식만들기에 도전해 보는 것도 그런 것중의 하나이다.
오늘 쪽파무침을 만들어 나를 위한 공양을 했다. 이렇게 한 것은 도전해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남자라고 해서 금기시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부딪쳐 보면 해결 방법이 있다. 모든 것이 그렇다.
나를 위한 진정한 공양은 담마와 함께 하는 것이다. 담마를 읽고 쓰고 암송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양 아닐까? 불단에 시물을 올려 놓고 예배하는 것도 좋지만 진정한 공양은 담마를 실천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수행자나 수행녀나 남녀 재가신자가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고 올바로 실천하고, 원리에 따라 행한다면, 그것이 최상의 공양으로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경배하고 예경하고 숭배하는 것이다."(D16)
2022-03-3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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