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후기

"나 어디로 가는 거야?" 안락사 영화 '완벽한 가족'

담마다사 이병욱 2022. 4. 2. 08:53

"나 어디로 가는 거야?" 안락사 영화 '완벽한 가족'


나의 지나 세월을 돌아본다. 한평생 엔지니어로 살았다. 꿈속에서도 회로설계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 중에서 PCB설계는 제2의 천성이 된 듯하다.

직업이란 무엇일까? 반복적 행위의 연속이다. 반복적 행위를 업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습관적 업이 되었다. 죽음에 임박할 때 내생을 결정할 정도로 강하게 작용할 것이다.

어제 저녁 케이블채널에서 영화를 봤다. 운 좋게 처음부터 봤다. 영화제목은 '완벽한 가족'이다. 부제로 '어느 가족의 행복한 이별 이야기'로 되어 있다. 안락사에 대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어머니는 몹쓸 병에 걸렸다. 사지가 마비되어 호스로 된 관으로 연명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했다. 인터넷에서 구입한 죽음의 약물을 마시고 죽고자 한 것이다.

어머니는 죽기 전에 가족을 초대한다. 멀리 사는 두 딸의 가족이 도착하다. 어머니의 절친도 온다. 죽음을 앞두고 가족들은 파티를 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유쾌한 식탁을 갖는다.

 


다음날 죽음의 의식이 거행된다. 두 딸은 어머니의 양옆에서 꼭 안아 준다. 아버지는 지긋이 바라본다. 마침내 어머니는 죽음의 독배를 들었다.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머니는 "나 어디로 가는 거야?"라며 묻는다.

어머니는 독배를 마셨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족이 보는 앞에서 자살한 것이다. 팔의 힘이 있을 때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다. 가족들은 어머니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그래서 영화제목을 '완벽한 가족'이라고 했고, 부제로서 '어느 가족의 행복한 이별 이야기'라고 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어디로 간 것일까?

 


영화속 대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주마다 안락사하는 것이 다르다. 어느 주에서는 불법이지만 어느 주에서는 수용된다. 그러나 아무리 가족의 동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911에 신고하면 실행되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는 죽어서 어디로 갔을까?

최근 자타카 교정을 보았다. 부처님이 보살로 살 때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보살은 수많은 전생을 살았다. 사아승지겁 하고도 십만겁을 산 것이다. 그 동안 수많은 생이 있었다. 그런데 보살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십바라밀을 닦아 부처가 되기를 서원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재생을 말한다. 환생과는 다른 것이다. 재생은 업에 따른 정신과 물질의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지만 환생은 어떤 변치 않는 영혼이 있어서 몸만 바꾸는 것으로 설명된다. 재생하게 되면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뭇삶은 행위의 소유자이고
행위의 상속자이고
행위를 모태로 삼는 자이고
행위를 친지로 하는 자이고
행위를 의지처로 하는 자로서
그가 지은 선하거나 악한 행위의 상속자이다.”(A10.216)

나는 업의 상속자이다. 내가 죽으면 업이 윤회한다. 그래서 업생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반조하는 것에 대하여 업자성정견 (kammassakata-samm
ādiṭṭhi)이라고 한다.

업자성정견은 부처님도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먼저 "나는 올바른 견해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M117)라고 말씀하셨다. 두 가지 정견이 있음을 말한다. 하나는 출세간적 정견이고 또 하나는 세간적 정견이다. 전자는 사성제를 말하고 후자는 업보를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수행승들이여, 나는 올바른 견해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번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일정한 공덕이 있어도 집착의 결과가 따르는 올바른 견해가 있고, 수행승들이여, 번뇌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뛰어넘고, 고귀한 길의 경지에 드는 올바른 견해가 있다.”(M117)

업자성정견은 세간적 정견이다. 이를 번뇌에 물든 정견이라고 한다. 윤회하는 삶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업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어머니는 "나 어디로 가는 거야?”라고 말했다. 악처에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비록 자신의 의지로 자살했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운명이다. 그래서 죽음의 게송을 보면 "나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나의 죽음은 확실하다.(J
īvita me aniyata Maraa me niyata)"라고 했다. 그때가 언제 될지 알 수 없다. 자타카 게송에서는 "내일 죽을지 누가 알겠는가?"(Jat.529)라고 했다.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타카에서 보살은 이렇게 말한다.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 뭇삶들은 젊을 때나 늙을 때나 죽는다는 것은 매한가지 아닐까요? '이 자는 젊을 때 죽을 것이다. 저 자는 늙을 때 죽을 것이다.'라는 표지가 어떠한 자의 손이나 발에도 없습니다. 저는 제가 죽을 때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출가하겠습니다."(자타카 509)

보살의 출가이유를 보면 죽을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이 죽을 때를 안다면 굳이 출가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왜 그럴까? 만약 수명이 백세로 보장되어 있다면 노년출가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수명이 보장되어 있다면, 젊어서는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삶을 살다가 수행은 나이 들어서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노년출가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보살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한다.

"
사람들은 내일이 남았다고
다음날이라고 부질없이 보낸다.
그 미래는 없는 것이라고 안다면,
어떤 현자가 생겨난 기회를 놓치리."(자타카 509)

미래는 없는 것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 삶만 있을 뿐이다. 지금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떤 마음일까?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진실해 질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감각적 욕망이 일어날까?

보살은 수많은 생을 초월의 길로 살았다. 최상의 초월의 길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보살이 토끼로 살았을 때는 불에 뛰어 듦으로서 사냥꾼의 밥이 되었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야차의 밥이 되어 주었다. 죽으면 어떤 존재로든지 다시 재생할 것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십바라밀을 닦는 보살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몸을 던질 줄 알았다. 이렇게 본다면 보살의 죽음은 삶과 다르지 않다. 생사가 일여인 것이다. 그래서 보살은 이렇게 말한다.

"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자신이 지은
악업이 없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안다.
나는 삶과 죽음을 헤아리고 있다.
내게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일여하다.”(Jat.513)

한평생 착하고 건전하게 살았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속 어머니도 한평생 착하고 건전하게 살았다. 혼자가 될 남편을 위해서 자신의 절친에게 연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이와 같은 사랑스런 마음을 가진 어머니도 죽음의 순간 만큼은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 어디로 가는 거야?"라고 했을 것이다.

 


불교인이라면 죽음명상을 해야 한다. 마라나사띠(사수념) 40가지 사마타 명상주제 중의 하나이다. 어떻게 하는가? 죽음명상 다섯 게송이 있다. 올해 초에 빠알리어로 외운 것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발간된 예경지송에 실려 있다.

1.
"
내일 죽을지 누가 알겠는가?
나의 삶은 견고하지 않지만
나의 죽음은 견고하고
나의 죽음은 피할 수 없으니
나의 삶은 죽음을 끝으로 하고
나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나의 죽음은 확실하다.”

2.
"
뭇삶은 행위의 소유자이고
행위의 상속자이고
행위를 모태로 삼는 자이고
행위를 친지로 하는 자이고
행위를 의지처로 하는 자로서
그가 지은 선하거나 악한 행위의 상속자이다.”(A10.216)

3.
"
선행을 하면, 두 곳에서 즐거워하니
이 세상에서도 즐거워하고
저 세상에서도 즐거워하나니
내가 선을 지었다라고 환호하고
좋은 곳으로 가서 한층 더 환희한다.”(Dhp.18)

4.
"
! 머지않아 이 몸은
! 쓸모없는 나무조각처럼
의식 없이 버려진 채
실로 땅 위에 눕혀질 것이다.”(Dhp.41)

5.
"
형성된 것들은 실로 무상하여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이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의
지멸이야말로 참으로 지복이다.”(S1.11)

2022-04-0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