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막힌 것을 뚫었을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22. 4. 13. 09:17

막힌 것을 뚫었을 때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어제도 그랬다. 저녁에 설거지하는데 물이 내려가지 않는 것이었다. 내려가긴 내려가지만 아주 조금씩 내려 갔다. 이렇게 해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집에서 사는 자는 반기술자가 되어야 한다. 불이 나가면 등을 갈아야 한다. 변기가 막히면 뚫어야 한다. 응급처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변기가 막혔을 때 뚫는 방법이 있다. 변기구멍에 맞는 봉을 몇차례 쑤시면 쑥 내려간다. 그래도 내려 가지 않으면 긴 스프링 봉을 이용한다. 길이가 1미터 이상 되는 것이다. 이것을 깊숙이 넣으면 왠만한 것은 다 뚫린다. 이 밖에도 약품을 써서 내려가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래도 안되면 사람을 불러야 한다.

주방 하수구가 막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일차적으로 주방 아래에 있는 에스(S)자 형태의 관을 풀어야 한다. 큰 것이라면 에스자관에서 걸리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도 해결하지 못하면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때는 기술자를 불러야 한다.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했다. 왠만한 것은 도움을 주지만 바닥과 관련된 것에는 그렇지 않다. 보수하는 사람을 부르라고 했다.

보수하는 사람을 부르면 돈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가만 있을 수 없다. 전화했더니 10만웓에서 15만원 달라고 한다. 10만원에 하자고 했다.

사람이 왔다. 커다란 장비를 가지고 왔다. 하수구를 뚫는 장비를 말한다. 스프링식으로 되어 있어서 하수구에 넣으면 한정없이 들어가는 것 같다. 아마 5미터 이상 뚫은 것 같다. 이런 장비가 없으면 뚫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다.

 


거의 삼십분 이상 작업했다. 처음에는 물이 조금씩 내려 갔다. 장비를 사용하면 할수록 점차 내려가는 속도가 났다. 마침내 뻥 뚫렸다. 물 내려 가는 소리가 화장실 변기 내려 가는 소리처럼 요란했다. 10만원이 비싸다고 생각했으나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본다.

 

가장 문제되는 것은 누수이다. 아파트가 낡아지면 관이 녹슬고 물이 새기 시작한다. 오래 된 아파트는 누수와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에 살던 아파트가 그랬다.

누수 못지 않게 많은 것이 막히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막힌다. 채소 같은 음식물 찌꺼기로 막히기도 하고 기름 때가 두터워져서 막히기도 한다.

어느날 갑자기 누수되고 어느날 갑자기 막힌다. 시공자에 따르면 누수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다고 말한다. 어제 멀쩡했던 것이 오늘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다 그런 것 같다.

잘 쓰던 컴퓨터가 어느날 작동되지 않는다. 응급처치 해도 살아나지 않는다. 수리기사를 부르니 하드가 뻗었다고 말한다. 하드디스크를 교체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사람은 어떨까?

노인 건강은 건강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늘 건강하다가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오늘 밥 잡순다고 해서 내일도 밥을 잘 먹는다는 보장이 없다. 노인의 몸은 마치 낡은 자동차와 같고 오래된 아파트와 같아서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모른다.

사람들은 미래를 말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하는 것이다. 막연한 것일 때 과연 그날이 올까? 그 날이 오기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갑자기 하수구가 막히는 것과 같고 컴퓨터가 서는 것과 같다.

관에 이물질이 쌓이다 보면 어느날 막혀 버린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화기관에 기름때가 쌓이면 어느 날 멈추어 버릴 것이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가 중요하다.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경전을 읽고, 글을 쓰고, 게송을 외우고, 경을 암송하는 이유에 해당된다. 그렇게 하다보면 깨달음도 오지 않을까?

깨달음의 기연이 있다. 어느 순간 계기가 되어 갑자기 깨닫는 것을 말한다. 넘어졌을 때 일어나려 하다가 깨닫는 경우도 있다.

"
혼침에 정복되어
나는 정사를 나왔다.
경행처로 올라가다
거기서 땅에 넘어졌다.”(Thag.271)

사지를 주무르고,
다시 경행처로 올라가서
안으로 잘 집중하여
경행처에서 경행을 했다.” (Thag.272)

이치에 맞는 정신활동이
그 때문에 나에게 일어났고
위험이 분명하게 보였고
싫어하여 떠남이 정립되었다.” (Thag.273)

나의 마음은 그래서 해탈되었다.
여법하고 훌륭한 가르침을 보라.
세 가지 명지를 성취했으니
깨달은 님의 교법이 나에게 실현되었다.” (Thag.274)

바구 장로의 깨달음의 기연에 대한 것이다. 이런 것도 축적의 산물 또는 누적의 결과일 것이다. 마치 지진이 나는 것과 같다.

지진은 지각변동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지진이 날 때는 응축작용이 먼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힘이 응축하는 것이다. 응축된 힘이 마침내 어느 순간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깨달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피로가 누적되면 죽음에 이른다. 힘이 응축되면 지진이 발생한다. 이것이 누적의 법칙이다. 은행에 복리로 돈을 맡기면 시간이 지날수록 불어날 것이다. 공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덕에는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이 있다. 매일 공덕을 쌓으면 누적된다. 마치 깨달음의 기연처럼 어느날 갑자기 효과를 볼 때가 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해서 막연하게 기대해서는 안된다. 지금 여기에서 공덕이 되는 행위를 해야 한다.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올지라도 하나의 사과나무를 심을 줄 알아야 한다. 윤회하는 삶에서 생사는 거듭 된다.

나는 누적의 법칙을 살고 있는가?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말 할 수 있다. 매일 장문의 글을 쓰기 때문에 글이 누적되고 있다. 2006년 이후 지금까지 매일 쓰다시피한 글이 7천개 가량 된다. 책으로 낸다면 100권이 넘을 것이다.

요즘에는 게송을 외우고 있다. 게송을 외워서 경을 암송하는 것이다. 매일 외우고 암송하는 세월을 보낸다면 이것도 누적될 것이다. 오래 살면 살수록 공덕이 되는 삶이다.

나의 지난 삶을 되돌아 본다. 사십대 중반까지는 나의 삶을 살지 못했다. 직장생활 20년의 삶은 타인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삶을 살게 된 것은 월급생활자로서 삶을 그만 두고 일인사업자로서 삶을 살고 나서부터이다. 사십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17년의 삶은 나 자신을 위한 삶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축적된 삶, 누적된 삶이다.

블로그 조회수가 해가 갈수록 누적되듯이 매일 쓴 글이 축적되었다. 요즘 검색을 하면 블로그 내에서 하게 된다. 과거에 써 놓은 글을 참조하여 새로운 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사용했던 문구를 여러차례 사용하게 된다. 특히 경전문구가 그렇다.

하수관에 찌꺼기가 쌓이면 어느날 막힌다.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른다. 막힌 것을 뚫었을 때 시원하다. 물 내려 가는 소리가 통쾌하다. 인생도 하수구 막힌 것을 뚫듯이 시원하게 뚫을 수 없을까?


2022-04-1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