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꽃이 피었으면 열매를 맺어야

담마다사 이병욱 2022. 4. 15. 05:48

꽃이 피었으면 열매를 맺어야


올해는 꽃을 봐도 시큰둥 하다. 아파트 화단에 보라색 라일락이 피었자만 얼핏 보고 지나쳤다. 벚꽃철이 되어 사람들은 에스엔에스에 사진을 올리지만 올해는 그런 일은 없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한때 꽃에 대해 집착했다. 꽃이 좋아 봄만 되면 이 꽃 저 꽃 올렸다. 꽃이 좋기는 여전하다. 꽃을 보면 눈길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 같지는 않다. 세상의 이치를 알아서 그럴까?

꽃이 핀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하나의 완성이라고 본다. 꽃 같은 나이라고 했을 때 시집가고 장가 갈 나이에 해당된다. 한 시대가 번성할 때도 "꽃피었다."라고 말한다. 꽃은 완성이고 아름다움 그 자체가 된다. 사람들이 어찌 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화무십일홍이라고 한다. 어떤 꽃도 십일 이상 가지 않음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꽃을 보면서 무상을 말한다. 시든 꽃을 보았을 때 특히 그렇다. 꽃 잎이 클수록 처참하다. 목련꽃이나 모란꽃 같은 것이다. 누구도 시든 꽃을 올리지 않는다.

난꽃이 피었다. 새로 사온 난초 화분 두 곳에서 핀 것이다. 종류가 다르다 보니 꽃모양도 다르다. 황룡관과 백운이다. 황룡관은 꽃이 작고 섬세하다. 백운은 꽃이 크고 풍성하다. 앞으로 10일 이상은 갈 것 같다.

 


난초에서 꽃이 피니 다른 꽃에 눈을 덜 돌리게 되는 것 같다. 벚꽃은 한번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옆에 있으면 자주 보게 된다. 모란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때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꺽고자 하는 것인지 모른다.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볼 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할 것이다. 마치 꽃을 곁에 두고 혼자 보고 싶어 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꽃을 좋아한다는 것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개입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꽃의 향기도 좋아한다. 라일락이 피면 향내가 확 풍길 때가 있다. 향이 좋다고 하여 코를 대면 어떨까? 이런 행위 역시 욕망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향기도둑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어느 수행승이 탁발 나갔다. 탁발이 끝나고 돌아 올 때 연못에 연꽃이 핀 것을 발견 했다. 수행승은 연꽃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다음날에도 그다음날에도 연꽃을 보러 갔다.

수행승은 연꽃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향내를 맡고자 했다. 다음날에도 그다음날에도 코를 대고 연꽃향을 취했다. 이런 행위를 하늘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하늘사람은 수행승의 반복되는 행위에 충고해주고자 했다. 코를 대고 향기를 취하고 있는 수행승에게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했다.

"
그대가 이 연꽃의 향기를 맡을 때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네.
이것은 도둑질의 한 가지이니,
벗이여, 그대는 향기 도둑이네.”(S9.14)

수행승은 졸지에 향기도둑이 되었다. 불투도죄를 지은 것이다. 주지 않은 것을 가져 갔을 때 도둑질이 된다. 수행승이 연꽃에 코를 대고 향기를 취한 것은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둑질이라고 한 것이다.

도둑질은 승단추방죄에 해당된다. 수행승이 무심코 코를 대어 향기를 취했을 때 이런 것도 승단추방죄에 해당될까? 그런 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복적인 행위가 될 때 해탈과 열반에 방해가 될 것이다. 왜 그런가? 갈애가 집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행승은 하늘사람이 향기도둑이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발끈 했다. 그래서 따지듯이 "나는 연꽃을 취하지도 않았고, 꺽지도 않았고 떨어져서 향기만 맡았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그대는 나를 향기 도둑이라고 하는가?"(S9.14)라며 말대꾸했다.

연꽃이 보기 좋아 뽑아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향기 조금 맡은 것 가지고 향기도둑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 아닐까? 이에 하늘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어떤 사람이 거칠고 흉폭하고,
하녀의 옷처럼 심하게 더럽혀졌다면,
나는 그에게 말할 것이 없지만,
지금은 그대에게 말하는 것이네.

때묻지 않은 사람,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 (S9.14)

하늘사람은 일반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중생들은 탐, , 치로 살기 때문에 연꽃을 꺽어서 자신만 보게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족계를 받은 수행승은 다르다. 세상의 흐름과는 거꾸로 무탐, 무진, 무치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름아닌 청정한 삶(brahmacariya)이다.

청정한 삶은 무소유의 삶이고 순결한 삶이다. 자신의 오염원을 남김없이 소멸했을 때 해탈과 열반이 실현된다. 그럼에도 수행승이 반복적 행위를 했을 때 허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머리털만큼의 죄악도 구름처럼 크게 보인다고 했다.

일반사람이 꽃을 좋아할 수 있다. 코를 대고 향기를 맡아도 죄악이 되지 않는다. 마치 술을 마셔도 죄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수행자가 꽃을 보고 향내를 맡는 다면 허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사띠를 놓쳤기 때문이다.

어느 수행승이 하늘의 구름이 아름다워서 한참 쳐다보았다. 이에 대하여 스승에게 "무심코" 쳐다보았다고 말했다. 스승은 뭐라고 말했을까?

무심코 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 의도가 있어서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의 구름을 쳐다본 것이다. 수행승은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사띠를 놓친 것이다.

수행승이 연꽃에 무심코 코를 댄 것은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 순간에 욕망이 개입된 것이다. 사띠를 놓쳤을 때 향기도둑이 된 것이다. 이에 하늘사람은 수행승을 가엽게 여겨 알려 주었다. 어쩌면 하늘사람은 수행승의 수호천사일지 모른다.

사무실에 황룡관과 백운 난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그러나 열매가 없는 꽃이다. 마치 날개가 있어도 날지도 못하는 새와 같다.

꽃은 아름답지만 열매가 보잘 것 없는 꽃도 있다. 그러나 꽃은 보잘 것 없지만 열매는 튼실한 것도 있다. 꽃보다 열매이다.

꽃도 좋지만 열매가 더 좋다. 그래서 초기불교에서는 도(magga; )와 과(phala: )를 말한다. 꽃이 피었으면 열매를 맺어야 함을 말한다. 길을 가면 목적지에 이르듯이 수행을 하여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도를 이루어 열매를 맺어야 한다.


2022-04-14
담마다사 이병욱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왜 인정투쟁하는가?  (0) 2022.04.28
호랑이에게 잡혀먹고 귀신에게 홀리고  (0) 2022.04.24
막힌 것을 뚫었을 때  (0) 2022.04.13
소리에 민감해야  (0) 2022.04.12
불은 누가 냈을까?  (0) 2022.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