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로깐따리까에도 자비광명이

담마다사 이병욱 2022. 5. 9. 06:12

로깐따리까에도 자비광명이


부처님오신날과 어버이날이 겹쳤다. 어디로 가야 할까? 독거노인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부처님오신날 절에 가지 않을 수 없다.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 가기로 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어버이날과 겹쳤다. 이럴 경우 불교에 불리할 것이다. 어버이 계신 곳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를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을 때 어버이날 모임 참석에 힘을 받을 것이다.

홀로 사는 장모님 집에 사람들이 모였다. 인근 식당으로 이동했다. 앉으니 두 테이블이다. 오리고기 요리로 점심식사를 했다. 이것으로 어버이날 행사를 마쳤다.

 


가까운 절에 가기로 했다. 화계사에 가기로 했다. 예전에 부처님오신날 몇 번 갔었다. 무엇보다 주차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부근 3개 학교 운동장을 임시주차장으로 쓰기 때문이다.

화계사는 큰 절이다.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그야말로 잔치집이 되었다. 무료 점심공양을 주는가 하면 커피와 각종 차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연등을 달고 촛불공양을 한다. 무어니무어니 해도 부처님오신날 관불의식만한 것이 없다.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켜 주는 것이다.

 

 

화계사에서 본 것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촛불이다. 큰 초에 불을 붙여 도열해 놓았다. 연꽃 문양에 작은 촛불도 상당하다. 촛불의 열기가 후끈하다. 밤이 되면 더욱더 빛날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연등을 달았다. 관악산 불성사와 동네 백운사에 단 것이다. 작은 종단의 작은 절이다.

 

연등은 전기로 불을 밝히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대부분 연꽃모양의 등이다. 그러나 연등의 진정한 의미는 불타는 등이다. 초나 기름에 심지가 있어서 타는 연등(燃燈)을 말한다.

등불은 밤이 되어야 위력을 발휘한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연등이야말로 어둠과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달에 비하면 십육분의 일도 안된다. 달은 태양에 비할 수 없다.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있을까?

태양은 태양계에 한정된다. 태양계 너머에는 빛이 비치지 않는다. 우주를 비추는 빛이 있을까? 그것은 부처님의 광명이다. 어떤 광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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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만족을 모르는 신들의 하늘나라 무리에서 죽어서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었을 때에, 신들의 세계, 악마들의 세계, 하느님들의 세계,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신들의 위력을 능가하는 측량할 수 없는 광대한 빛이 나타났다.”(M123)

 


보살이 입태 했을 때 측량할 수 없는 광대한 빛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런데 앙굿따라니까야 아주 놀라움의 경’(A4.127)에 따르면, 네 가지 사건에서 이와 같은 측량할 수 없는 빛이 나타난다. 보살이 입태했을 때, 탄생했을 때, 정각을 이루어 부처가 되었을 때, 그리고 부처가 되어서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처음으로 굴렸을 때 나타난다.

빛은 부처님의 입태, 탄생, 정각, 초전과 관련 있다. 이런 빛이 나타났을 때 신들의 위력을 능가한다고 했다. 하느님(brahma)이 출현하면 먼저 빛을 내보이는데 이것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일까?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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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달도 태양도 그와 같은 커다란 신통력 그와 같은 커다란 위신력으로도 빛을 비출 수 없는, 어둡고 바닥을 알 수 없는 캄캄한 심연의 감추어진 세계에 신들의 위력을 능가하는 측량할 수 없는 광대한 빛이 나타났다. 그곳에 태어난 존재들은 그 빛으로벗이여, 다른 존재들도 참으로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 일만 세계가 흔들리고 동요하고 격동하면서, 신들의 위력을 능가하는 측량할 수 없는 광대한 빛이 나타났다.”(M123)

 


감추어진 세계가 있다. 그곳은 "어둡고 바닥을 알 수 없는 캄캄한 심연"과 같은 세계라고 한다. 이는 다름아닌 무간지옥이다. 부모를 살해하는 등 무간업을 지은 자들이 태어나는 어둠의 세계이다.

무간지옥(
無間地獄)은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지옥을 의미한다. 고통의 간극이 없음을 말한다. 이런 경험은 삶의 과정에서 한번쯤 겪는다.

치통으로 무간지옥을 경험했다. 이번에 오미크론에 확진 되었을 때 목이 불타는듯 했다. 앉아 있어도 괴롭고 서 있어도 괴로웠다. 거의 틈을 주지 않고 통증의 파도가 밀려왔을 때 무간지옥을 체험했다.

부모를 살해하는 등 무간업을 지은 자들이 가는 지옥이 있다. 이를 경에서는 감추어진 세계라고 했다. 이 말은 빠알리어 로깐따리까(lokantarik
ā)를 번역한 말이다. 왜 감추어진 세계라고 했을까?

우주와 우주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간극에 지옥이 있다고 한다. 이 지옥을 로깐따리까라고 한다. 간극지옥 또는 사이지옥이라고 한다. 아버지를 살해하거나 어머니를 살해하는 등 무간업을 지은 자들이 가는 지옥을 말한다. 한우주기 동안(一刧) 구제받지 못하는 암흑지옥이다. 잊혀진 존재들이 사는 잊혀진 세계이기도 하다.

로깐따리까는 영어로 ‘situated between the worlds’의 뜻이다. 세계와 세계 사이에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로깐따리까는 세계를 뜻하는 로까(loka)와 중간 또는 사이를 뜻하는 안따리까(antarik
ā)의 결합어이다. 그래서 경에서는무시무시하고 바닥이 없고 암흑으로 덮여 있고 칠흑같이 어두운 사이지옥”(A4.127)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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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완전한 우주적 세계인 철위세계(cakkav
āa)는 무수한 그러한 우주적 세계들 가운데 하나의 세계이다. 그 대부분은 물로 덮여 있는 광대하고 두터운 원반모양의 세계인데 그 위에 물이 있고 그 전체는 바람에 실려 있다. 이 천계의 가운데 가운데 바다 위에 메루(Meru) 산이 솟아 있고 그 봉우리에 서른셋 하늘 나라의 천신들이 살고 있고 그 산록에 아수라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유간다라(Yugandhara) 등의 일곱 산맥이 있고 그 뒤에 인도를 포함하는 남쪽 잠부디빠(Jambudipa)와 같은 남북동서의 4대륙이 있다. 이 세계는 다시 바위로 된 산맥인 철위산맥이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철위세계는 공간속에 무수하게 흩어져 있는데, 각각 자기 자신의 태양과 달 그리고 하늘과 지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철위세계가 셋이 모여서 하나의 원형외곽을 이루는 하나의 삼각시스템을 형성한다. 그 사이로 형성된 삼각 사잇공간에 무간지옥(lokantarika)이 있다.”(KPTS본 청정도론 496, 1235번 각주)

 


로깐따리까는 무간지옥으로서 부모를 살해는 등 무간업을 지은 자들이 우주가 무너질 때까지 갇혀 사는 지옥이다. 세계와 세계 사이에 끼어 있어서 빛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를어둡고 바닥을 알 수 없는 캄캄한 심연의 감추어진 세계라고 한다. 우리말로 사이지옥 또는 간극지옥이 된다. 이런 지옥에도 빛이 들어 갈 때가 있다.

사이지옥(로깐따리까)에 태어나면 빛이라고는 한번도 볼 수 없다. 빛이 없어서 시각의식이 생겨나지 않는다. 시각의식이 없어서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없다. 그런데 보살이 입태 되었을 때, 보살이 탄생할 때, 보살이 정각을 이루었을 때, 보살이 부처가 되어서 처음으로 가르침의 바퀴를 굴릴 때 심연의 세계에도 빛이 들어간다. 무간업을 지은 자들은 그제서야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다. 시각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벗이여, 다른 존재들도 참으로 여기에 태어났다.”(M123)라며 말하는 것이다.

 


불자들은 부처님오신날 연등을 단다. 말 그대로 연꽃 모양의 등이다. 등이라 하지만 등이 없는 등이기 쉽다. 그래서 자신과 가족의 안위와 성공을 기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진정한 등은 초나 기름을 연료로 하여 불타는 등을 말한다.

촛불이나 등불은 어둠을 밝힌다. 무명을 밝히는 등불이다. 자신의 무명을 밝히는 등불이다. 타인의 무명을 밝히려면 더 빛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의 광명은 심연의 잊혀진 존재들에게도 빛이 간다는 것이다. 우주 끝까지 구석구석 비추지 않은 곳이 없다.

지금은 정법시대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고, 팔정도 수행이 있고,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으면 정법시대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견을 가지고 있다면 로깐따리까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 그런가? 무간업을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오무간업을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기경전에서는 육무간법을 말한다. 이는 1) 어머니의 생명을 빼앗은 경우, 2) 아버지의 생명을 빼앗은 경우, 3) 아라한의 생명을 빼앗은 경우, 4) 나쁜 의도를 가지고 여래의 피를 흘리게 한 경우, 5) 승가를 분열시키는 경우, 6) 견고한 사견을 지니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육무간업에서 주목하는 것은 견고한 견해이다. 이는 영원주의와 허무주의와 같은 사견이다. 사견이 있다면 정견이 있을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이 정견이다. 사성제와 업과 업보의 가르침이 정견인 것이다.

사견을 가지면 로깐따리까에 떨어진다고 했다. 한우주기동안(일겁) 심연과 같은 어둠 속에서 구제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그는 이와 같이올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이 다른 스승을 인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리고 그는보통의 일반사람이 다른 스승을 인정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M115)

 


부처님 가르침이 아닌 것은 견해에 해당된다. 부처님가르침에 따르면 견해는 일반적으로 사견으로 본다. 대표적으로 영원주의와 허무주의이다. 디가니까야 1번 경에서는 62견이 소개되어 있다. 사견을 가지면 로깐따리야와 같은 무간지옥에 태어남을 말한다.

테라와다불교 예불문 중에 라따나경이 있다. 이를 보배경(Sn.2.1)이라고 한다. 보배경은 예불문이자 동시에 수호경이다. 그런데 보배경에 육무간업에 대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여섯 가지 큰 죄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Stn.231)라는 구절로 알 수 있다.

여섯 가지 큰 죄악은 부모를 살해 하는 등 육무간업에 대한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오무간업이라고 하지만 초기불교에서는 하나가 더 있어서 견고한 사견을 가지면 무간업이 되는 것이다. 한우주기동안 빛을 볼 수 없는 로깐따리까에서 살게 된다.

 


부처님오신날 등불을 밝힌다. 부처가 출현하면 온 우주에 광명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사견을 가지고 있으면 어둠의 심연속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불교인은 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이나 4월 보름 붓다의 날에 등불을 밝힌다. 그것은 자신의 무명을 밝히는 연등(
燃燈)이다. 가장 밝은 등불은 어떤 것일까?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머리맡에 경전이 있다면 매일 등불을 밝히는 것이 된다.


2022-05-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