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네 운명을 아름답게 가꾸어라!

담마다사 이병욱 2022. 6. 9. 08:46

네 운명을 아름답게 가꾸어라!


친구는 매일 담배 한갑을 피우고 매일 소주 한병을 마신다.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다. 담배와 술이 해롭다는 것을 알지만 멈출 수 없다고 한다. 친구의 일상에서 담배와 술이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아 갈까?

어제 컴퓨터가 섰다. 속된 말로 "뻗은" 것이다. 어떤 기능이 되지 않자 이것저것 만져 보다 윈도우가 깨진 것이다. 이럴 때는 컴퓨터 수리기사를 불러야 한다. 그들에게 맡기면 다른 것은 없다. 그들은 늘 '밀어 버리자'고 말한다. 포맷을 하고 프로그램을 새로 까는 것이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친구에게 전화한다. 이럴 때나 전화하는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호기롭게 말한다. 간단한 안부를 물어 본 다음에 컴퓨터 이야기를 했다. 윈도우가 뜨지 않으니 원격도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싸 들고 가야 한다. 오랜만에 친구 집으로 향했다.

친구는 스무 살 때 만났다. 공학계열로 들어 갔는데 반을 성씨 별로 나누었다. 바로 앞 번호가 친구였다. 이후 지금까지 40년 이상 인연을 맺고 있다.

안양에서 부평까지 퇴근시간 정체는 극에 달했다. 친구 아파트까지 1시간 반가량 걸렸다. 아파트는 주거공간이자 작업실이다. 친구는 컴퓨터 수리를 해서 삶을 영위한다. 출발하기 전에 계좌번호를 찍어 달라고 했으나 끝내 알려 주지 않았다.

친구는 혼자 살고 있다. 싱글이 된지 오래 되었다. 두 딸이 어렸을 적에 혼자 된 것이다. 친구의 잘못일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친구는 두 딸을 키웠다. 큰 아이는 재작년에 시집 보냈다. 같은 동 아래 층에는 병 든 노모가 있다. 그에게는 별다른 낙이 없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저녁에 소주 한병 마시는 것이 인생 최대의 즐거움인 것 같다.

 


컴퓨터 수리가 끝났다. 프로그램을 새로 깐 것이다. 컴퓨터가 새로 태어난 것 같다. 버전은 높아 졌다. 이제 새로운 컴퓨터와 함께 살아야 한다. 어느 날 작동이 안되면 또다시 싸 들고 친구를 찾을 것이다.

저녁밥을 먹어야 한다. 근처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친구는 소주 한병을 마셨다. 그것도 빨간 마개 소주만 마신다. 친구에게 소주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친구에게 소주는 친구와도 같다. 소주는 삶의 활력소이자 위안인 것 같다. 이것이 친구의 운명일까?

아모르파티! 이 말은 "네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말로 잘 알려져 있다. 니체가 말한 것이다. 요즘은 유행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유튜브 '5분 뚝딱 철학'에서 김필영 선생은 좀 더 달리 해석 했다. 김필영 선생은 "네 운명을 사랑스럽게 만들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신을 죽였다. 신을 죽였으니 저 세상은 없는 것이 된다. 있다면 오로지 현실의 세계 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설령 현실이 운명적인 것이라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모르파티!"라고 했을 것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단지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하면 숙명론적으로 된다. 숙명론적 사고 방식을 가지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어떤 것을 해도 운명 지어져 있기 때문에 해야 할 것이 없다. 그저 운명에 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삶은 권태로울 것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한다면 운명론이 되기 쉽다. 일어난 모든 현상에 대해서 운명론적으로 받아 들일 때 향상도 없고 성장도 없다. 과연 운명적 현실을 긍정하고 더 나아가 현실을 사랑하는 것이 아모르파티일까? 김필영 선생에 따르면 그것은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니체가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했을 때 이는 "자신의 삶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라."라는 의미라고 했다.

아모르파티는 이 현실세계에서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사랑해야 함을 말한다. 그렇다고 하여 고난에 가득 찬 인생에 대하여 "이게 그냥 운명이겠거니"하면서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정원이 있을 때 더욱더 아름다운 정원이 되도록 가꾸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니체의 아모르파티의 진정한 의미를 접하자 부처님의 말씀이 떠 올랐다. 앙굿따라니까야 이교도의 경(A3.61)’이 그것이다. 삼종외도에 경이다. 그 중에 하나가 숙명론이다.

현실을 숙명론적으로 받아 들이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그래서 "네 운명을 사랑하라!"가 될 것이다. 고뇌에 가득찬 인생을 긍정하고 감내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은 숙명론을 부정했다. 부처님은 숙명론에 대하여 전생의 행위가 결정적인 것이라고 고집한다면, 그들에게는 이것은 해야 하고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도나 정진이 없는 셈이다.”(A3.61)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향상도 없고 성장도 없다.

힘들고 고난에 찬 인생이다. 남에게나 일어날 것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 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운명이겠거니"하며 받아 들여야 할까? 부처님 가르침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부처님은 운명을 극복하라고 말했다. 어떻게 극복하는가?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내려면 조건을 주어야 한다.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조건을 필요로 한다. 마치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래서 "무수한 사건을 원인으로 하고 무수한 사건을 조건으로 하여 무수한 사건이 생겨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조건을 달리하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라며 조건에 기반한 연기법을 설했다. 이렇게 본다면 아모르파티는 "네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말이기 보다는 "네 운명을 아름답게 가꾸어라!"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제 예기치 않게 컴퓨터가 뻗었다. 사람의 운명도 알 수 없다. 앞으로 어떤 운명이 될지 알 수 없다.

어떤 운명에 처했을 때 절망하기 보다는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한다. 비록 힘든 삶이고 고난에 찬 삶이긴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다고 소주만 마셔서는 안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처럼, 자신의 운명을 더욱 더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네 운명을 아름답게 가꾸어라!


2022-06-0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