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블로그 개설 17년만에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2. 6. 23. 17:47

블로그 개설 17년만에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는데

 

 

며칠전 백장암에 갔었을 때의 일이다. 허정스님을 만나러 갔었는데 주지스님도 오고 또 한분의 스님도 왔다. 허정스님이 두 분 스님에게 내가 온다는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세 분 스님과 차담을 했다. 허정스님이 팽주가 되어서 현기스님이 만들었다는 뽕잎차를 따라 주었다. 주지스님은 그 동안 무척 궁금했었다고 말했다. 진흙속의연꽃이 누구인지 궁금했었다는 것이다. 함께 한 젊은 스님도 궁금했었던 것 같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종종 질문을 받는 것이 있다. 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두 가지로 물어 본다. 스님인지 아닌지 또는 학자인지 아닌지 물어 보는 것이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블로그에 필명을 쓰기 때문이다. 얼굴도 공개하지 않고 실명도 공개하지 않고 오로지 필명으로만 글을 썼기 때문에 어떤 인간인지 궁금했던 것 같다.

 

어제 블로그 개편을 했다. 이제까지 가장 혁명적인 조치를 취한 것 같다. 그것은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블로그 만든지 17년만의 일이다.

 

블로그를 처음 개설한 2005년 이래 필명은 줄곧 진흙속의연꽃이었다. 그러나 블로그 타이틀은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는 대승의 바다였다. 그러다가 2009년에 이 고뇌의 강을 건너로 블로그 타이틀을 바꾸었다.

 

블로그 타이틀을 바꾼 데는 이유가 있다. 정신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석지현 스님이 번역한 법구경에서 이 고뇌의 강을 건넌다라는 문구를 보고 바꾸었다. 참고로 석지현 스님이 번역한 법구경은 깨달은 이, 그리고 그 가르침대로 살려는 사람들을, 저 마라(악마)의 군단을 격파해 버린 이들을, 그리고 이 고뇌의 강을 이미 건너가 버린 이들을, 우리는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Dhp.195)라고 되어 있었다.

 

전재성 선생은 이 고뇌의 강과 관련된 게송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이는 공양할 가치 있는 님들, 희론을 여의고 슬픔과 비탄을 건넌 깨달은 님들이나 그 제자들을 공양하는 자가 있으니.”(Dhp.195)라고 번역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석지현 스님이 번역한 것과 분위기가 다르다. 아마도 빠알리어를 직역했기 때문일 것이다.

 

법구경에서 이 고뇌의 강과 관련된 빠알리어는 ‘tiṇṇasokapariddave’이다. 이를 전재성 선생은 슬픔과 비탄을 건넌이라고 번역했다. 여기서 ‘tiṇṇa’‘crossed over’의 뜻으로 건너다로 번역할 수 있다. 빠알리어 ‘soka’슬픔의 뜻이고, ‘pariddava’‘parideva’과 같은 단어로서 비탄으로 번역된다. 그래서 ‘띤나소까빠리답베(tiṇṇasokapariddave)’슬픔과 비탄을 건너서라고 번역되는데, 이를 석지현 스님은 이 고뇌의 강을 건너의 뜻으로 번역한 것이다.

 

블로그 타이틀 이 고뇌의 강을 건너는 다소 염세적이다. 이런 점을 우려하여 그때 당시에 그런데 너무 염세적 이미지를 풍길 수 있어서 부제로서 “닙바나 저 이지의 나라에 가라”라고 하였다.”(2012-09-14)라고 써 놓았다.

 

블로그 타이틀 이 고뇌의 강을 건너는 그다지 오래 사용하지 못했다. 다소 염세적인 느낌이 난 것이 큰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2012년에 블로그 타이틀을 진흙속의연꽃으로 바꾸었다. 블로그 타이틀 이 고뇌의 강을 건너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 사용했다.

 

블로그 타이틀 이 고뇌의 강을 건너시기에 많은 글을 썼다. 가장 왕성하게 글을 쓰던 시기중의 하나였다. 봉은사 주지를 엮임 했던 명진스님은 이 고뇌의 강을 건너시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 봉은사 주지였는데 내 글을 많이 봤던 것 같다.

 

2012년에 블로그 타이틀을진흙속의연꽃으로 바꾸었다. 단현 법우님이 제안한 것을 채택한 것이다. 단현 법우님은 블로그 개설 7주년 댓글에서 이 블로그의 상호는 이 고뇌의 강을 건너이지만 사실 누구나 진흙속의연꽃 블로그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상호를 진흙속의연꽃으로 바꾸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전해 봅니다.”라고 써 놓았다.

 

단현 법우님의 제안을 받아 들여서 타이틀을 진흙속의연꽃으로 바꾸었다. 마치 회사 히트상품 이름을 회사 상호로 사용하는 것과 같다. 블로그 필명이 블로그 타이틀로 되어 버린 것이다.

 

블로그 타이틀 진흙속의연꽃 2012년 이후 2022년 현재까지 10년 동안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필명은 여전히 진흙속의연꽃으로 사용해 왔다. 그러다 마침내 어제 필명 진흙속의연꽃을 버리고 실명담마다사 이병욱이라고 바꾸었다. 블로그 개설이래 17년만의 일이다.

 

실명전환과 함께 이미지도 바꾸었다. 이전에는 연꽃이미지였다. 필명이 진흙속의연꽃이다 보니 연꽃 이미지를 쓸 수밖에 없었다. 필명을 실명으로 전환함과 함께 이미지를 실물사진으로 바꾸었다. 실명과 얼굴이 공개된 것이다. 블로그 개설 17년만에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그래서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한 것이다.

 

 

에스엔에스에서는 실명과 실물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카톡과 밴드와 같은 매체를 말한다. 어느 밴드에서는 공개를 의무화 했다. 카톡은 비교적 자유롭다. 그럼에도 모두 공개했다. 페이스북에서 얼굴 공개는 하나의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페이스북에 가입한 것은 2017년의 일이다. 이전에는 블로그에 글만 써 왔다. 페이스북에 가입하면서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글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여러모로 블로그와 환경이 달랐다. 실시간 소통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마치 시장통 같았다. 반면 블로그는 조용한 산사와 같은 분위기이다.

 

페이스북에는 정책이 있다. 실명정책이다. 실명정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실명을 공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얼굴만큼은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블로그에서는 오랫동안 필명으로 얼굴을 숨기고 글을 써 왔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계속 얼굴을 숨기고 글을 올리자 어느 페이스북친구(페친)가 비난했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자와는 친구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무엇이 떳떳하지 못하길래 얼굴을 숨기냐는 것이었다. 이에 자극 받아 얼굴을 공개했다.

 

마땅한 사진이 없었다. 단체로 네 명이서 찍은 사진에서 내 얼굴만 커팅해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2018년의 일이다. 이후 2022년 현재까지 4년동안 사용해 왔다. 그러다가 사흘전에 얼굴을 바꾸었다.

 

페이스북에 얼굴사진을 바꾸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 임시로 붙인 것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기회가 되었다. 지난주 토요일 보성에 갔었는데 페친이 사진을 찍어 준 것이다.

 

페친은 사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대화 하는 중에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수 많은 사진 중에 잘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 주었다. 그 중에 하나를 선정하여 페이스북 프로필에 올렸다.

 

페이스북 프로필에 사진을 올리지 수많은 공감과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글에는 멋집니다라든가, “! 잘생겼다!”라든가, “선비풍입니다라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과찬의 말씀이다.

 

평소 알고 지내는 하석태 선생은 청년이다. 내가 아는 이병욱이 아니다. 라고 댓글을 달았다. 젊어 보인다는 것이다. 어느 페친은 더 젊어지신듯 합니다. 비결이라도 있으신가요?”라고 물었다.

 

프로필 사진 하나만 바꾸어도 사람의 이미지가 바뀌는 것 같다. 대부분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이전 사진은 나이 들게 보였다는 의미도 된다.

 

보성 페친에 따르면 이전 사진은 나이 보다 늙게 보인다고 했다. 사진 이미지로만 봐서는 67세 정도로 보았다. 다소 억울했다. 그런데 이번에 사진을 바꾸니 이전 보다 훨씬 젊어 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마 환하게 웃는 모습이 더 젊게 보였을 것 같다.

 

페이스북에서 프로필 사진을 4년만에 교체 했다.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프로필 사진도 일년 주기로 교체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진짜 내 얼굴일까?

 

프로필 사진 이미지는 만들어낸 것이다. 수많은 사진 중에서 가장 잘 나온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도 웃는 모습이다. 이런 이미지가 정말 나의 모습일까?

 

블로그에서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실명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미지는 연꽃으로 했고 필명으로만 소통했다. 그러다 보니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백장암 주지 스님도 그런 분 중의 하나였다.

 

블로그에 실명과 실물사진을 공개했다. 이제 더 이상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매일 글을 쓰는 블로거의 사진이 최초로 공개된 것이다. 그런 블로거는 글과 인격이 매칭 되지 않는다. 글과 인격을 동일시 하면 안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배우는 학인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가장 보수적인 블로그에도 실명과 얼굴 이미지가 공개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감출 것이 없다. 그렇다고 프로필에 있는 얼굴이 본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수많은 얼굴 중의 하나일 뿐이다. 얼굴 보다는 글이다. 글이 그 사람의 얼굴이다. 이미지에 속지 말아야 한다.

 

 

2022-06-2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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