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삶의 의미를 찾는 여행이 되어야

담마다사 이병욱 2022. 7. 4. 08:23

삶의 의미를 찾는 여행이 되어야


여름에는 땀을 내야 한다. 겨울에는 추위에 떨어야 한다. 덥다고 냉방에만 있고, 춥다고 난방에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면역력이 떨어질 것이다.

오늘 날씨가 최고로 더운 것 같다. 며칠전 폭우가 내리더니 이제 폭염이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것 같다. 이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여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에어컨이 있기 때문이다. 에어컨 없이 수십년 살다가 3년전에 처음으로 에어컨을 달았다. 남들 다 다는 것을 달지 않았던 것은 "열대야 2주만 버티면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폭염의 계절이 되면 고역이었다. 선풍기 한대로 여름 보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열대야가 시작되면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태풍이 오기를 바랄 정도였다.

비봉산에 올랐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여름에는 땀을 흘려야 한다. 이때 땀을 흘리지 않으면 언제 흘려야 할까? 여름은 여름답게 보내야 한다.

 


여름은 여름답게 보내야 하고 겨울도 겨울답게 보내야 한다. 덥다고 냉방이 되어 있는 방에서 한철 보내면 어떻게 될까? 면역력이 약화될 것이다. 겨울에 춥다고 난방이 되는 방에서 한철 보낸다면 역시 면역력이 약화될 것이다.

벼는 한여름에 땡볕을 받으면서 자란다. 과일은 한여름 땡볕으로 여문다. 보리는 한겨울 추위를 뚫고 자란다. 국화는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과 번개를 견디어 낸다. 시련 속에 다져 진다. 혹서와 혹한에서도 단련된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봉산은 높이가 300미터가량 되는 작은 산이다. 관악산 줄기가 남쪽으로 내려오다 한번 솟구친 산이다. 관악대로 건너편 래미안 아파트를 가로질러 가면 비봉산에 도달한다.

너무 더워서인지 사람들이 없다. 일요일임에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어디 갔을까? 아마 집에서 편히 쉬고 있는 것 같다.

혹서기에 산행하는 것은 무리일까? 확실히 그런 것 같다. 평소 보다 몇 배 힘들다. 그럼에도 땀을 비오듯 흘리고 나니 여름을 제대로 나는 것 같다.

여름에는 땀을 흘려야 하고 겨울에는 추위를 타야 한다. 그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 덥다고 냉방에 있고 춥다고 난방에 있다면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 된다. 여름은 여름답게 겨울은 겨울답게 보내야 한다.

여름을 여름답게 보내야 된다고 생각하니 문제 하나가 해결되었다. 정평불 정진산행이 7 17() 예정 되어 있는데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냉방에서 편하게 보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산행을 망설일 것이다. 그러나 여름에는 땀을 흘리는 것이 면역체계에 좋다고 생각한다면 한증막같은 무더위도 문제 되지 않는다.

오늘 같은 무더위에도 걷기 하는 사람이 있다. P선생이다. P선생은 현재 전국 해안길을 걷고 있다. 지난 추운 겨울에도 걸었다. 동해안길을 걸었고 지금은 서해안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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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하루에 30키로가량 걷는 것 같다.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 8시간 걷는 것이 된다. 지금까지 천키로 이상 걸었을 것이다. 마치 고행자처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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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왜 걷는 것일까? 지난 5월 조선대에서 김동수 열사 추모제 때 물어 보았다. P선생은 아무 생각없이 걷는다고 했다. 무념무아 상태로 걷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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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전에는 등산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도 칠십이 되고 관절도 생각해서 걷기로 전환했다고 한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눈이 오나 바람 부나 비가 오나 걷는다. 오늘 같은 폭염에도 걸었다고 페이스북에 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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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으로부터 걷기에 대해서 대강 들었다. P선생이 걷는 것은 내륙이 아니다. 해안길을 걷고 있다.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 길을 말한다. 여기에 길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휴전선 길이다. 이렇게 걸으면 남한을 한바퀴 도는 것이 된다. 45백키로나 되는 긴 둘레길이다.

전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순례길이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잘 알려져 있다. 일본에는 시코쿠 순례길이 있다. 그럼 한국에는 어떤 순례길이 있을까? 잘 생각나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걸으면 순례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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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 휴전선 순례를 목표로 하는 것 같다. 다 돌려면 몇 년 걸릴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순례길을 무어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한국해안순례길이라고 해야 할까? P선생은 이를 '코리안둘레길'이라고 했다.

농촌에 가면 사람 보기 힘들다. 도로에 차도 보기도 힘들다. 그런 도로를 걷는 사람들이 있다. 자동차도 있고 오토바이도 있고 자전거도 있는데 굳이 걷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것은 아마도 구도와 관련 있을 것 같다.

하루 여덟 시간 홀로 또는 둘이서 걷는 것은 구도여행으로 본다. 집에 가만 있으면 세상 편할 것이다. 그럼에도 먼 길을 가서 다리가 뻐근하게 걷는 것은 고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걷기는 즐기는 여행이 될 수 없다.

자전거로 대륙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동차로 여행하는 사람도 있고 오토바이로 여행하는 사람도 있다. 공통적으로 바퀴를 이용한 것이다. 바퀴의 힘을 빌어 여행하는 것이다. 이런 여행에 대하여 고행이라거나 구도여행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패키지 여행이 있다. 비행기를 타고 유명 관광지를 보는 것이다. 즐기는 여행의 범주에 들어간다. 최상의 볼거리를 보고, 사성급 호텔에서 머물며, 최상의 음식을 즐기는 여행이다. 즐기는 여행의 전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패키지 여행을 몇 차례 했다. 생업이 있다 보니 어렵게 결단한 것이다. 34일이 보통이다. 10일이면 매우 긴 여행이다. 즐기는 여행이다. 그러나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구도여행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빠알리경전을 외웠다. 그리고 사진과 동영상을 곁들여 후기를 상세하게 남겼다. 블로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행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즐기는 여행이고, 또 하나는 구도여행이다. 탈 것으로 이동하면 즐기는 여행이 되기 쉽다. 그러나 걷는 여행이라면 구도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삶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삼장법사 현장스님은 걸어서 인도에 갔다. 구도여행을 한 것이다. 티벳사람들은 오체투지하면서 라싸까지 걷는다. 역시 구도여행이다. 그런데 구도여행은 고행이기 쉽다는 것이다. 홀로 걷는 것 자체가 수행이고 고행인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수많은 여행기를 접한다. 여행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과 함께 실시간으로 글을 올리는 것을 보면 즐기는 여행임에 틀림 없다. 부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감동은 없다. 왜 그럴까? 여행자 자신이 즐기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함께 즐기기 힘들다. 먹방을 연상케 하는 먹거리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림의 떡과 같다. 이런 이유로 즐기는 여행은 공감하기 힘들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야 감동한다. 그럼에도 시간부자라서 돈의 힘으로, 탈 것에 의지하여 여행한다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 동시에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즐기는 여행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패키지여행을 포함하여 장기배낭여행, 자동차여행, 오토바이여행, 자전거여행, 해외등산여행, 해외골프여행이 즐기는 여행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러나 즐기는 여행임에도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구도여행이 될 것이다.

순례길을 걸어서 여행한다면 가슴을 울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나도 따라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가 되면 대단히 공감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구도여행이 될 것이다.

여행에는 즐기는 여행이 있고 구도여행이 있다. 여행자 중에는 방랑자가 있고 구도자가 있다. 즐기는 여행을 하면 방랑자가 되기 쉽다.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연상된다. 반면 걷기 여행하는 자는 순례자가 되기 쉽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구도자 같은 사람이다.

탈 것을 이용해서 즐기는 여행을 한다면 방랑자가 되기 쉽다. 방랑자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반면에 탈 것에 의지하지 않고 걸어서 여행한다면 구도자라고 볼 수 있다. 타인의 귀감이 될 만 하디. 어떤 차이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여행의 목적이 불분명한 사람이 있다. 단지 즐기는 여행으로 일관 한다면 방랑자이자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와 같다. 이런 삶을 동경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여행이라면 공감하기 힘들다.

여행목적이 뚜렷한 사람이 있다. 순례길을 여행하는 사람이다. 나홀로 걷지만 자신의 내면으로도 여행하는 구도자이다. 이런 사람의 메세지는 새겨 들을 만 하다. 자신도 이익되게 하고 타인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인생길도 여행길과 같다. 인생길에서 방향없이 목적없이 감각만을 즐기는 삶을 산다면 정처없이 떠도는 방랑자 같고 나그네 같다. 인생길에서 방향이 정해진 사람이 있다. 시간이 걸려도 오로지 그 길로만 간다면 순례자 같고 구도자 같다. 삶의 의미를 찾는 여행이 되어야 한다. 인생길에서 방랑자가 될 것인가 구도자가 될 것인가?


2022-07-0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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