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납땜 냄새가 그리울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22. 7. 8. 08:08

납땜 냄새가 그리울 때


요즘 일터에 걸어 다닌다. 이른 아침에 걷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일터까지 2.5키로 거리로 20여분 걸린다. 운동으로도 좋을 뿐만 아니라 교통비도 절감된다. 걸으면서 암송도 하기 때문에 일석삼조이다.

어제는 늦게 출발했다. 굴다리를 지날 무렵에는 거의 8 30분이었다. 이 시간대에 활력을 보았다.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많다. 나이든 중년의 여성들이 총총히 일터로 가기 바쁜 모습이었다.

 


굴다리를 중심으로 생활권역이 바뀐다. 굴다리 서쪽은 번화가로 유흥시설이 많다. 노래방, 노래빠, 단란주점과 같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업소가 있다. 모텔도 많다. 안양의 대표적인 유흥지대이다. 반면 굴다리 동쪽에는 공장이 많다. 안양의 대표적인 공업지대이다. 지금은 아이티(IT) 쪽으로 바뀌었다. 공장이 많기 때문에 노동자들도 많다. 제조업 천국이다.

국철과 전철이 지나는 주접지하도를 중심으로 생활권역이 명백히 갈린다. 안양7동에는 산업시설이 많지만 안양6동은 유흥시설이 많다. 서쪽은 생산적이지만 동쪽은 소비적이다. 서쪽은 낮에 활기가 넘치지만 밤이 되면 고요해진다. 반면에 동쪽은 낮에는 고요하지만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활기가 넘친다. 컬러풀한 네온싸인이 번쩍번쩍할 때 환락의 도시로 변한다.

 

 


굴다리를 중심으로 극과 극이다. 한쪽은 생산적이고 또 한쪽은 소비적이다. 생산에서 삶의 활력을 본다. 소비에서 삶의 퇴폐를 본다. 생산은 제조업이고 소비는 주류업이다. 공장과 술집으로 나뉜다.

제조업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산현장에서 20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취직한 곳은 공장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빡빡하게 들어 갔다. 일시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중앙대로를 따라 각자 일터로 향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종업원이 수천명 되었기 때문이다. 제조업에서 활력을 보았다.

성장의 시대를 살았다. 80년대 성장의 시대 때는 왠만하면 취직이 잘 되던 시기였다. 85년에도 그랬다. 특히 전자공학과 출신들은 잘 팔렸다. 서울 안에 있는 대학 졸업자들은 상당수가 대기업에 들어 갔다. 그만큼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수원 S단지에 있는 S전기도 그랬다.

85
8월 처음 들어간 회사는 전형적인 제조업 회사였다. 주로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전자부품을 생산했다. 내가 속한 부서에서는 셋톱박스를 개발했다.

 

성장의 시대여서일까 성장속도는 경이로웠다.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때 총무과장은 "우리회사는 매출 25백억원에 종업원은 25백명입니다."라고 말했다. 7년후 퇴사할 때 회사는 매출 1조원에 종업원 만명으로 성장해 있었다.

제조업에서 오래 일했다.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며 20년 보냈다. 직급은 올라갔지만 실무에서 떠나지 않았다. 개발업무를 떠나면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노력이 있어서일까 육십이 넘은 이 나이에도 일이 있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설계업이다.

인쇄회로기판 설계업으로 먹고 살고 있다. 기판설계하는 것이 이제 제2의 천성으로 굳어 지는 것 같다. 일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마치 농부가 호미를 들고 밭 매는 것과 같다. 수천, 수만번 클릭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을 때 농산물을 수확하는 것과 같다.

오랫동안 제조업에 있다 보니 제조업에 대한 향수가 있다. 그것은 제조업 냄새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납땜 냄새이다.

개발자는 설계도 하지만 납땜을 하기 위해서 인두를 잡는 시간도 많다. 오실로스코프 앞에서 땜질 하며 특성 검토하는 것이다.

 

 

기판에 부품을 꼽고 전기를 넣었을 때 긴장된다. 대부분 한방에 터지지 않는다. 실험실에서 수십, 수백번 땜질을 해야 원하는 특성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해외영업 담당은 1센트를 더 받기 위해서 밤샘협상을 하고 엔지니어는 1디비(데시벨)를 향상사키기 위해 밤샘 땜질한다."라는 말이 있다.

제조업에 대한 추억이 있다. 그것은 납땜 냄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납땜 냄새는 몸에 좋지 않다. 납 자체가 몸에 좋지 않은 것이다. 개발자들 사이에서 이런 소문도 돌았다. 납냄새 오래 맡으면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개발자는 납냄새를 가까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실로스코프 앞에 앉아서 특성검토할 때 특유의 매케한 납냄새를 맡는다. 하루종일 납냄새를 맡다 보면 피곤해진다. 저녁에 퇴근할 때쯤 되면 녹초가 될 정도로 피로를 느낀다. 그런 세월을 십년이상 살았다. 그러다 보니 개발업무는 제2의 천성이 되다시피 했다.

지금은 더이상 납냄새를 맡지 않는다. 노안이 시작될 때 납땜하는 일은 그만 두었다. 주로 직급이 낮은 젊은 사람들이 납땜한다. 마치 도제식으로 되어 있어서 역할분담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제조업에 대한 향수는 납연기에 대한 향수이기도 하다. 남들은 납이 좋지 않다고 말하지만 전자제품 개발자나 생산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농촌에 가면 소똥냄새가 난다. 고향에 가면 구수한 고향냄새가 있듯이 전자공장에 가면 특유의 납냄새가 있다.

오랜 세월 생산현장에서 보냈다. 생산현장이 있는 공장은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공장에 가면 활력이 넘친다. 매케한 납냄새가 나면 고향에 온 것 같다. 이쯤 되면 제2의 천성으로 굳어진 것 같다.

다음 생에도 납냄새 나는 공장에서 일해야 할까? 그런 생각은 없다. 어찌하다 보니 그런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하다 보니 제2천성이 되었다. 그러나 납냄새가 그리울 정도라면 습관업이 된 것이다.

두 개의 일을 하고 있다. 하나는 삶의 수단으로서 일이고 또 하나는 정신적 성장을 위한 일이다. 인쇄회로기판설계업은 37년째이다. 이 정도 세월이면 제2의 천성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다음 생에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글쓰기는 16년 되었다. 물론 돈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매일 쓰다보니 생활화가 되었다. 2의 천성으로 굳어진 것이다. 여기에 외우기와 암송하기, 읽기를 더하고 있다.

수행자로 살고자 한다. 글쓰기는 수행자로 사는데 좋은 수단 같다. 여기에 외우기, 암송하기, 읽기를 생활화하고자 한다. 이런 삶을 오래 산다면 습관업이 될 것이다. 특히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다음 생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매일 아침 두 세계를 본다. 굴다리를 중심으로 제조업과 향락업이 갈린다. 제조업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제조업에 대한 로망이 있다. 아침에 공장으로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사랑스럽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총총히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 납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나에게 납냄새는 고향 냄새와 같은 것이다.


2022-07-0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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