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 뜬금 없이 운동가요
이른 아침부터 운동가요가 들렸다. 그들이 왔음을 직감 했다. 건설현장에 나타나는 사람들이다. 한번 본 바 있다.
수년전 비산2동 재개발 현장에서도 똑같은 운동가요를 들었다. 왜 뜬금 없이 운동가요를 틀어대는 것일까? 아파트에서도 들렸다. 다들 이른 아침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운동가요는 몇날몇일 계속되었다. 어느날 호기심에 건설현장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놀랍게도 사람을 쓰도록 한다는 것이다. 건설노동조합 사람들을 건설 현장에 고용시키기 위해 운동가요를 틀었던 것이다.
사무실이 있는 오피스텔 바로 옆에 건설 현장이 하나 있다. 20여층 오피스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한창 기반시설 공사가 진행중에 있다. 지하까지는 된 것 같다. 이제부터 지상건물 공사가 시작되는 것 같다. 거대한 타워 크레인이 설치 되어 있다.
어제 아침 갑자기 운동가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온 것을 알았다. 아마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확성기를 틀어댈 것이다. 그러나 희망하는 것이 있었다. 오전 9시가 되면 멈출 줄 알았다. 업무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에 자제할 줄 알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오전 내내 틀어댔다. 점심 이후에도 들렸다.
점심 시간 때 그 앞을 지날 일이 생겼다. 운동가요 소리가 나는 곳이 보였다. 검은색 알브이 차량에서 소리가 났다. 예상대로 건설노동조합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어떤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도 뻔히 알았다. 그럼에도 창문을 두드렸다.
차 안에는 세 명 있었다. 모두 젊은 사람들이다. 서른살 전후로 건장해 보였다. 공통적으로 조합원 마크가 있는 검은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노크 소리에 자다가 깬 듯 했다. 그 중에 한명이 "왠일이십니까?"라며 물었다. 이에 "왠일로 이런 일 합니까?"라며 되물어 보았다.
그들이 대뜸 말한 것은 집회신고 했다는 것이었다. 신고 했으니 합법적이라는 것으로 받아 들이라는 말 같았다. 그러나 불편했다. 한두시간도 아니고 계속 틀어대니 그야말로 소음공해가 되었다.
합법적인 집회라고는 하지만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항의할만 하다. 나 같은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의 태도를 보아서 처음인 것 같다. 창문을 두드렸을 때 자다가 화들짝 놀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몇가지 물어 보았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뻔히 알면서도 물어 본 것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현장사람들이 협상에 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전박대 당했다는 말도 했다. 마치 해고노동자의 복직투쟁으로 들렸다. 그래서 "해고 된 사람 있습니까?"라며 알면서도 물어 보았다. 그들은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건설현장 사람들이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이에 어떤 사항인지 물어 보았다. 그들은 전달할 것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말하는 전달사항이 어떤 것인지 대충 알고 있다. 그들과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주변에 폐끼쳐 주지 말 것을 당부하고 협상 잘 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대화를 마쳤다.
사무실 복도 맞은편에는 건설현장 사무실이 있다. 건물이 완공될 때까지 임시로 사용할 것 같다. 그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물어 보았다. 물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물어 본 것이다. 확성기를 틀어대는 것에 대하여 조합원들을 건설현장에 투입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다. 그들은 맞다고 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렇게 조합원을 건설노동자로 밀어 넣었을 때 과연 그들은 일을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놀라운 답변을 들었다. 그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통 4-5명 투입하는데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하지 않고 돈을 받아간다는 것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돈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들이 건설을 방해하기 때문에 돈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현장 실무자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다. 그들이 건설현장에서 확성기를 틀어대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합법적인 투쟁을 하고 있다. 집회신고를 내고 확성기를 틀어대는 것이다. 확성기에서는 쉬지 않고 운동가요가 흘러 나왔다. 대부분 생소한 노래이지만 익숙한 노래도 있다. '늙은 군인의 노래'도 그런것 중의 하나이다. 가사를 바꾸어 '늙은 노동자의 노래'라고 부르고 있다. 또 하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5.18 행사 때 공식적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그럼에도 건설노동조합원들이 그들의 목적달성을 위해 틀어놓는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보다. 예전에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중립을 유지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별 다른 관심이 없다. 때로 혐오적으로 보기도 한다. 집단이기주의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 노조의 집단 행동에 대해서는 귀족노조라는 말에 공감이 가기도 한다.
한때 빨간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듬직하게 보였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기에 동지적 시각으로 보았다. 그러나 민주정부가 들어 섰음에도 여전히 파업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했다. 그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는 것은 나와 무관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방관자가 되었다. 그런데 밀어 넣기 투쟁이라니!
노동운동은 갈데까지 간 것인가? 조합원을 건설 현장에 밀어 넣기 위하여 운동가요를 하루종일 몇날몇일을 틀어대는 것을 보면 막장을 보는 것 같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말에 따르면 투입된 사람들은 일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구나 돈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뻔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확성기가 나는 차량에는 그들의 소속이 써 있다. 전국건설노동조합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더구나 전국건설노동조합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 속해 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양대산맥으로 민노총과 한노총이 있는데 그들은 한노총 소속인 것이다.
노동운동이 어쩌다 이지경까지 되었을까? 오늘도 확성기를 틀어댈까? 현장 사람들 말에 따르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그들의 실체를 알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광주민중항쟁을 기리는 노래가 집단이기주의를 실현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노래의 본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혐오한다면 노래도 좋지 않게 볼 가능성도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종말을 보는 것 같다.
나도 나이를 먹은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보수화 된다고 하는데 노조에 대해서 비호감적이다. 물론 노조는 필요한 것이다. 약자는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시민들의 불편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집단이기주의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의 전국건설노동조합에서 혐오를 보았다.
2022-07-1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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