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제2의 다산이 되고자

담마다사 이병욱 2022. 7. 7. 07:50

제2의 다산이 되고자


요즘 일감이 넘쳐난다. 즐거운 비명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고 부자 되는 건 아니다. 이런 때도 있는 것이다. 마치 잔잔하던 대양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 같다. 선장은 지시하고 선원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연상된다.

일감이 없으면 걱정된다. 처음 1주일간은 그러려니 한다. 2주가 되어도 일감이 없으면 초조하다. 3주가 되면 "왜 일감이 없지?"라며 불안이 극에 달한다. 한달 동안 일감이 없으면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고객사 담당이나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기도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광고하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키워드광고하는 것이다.

요즘은 광고를 하지 않아도 일감이 들어 온다. 단골이 생겼기 때문이다. 얼굴을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목소리만 알고 있다. 목소리만 듣고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본다. 목소리에도 개성이 있기 때문이다. 성격이 급한지 아닌지 알 수 있고 인품이 있는지 없는지도 대강 파악된다. 성향에 맞추어 대응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일의 특성상 전화 접촉이 대부분이다. 전화와 이메일 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목소리로만 접촉하는 것이다. 목소리만큼 생긴 모습도 다양할 것이다. 실제로 만난 경우도 있다. 거의 대부분 상상했던 것과 거리가 멀었다. 마치 펜팔 친구를 만났는데 실망하는 경우와 같다. 글은 어떠할까?

블로그에 필명으로 글을 썼다. 당연히 얼굴을 숨겼다. 글만 보던 사람들은 어떤 상상을 할까? 아마 글의 내용처럼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글과 그 사람의 인격을 동일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속의 인물을 창조해 낸다. 장동건급의 얼굴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경우 미리 예방주사를 놓아야 한다.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외수의 외모를 이야기한다. 비쩍 마른 몸에 볼품 없는 외모임을 강조한다. 이렇게 해야 환상이 깨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블로그에 얼굴을 공개했다. 블로그를 만든지 17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줄곧 연꽃 이미지를 사용했다. 필명이 '진흙속의연꽃'이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얼굴을 공개한 것은 이미 에스엔에스에 얼굴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는 얼굴공개에 대한 요청이 거셌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면 친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무엇이 두려워 얼굴을 숨기냐고 했다.

얼굴을 한번 공개하자 도미노 현상이 일어 났다. 페이스북을 시작으로 카톡과 밴드에도 공개하게 되었다. 마침내 블로그에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에스엔에스에서는 가능한 실명을 사용하고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그러나 블로그에서는 실명과 얼굴공개는 의무조항도 아니고 필수사항도 아니다. 필명을 허용한다는 것은 얼굴을 숨겨도 좋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도 된다. 그렇다면 왜 얼굴을 공개했는가?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웃는 모습의 사진이 있어서 자신 있게 올린 것이다.

확실히 사진은 전문가에게 찍을 필요가 있다. 순간포착하는데 있어서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수십장, 수백장 찍다 보면 그 중에 하나 작품이 있을지 모른다. 보성 페친이 찍어 준 사진도 그랬다.

모든 것을 공개했다. 더 이상 숨기는 것이 없다. 얼굴 사진으로 외면을 공개했고 글로서 내면을 공개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숨기는 것이 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누구에게나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없다. 절친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비밀을 지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말 못할 비밀은 부부사이에도 털어 놓지 못한다. 하물며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공간에 어떻게 말못할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을까?

비밀을 털어 놓지 말라고 했다. 비밀을 털어 놓는 순간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비밀을 털어 놓으면 더이상 비밀은 지켜지기 힘든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말못할 비밀을 간직하며 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사람들은 인터넷 공간에 실명도 공개하지 않고 얼굴도 숨기고 글도 남기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예전에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 베일에 가려진 사람이 아니다. 공개할 것은 다 공개했다. 속까지 공개했다. 인터넷에 할말 못할 말도 한다. 그러나 선을 넘지 않고자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볼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식이 볼 수 있고 아내가 볼 수 있다. 형제가 볼 수 있고 사촌이 볼 수 있다. 학교 친구도 볼 수 있다. 모임이나 단체 사람들이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함부로 글을 쓸 수 없다.

글은 그사람의 얼굴이고 인격이다. 직접 대면하지 않는 한 그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은 글 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숨긴다. 인터넷 공간에서 이름도 숨기고 얼굴도 숨긴다. 그렇다고 글읕 숨기지 않는 것 같다. 마음껏 표현의 자유를 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면놀이 하는 것 같다. 각자 하나 이상 가면을 쓰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는 것 같다. 가면놀이 할 때 끝까지 공개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얼굴이다.

 


인터넷에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그것도 장문의 글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집과 직장만을 왔다갔다 하던 사람이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인터넷의 힘이 크다. 무엇보다 일인사업자가 된 것이 결정적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딱 맞아 떨어져 글을 쓰게 되었다.

솔직한 글을 쓰고자 한다. 일이 없을 때 "왜 일감이 없지?"라며 고민하는 것도 솔직한 글쓰기 중에 하나에 해당된다. 성찰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태어남을 말한다. 성찰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어제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한다. 글로서 실현해 보고자 한다. 이런 글쓰기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언젠가 멈출 날이 있을 것이다. 글은 쌓여 간다. 책도 늘어 간다. 글을 남기는데 있어서 제2의 다산이 되고자 하는데 지나친 망상일까?


2022-07-0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