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저녁에 혼탁한 마음이 되었을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22. 7. 20. 06:45

저녁에 혼탁한 마음이 되었을 때

 


오늘도 하루 일과가 끝났다. 많은 일이 있었다. 사건도 있었다. 저녁이 되었을 때 우울한 느낌이 들었다. 거울로 표정을 보면 어둡게 보일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앞으로 잘하면 된다. 불가항력적인 것도 있다. 일과를 마치고 저녁때가 되면 마음이 혼탁해지는 것 같다. 이런 마음 상태에서는 잠도 잘 이룰 수 없다.

기분전환을 해야 한다. 습도가 높은 끈적끈적한 날에는 샤워를 하는 것이 좋다. 여름철임에도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은 이 시대의 축복일 것이다. 확실히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과 비교하면 이곳이 천상 아닐까 생각한다.

샤워나 목욕을 하면 기분이 산뜻하다. 그러나 마음의 때까지는 씻어 내지 못한다. 여전히 안절부절 했다. TV에서 영화를 보아도 해소되지 않는다.

밤에는 들뜨기 쉽다. 흙탕물이 이는 것같은 마음이다. 부글부글 끓는 것같은 마음이기도 하다. 이런 마음 상태에서는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에 지배 받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젠가 성찰에 대한 글을 쓴적 있다. 하루일과가 끝나고 잠자기 전에 반성의 시간을 가져 보자는 것이다. 오늘 하루 일어난 일에 대하여 따져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뿐이었다. 지금까지 잠자기 전에 성찰의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사람이 발전하려면 조건이 있다.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 보는 것이다. 잠자기 전에 성찰하는 것이다. 과연 몇사람이나 될까? 대부분 감각을 즐기기에 바쁘기 때문에 성찰의 시간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샤워를 해도 그때 뿐이다. 마음의 그늘로 남았을 때 어두운 마음이 될수밖에 없다.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에 지배 받았을 때 좀처럼 빠져 나올 수 없다. 새벽이나 되어야 리셋될 것이다.

저녁 흙탕물같은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경을 암송하는 것이다. 요즘 빠다나경을 암송하고 있기 때문에 빠다나경을 암송해보기로 했다.

효과는 놀라웠다. 빠다나경을 암송하고 있는 도중에 집중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암송할 때 기억을 떠 올려야 하는데 기억을 떠 오르게 하는 과정 자체가 집중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집중이 이루어졌다.

집중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번뇌로부터 해방이 되었음을 말한다. 대상에 집중했을 때 번뇌가 치고 들어 올 수 없다. 암송중에 탐욕의 마음이 일어날 수 없고 암송중에 분노의 마음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암송의 효과를 실감한다. 여러차례 검증한 바 있다. 이를 쐐기의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마치 숙련된 미쟁이나 그의 도제가 작은 쐐기로 커다란 쐐기를 쳐서 뽑아 제거하는 것처럼,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은 어떤 인상에 관해 그 인상에 정신적 활동을 일으켜 자신 안에 탐욕과 관련되고, 성냄과 관련되고, 어리석음과 관련된,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가 일어나면, 그는 그 인상과는 다른, 선하고 건전한 어떤 인상에 관련된 정신활동을 일으켜야 한다.”(M20)

 

 

작은 쐐기로 커다란 쐐기를 쳐내라고 했다.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akusala)을 착하고 건전한 마음(kusala)으로 쳐내는 것이다. 이것이 쐐기의 비유이다.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의 힘이 강하면 착하고 건전한 마음으로 쳐내기 힘들 것이다. 저녁에 흙탕물과 같은 마음이 되었을 때 정화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경을 암송하면 효과적이다. 경전을 읽는 것도 좋고 사경을 하는 것도 좋고 음악을 듣는 것도 좋지만 나의 경우에는 암송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을 보지 못했다.

경행하면서 빠다나경 25게송을 암송했다. 암송이 다 끝났을 때는 전혀 다른 기분이 되었다. 우울한 마음, 어두운 표정이 싹 달아 났다. 마음이 현재에 있게 된 것이다. 번뇌가 없어졌다. 이 상태에서 경행을 하면 행선이 된다.

행선을 했다. 마음은 발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발을 들 때 아는 마음이 있고 발을 옮길 때도 아는 마음이 있다. 발을 내릴 때 의도가 있어서 내린다. 내리려는 의도가 없으면 내리지 못할 것이다. 집중이 더 되면 세세하게 알게 될 것이다.

암송 이전과 이후는 다른 마음이다. 암송 이전에는 혼탁한 마음이었으나 암송이후에는 정화된 마음이 되었다. 암송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상태가 바뀐 것이다. 작은 쐐기로 커다란 쐐기를 쳐내듯이, 악하고 불건전한 커다란 마음을 착하고 건전한 작은 마음으로 쳐낸 것이다.

경을 암송하는 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암송한다는 것은 사띠하는 것과 같다. 사띠가 본래 기억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암송하는 것은 사띠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악한 짓을 했어도
착하고 건전한 일로 덮으면,
구름에서 벗어난 달과 같이
이 세상을 비춘다.”(Thag.872)

번뇌가 있을 때 해소 해야 한다. 번뇌를 번뇌로 없앨 수 없다. 욕망을 욕망으로 해소하거나 분노를 분노로 다스릴 수 없다. 더욱더 욕망이 일어날 뿐이고 더욱더 분노할 뿐이다. 이럴 때 극적인 전환을 해야 한다. 착하고 건전한 행위로 덮어 버리는 것이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마음이 평온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제 방법을 알았다. 저녁에 혼탁한 마음이 되었을 때 경을 암송하는 것이다. 이는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가 일어나면, 그는 그 인상과는 다른, 선하고 건전한 어떤 인상에 관련된 정신활동을 일으켜야 한다."(M20)라는 가르침과 일치한다.

어느 경이든지 암송하면 그 순간부터 다른 마음이 되어 버린다.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 대해서 "그것들이 버려지면 안으로 마음이 확립되고 가라앉고 통일되고 집중된다.”(M20)라고 했다.

경을 암송하면 집중이 일어난다. 집중이 되면 희열, 행복, 평온의 마음이 된다. 이와같은 집중된 마음으로 행선이나 좌선을 하면 전혀 다른 세계에 있게 된다.

흔히 수행하라고 말한다. 수행한다고 하여 앉아 있는다거나 걷는다고 수행이 잘 되는 것일까? 수행에 임하기 전에 먼저 마음가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경을 암송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띠하는 것이다.

저녁에는 들뜨기 쉽다. 마음은 이미 흙탕물이 되어 있다. 하루일과를 보내다 보면 마음이 혼탁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때 마음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경을 암송하는 것이 가장 좋다. 경을 암송하면 집중이 된다. 이 집중된 힘을 행선이나 좌선에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잠들기 전에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오늘 일과 중에 일어났던 일을 복기해 보는 것이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잘못된 것은 다음에 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성찰의 시간을 갖으려면 조건이 있다. 혼탁한 마음을 먼저 정화시켜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경을 암송하는 것이다. 암송하는 순간 즉각 마음이 정화된다. 틈만 나면 암송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암송하는 것이 사띠하는 것이다.

2022-07-20
담마다사 이병욱